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3076
˝선물 같은 거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오늘은 ‘윌리엄 트레버‘의 <운명의 꼭두각시>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긱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가지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내가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판된 책은 다 읽을 정도로 트레버의 팬이고, 리뷰도 다 썼지만 이 책은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해 여름, 7월 마지막 주와 8월 내내, 그리고 9월의 3일간 난 평생 그 여름을 사랑해왔다.] P.165
일단 트레버의 작품 중에서도 독특한 편이고, 다른 어떤 소설하고도 비교를 해봐도 매우 유니크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리뷰를 읽는 순간 스포가 되기 때문에,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분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리뷰를 쓰는게 귀찮아서 그런건 아님...)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4장은 윌리,
2장,5장은 메리엔,
3장,6장은 이멜다
의 이야기이다. 구성을 보면 정말 간단하지만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4,5,6장은 대단히 짧다. 그런데 대단히 강렬하다.
[나는 우리가 걷고 또 걷는 동안 당신이 격식을 차리느라 지루하다는 말을 못 한 건 아닌지, 그게 궁금했다. ˝우리는 킬네이에 갈 수도 있어요.˝ 내가 제안했다. ˝당신에게 킬네이를 보여주면 좋을 텐데.˝ 당신은 미소 지으며 그러고 싶지만 당신에게 너무 슬프지 않을까요, 라고 말했다. 당신과 함께면 슬플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P.168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더 간단하다. ‘복수 그리고 피할수 없는 운명‘ 이라고 할까나.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쳐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된다. 단지 그렇게 만나는 일과 사람이 꼭 행복을 가져다 주는 건 아닐뿐...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야만 가능한 것도 있고...
[˝내 말은, 이멜다, 일이 그렇게 된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일은 우연히 일어난단다.˝] P.291
그저 가업을 이어받고 싶었던 주인공 ‘윌리‘는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의해 사랑 대신 복수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의 운명의 변곡점에 끼어든 사람이 바로 ‘메리엔‘이다. 그녀가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의 운명은 분명히 바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정을 할 필요는 없을듯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두 사람은 ‘운명의 꼭두각시‘ 처럼 만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만남이었다고나 할까?
[당신 방 앞에 선 나는 아주 가볍게라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그저 문을 열었다. 모든 두려움과 도덕이, 세상의 모든 잣대가 내게서 사라졌다. 난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당신이 알아야 한다는 것 말고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면 당신이 적어도 약간의 위안을 얻을지 모른다는 것 말고는. 난 램프를 화장대에 올려놓고 당신 이름을 불렀다.] P.198
각자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최선의 행동과 선택을 하지만 그 결과가 언제나 행복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한번의 선택이 최악의 불행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인간은 의지를 가지고 있기에 선택을 해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서 운명의 꼭두각시처럼 살 수는 없으니.
[그는 사진속의 미소를 짓고 그가 사랑하는 소녀는 밀짚모자 띠에 조화 장미를 달고 있다. 그들은 딸의 미친 상념 속 짧은 서사시에서 자신들이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이 끝에 볼로냐 소녀의 머리 위를 떠돌던 성체만큼이나 놀라운 기적이 있음을 안다. 그들은 오늘같은 날이 허락된 것에 감사하고, 추함이라곤 없는 딸의 고요한 세계의 은총에 감사한다.] P.336
잔혹한 운명일지라도 사람은 작은 희망을 가지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인내하고, 사랑을 꿈꾼다. 인생이 아름다운건 사람 때문이다.
Ps 1. 영국과 아일랜드 간의 역사적/종교적 갈등을 공부하고 이책을 읽으면 이해가 한층 쉬울것이다.
Ps 2. 이게 다 러드킨 중사 때문이다.
Ps 3. 한겨레출판사에서 나온 윌리엄 트레버 작품들의 책탑이다. 너무 뿌듯하다. 여섯권 모두 100점 만점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