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후쿠나가 다케히코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N23062

˝과연 내가 그렇게 눈부시게 과거를 살았을까? 사랑받을 수 없었던 나, 그저 사랑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서도 가슴속의 고뇌로 마음이 찢어지던 나, 그런 나는 정말로 옛날에 한 점 후회 없이 살았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왜 나를 떠나갔을까?˝



고독하다는 건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 이 책의 주인공 ‘시오미‘는 고독했다. 그렇기 때문에 살려는 의지를 상실했다. 그래서 폐 질환을 가지고 있던 그는 성공확률이 극히 낮은 폐 절제 수술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결국 수술은 실패로 끝나고 죽은자가 된다. ‘시오미‘는 어떤 사랑을 했길래 그렇게 고독했던걸까? 그렇게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던 걸까?

[˝나는 옛날부터 고독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떠나갔다. 하지만 사랑하고 있을 때 나는 살아 있었다. 그때는 생명의 충족감이 있었고,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황홀감이 종종 나를 찾아왔다. 그런 행복은 어디로 갔을까. 아아, 바로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고 강렬하게 외치고 싶은 그 불타오르는 영혼의 환희는 어디로 갔을까. 강한 의지로 일관된 고독, 영웅의 고독, 그리고 하루하루의 삶 속에 빠져 떠밀려가는 듯한, 이런 나약하고 가련한 고독은 대체 뭐란 말인가. ˝] P.63




이 작품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은 요양원에서 만난 나와 30살의 ‘시오미‘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곳에서 나는 언뜻 보면 밝아보이지만 어딘지 초연한 듯한 ‘시오미‘를 알게 된다. 그는 폐 절제 수술을 들어가기 전에 자신이 살아돌아오지 못할 경우 나에게 두권의 노트를 맞기면서 그것을 읽어봐달라고 한다. 결국 그는 수술실에서 살아오지 못한다. 무리한 수술을 말렸어야 했을까? 말렸더라도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미 그는 스스로 생을 포기하고 있었기에 말이다.

[˝나처럼 예술가도 아닌 인간에게 인생이란 그가 살았던 하루하루와 함께 끝나는 거야. 미래라는 게 없어. 죽음이 있을 뿐이야.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야. 현재라는 건 없어. 그래, 대부분은 현재조차도 없지. 거기엔 과거가 있을 뿐이야. 물론 그건 진짜로 사는 건 아냐. 오늘이라는 하루를 살지 않고 뭘 산다고 하겠어. 하지만 많은 사람은 과거에 의해 살고있어. 과거가 그 인간을 결정해버리는 거지. 산다가 아니라 살았다야. 죽음은 단지 표시일 뿐이야.˝] P.41




2장은 ‘시오미‘의 첫번째 노트로, 10대의 ‘시오미‘는 1년 남자 후배인 아름다운 청년 ‘후지키‘를 마음에 품는다. 우정인지, 사랑인지 햇갈리는 관계. 하지만 이건 자신이 봐도, ‘후지키‘가 봐도, 주변에서 봐도 사랑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선배를 따르던 ‘후지키‘는 이런 ‘시오미‘의 애정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멀리 하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오미‘는 고독해진다.

[왜지? 하고 나는 속으로 물었다. 다같이 행동하겠다. 단순히 그 뿐인 걸까, 그게 아니면 내가 싫은 걸까. 하얗게 빛바랜 실의의 기억이 내 의식 속을 재빨리 스쳐갔다. 후지키를 알게 된 지 아직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시오미 선배, 시오미 선배, 하며 무슨 일만 있어도 친하게 다가와 매달리곤 했다. 그것이 가을이 되고, 내가 후지키네 집에 가끔 놀러오면서 어머니와 지에코와도 어울리게 된 후로 후지키는 조금씩 내게서 멀어졌다. 나와 만나는 걸 피하고, 나와 이야기하는 걸 피한다. 대체 왜일까. 왜 그렇게 내게 차갑게 대하는 걸까.] P.93



받아줄수도 없고, 인정받기도 쉽지 않은 ‘시오미‘의 감정은 그칠 줄 모른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후지키‘는 병으로 갑작스럽게 죽는다. 아무 의미도 없게된 ‘시오미‘의 사랑. 그런데 정말 아무 의미가 없었던 걸까?

