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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이제는 "마쓰모토 세이초"나 "미야베 미유키" 같은 일본작가들의 이름이 그리 낮설지 않다. 이들은 주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거나, 최근에 떠오르는 사회문제들을 이야기의 소재로 삼는, 일명 "사회파"에 속하는 추리작가들이다. 세대는 다르지만 사회파 추리소설의 효시, 일본 추리소설의 대모등으로 통하며 각자의 시대에서 베스트셀러를 양산해왔다. (세이초는 92년 사망)
우리나라도 일본 못지 않게 크고 작은 다양한 사건들이 매일같이 신문지면을 장식한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만큼 당연히 이것을 소재로 한 우리소설도 적지않게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류의 우리 작품에 대한 인식이 아직 미미한 것은, 해외의 문학계처럼 어느 한 장르로서 자리를 내어줄 만큼 완성도 있는 작품이 그동안 드물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회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시도는 좋았으나 드라마가 빈약하다거나, 혹은 용두사미격의 뜨뜨미지근한 작품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요컨데 사회문제에 대한 환기와 함께 재미와 감동까지 전해주는, '바로 이것이다' 할만한 대표적인 작품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이책 <너는 모른다>는 매우 인상적이다.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재미와 메세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안정적으로 균형잡기에 성공하고 있다고나 할까. 국산 "사회파 소설(일본식 표현을 빌면)"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하나의 이정표라고 하면 조금 거창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확실한 주제의식이 있고 저자의 차기작을 계속해서 기다리게 만드는 색깔있는 소설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소설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 서래마을의 한 재혼 가정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전처와의 사이에서 장성한 아들과 딸을 둔 소규모 무역업자와 화교출신의 두번째 아내,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생긴 어린 막내딸의 5인 가족. 새엄마, 이복형제라는 아슬아슬한 연결고리로 이어진 이들은, 큰 트러블은 없지만 내면적으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갈등을 안고 줄곧 살아오고 있다. 그나마 이 모래알 같은 구성원들을 간신히 붙들어 매고 있는 것은 물질적인 풍족함. 결코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이 가정의 구성원들이 짊어지고 있는 각각의 사연과 고뇌가 과장됨 없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어느날 이 가족에게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집에서 바이올린 레슨을 받고 있어야 할 막내딸 유지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그 시각 아버지 상호는 출타해 수상쩍은 비지니스로 은밀히 사람을 만나는 중이었고, 엄마인 옥영은 친정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대만에 날아가 옛 연인과 재회하고 있었다. 한편, 유지의 이복오빠인 혜성마저 자해소동을 일으킨 누나 은성을 응급실에 데려다 준 뒤 별다른 이유없이 여기저기 배회하는 중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유지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혼자 집을 나섰다가 길을 잃은 것일까? 혹시 과외선생에게 유괴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원한관계에 의한 납치? 이상한 것은 아버지인 상호가 그렇게 애를 태우면서도 절대로 경찰에만은 신고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경찰대신 사립탐정을 고용하고, 주변을 조사해 나가는 동안 탐정은 이 가정의 구성원들이 하나같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딸 은성의 불량한 옛 남자친구의 존재와, 새엄마 옥영의 오랜 연인 밍까지 더해져서 이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 어디에 어린 유지의 행방이 연결되어 있을 것인지 끊임없이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이혼가정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애정 결핍과 서로간의 불신감에서 비롯된 가정문제, 이로인해 방황하는 청춘들, 여기에 우리사회에 만연한 따돌림 문화, 그네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화교사회에 대한 묘사, 장기매매, 방화, 아동유괴와 같은 범죄문제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재료들을 버무려 놓았다. 픽션이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이 모든 것들이 작가가 의도하는 어떤 메세지를 위해 가공된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가까운 현실속의 문제다. 이러한 우리사회의 그늘진 단면을 외국작가의 정서가 아닌 한국작가의 생각과 맛깔나는 필력으로 읽을수 있다는 것은 독자로서는 분명 고마운 일이다. 저자에게 앞으로 더 큰 기대를 갖게 하는 부분이다.
다만 이 소설의 마지막 전개가 나는 영 탐탁치 않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싶을 정도로 어린 유지가 떠안는 무게가 너무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줄곧 탐정이 모든 정황을 조사해 왔던 만큼 일단 유지의 행방만큼은 경찰이 아닌 탐정의 손에 맡겼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얽힌 실타래 풀기의 마지막을 경찰에게 떠넘겨 버리는 다소 손쉬운 방식을 택한 것은 연재소설로서의 연재분량에 따른 사정때문이었을까. 일말의 아쉬움은 남는다.
이것은 문제를 안고 있는 어느 특정 가정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간의 소통의 부재, 그리고 점점 개인화 되어 가는 우리 사회의 사람과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소통의 부재가 어떤 비참한 결말을 가져올 수 있는지 이 소설은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가까이 있으면서도 우리가 애써 무시하고 살아가는 것들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자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 말고 우리가 진정으로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는 식의 비아냥 대신에 이제는 정말로 돌이켜 볼때다. 우리가 지금 서로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 과연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