[아무 의미도 없는데, 후지키를 향한 나의 사랑이 아무리 컸다 해도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고, 사랑을 거부한 후지키도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사랑도, 고독도, 집착도, 거절도, 끝내는 아무 의미도 없게 되었다. 사랑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모든게 다 허무할 뿐이었다.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던 후지키, 정해진 길 밖에 걸을 수 없었던 후지키, 그리고 그런 후지키를 그토록 사랑 했던 나.] P.146




3장은 ‘시오미‘의 두번째 노트로, 20대가 된 ‘시오미‘는 고등학교 시절 ‘후지키‘의 집에 자주 놀러갔었고, 그의 엄마와 여동생 ‘지에코‘와도 친해졌는데 ‘후지키‘가 죽고 난 후에도 가족들을 지속 방문한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에코‘와 가깝게 지낸다. 하지만 가치관의 차이로 연인 이상으로 발전하지는 못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음으로는 지에코를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나는 한편으로 나 자신의 고독을 너무나 소중히 했던 것이리라. 후지키 시노부를 잃은 후 나는 인간이 날 때부터 지닌 얼음 같은 고독은, 아무리 활활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으로 태워진다 해도 결코 녹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 히 알게 되었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지에코는 너무나 어리고 천진했다. 그리고 나는 지에코를 사랑하면 할수록 고독하고, 고독을 느끼면 느낄수록 사랑하는 이 마음의 모순을, 나 자신에게도 지에코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P.207



‘시오미‘는 마음속으로는 그녀를 원하지만, 머지않아 나올 입대 영장 때문에, 내면에 있는 고독 때문에 마음을 열지 못하고, ‘지에코‘는 ‘시오미‘와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기에, 그가 여전히 오빠를 잊지 못하고 자신에게서 오빠의 모습을 찾는것 처럼 느꼈기 때문에, 결국 ‘시오미‘의 군입대를 계기로 두 사람은 그대로 이별한다. 만남의 유지는 그렇게 힘든데, 이별은..한 순간이다.

[그녀는 나를 잊었고, 나는 그녀를 잊었다. 인간은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오래된 기쁨과 슬픔은 전부 의식 밑바닥에 가라앉혀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사람은 새로운 고민, 새로운 괴로움을 위해서는, 모든 걸 잊을 수 있는 걸까.] P.246




4장은 1장의 화자인 나가 ‘시오미‘가 남긴 노트를 다 읽고 나서 ‘지에코‘에게 노트를 건내기 위해 그녀에게 편지를 쓰는 내용이다. 이미 다 끝나버렸는데,더이상 이세상 사람이 아닌데, 이 노트가 그녀에게 의미가 있을까? ‘시오미‘는 자신이 쓴 노트가 ‘지에코‘에게 전달되기를 바랬을까?


나는 의미가 있다고, 전달되기를 바랬을거가 생각한다. 다시는 못본다 하여도 말이다. ‘시오미‘는 아마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고독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원했을 것 같다. 그렇지 않다다면 너무 의미없는 인생이었을 테니까.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읽기를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어떤 문장은 너무 아름다웠고, 어떤 문장은 너무 아팠고, 어떤 문장은 너무 공감했다. 너무 고독해하는 ‘시오미‘가 만약 내 주위에 있었더라면 그에게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을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사랑해야 한다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독도 살아 있어야만 느낄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런 경우, 사랑의 강함과 고독의 강함은 정비례하지 않아. 상대를 더 강하게 사랑하는 쪽은 오히려 자신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상대에게서 상처받을 때가 많거든. 하지만 설령 상처를 받는다 해도, 언제나 상대보다 더 강하게 사랑하는 입장에서 야 하는 거야. 남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햇볕에 미지근해진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과 같아서, 거기엔 어떤 고독도 없어. 남을 강하게 사랑한다는 건 자신의 고독을 거는 거야. 설령 상처받는 두려움이 있다 해도 그게 진짜 삶이 아닐까? 고독이란 그런 식으로 단련되어 성장해가는 게 아닐까?˝] P.117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아 2023-10-10 17: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불꽃으로도 녹지 않는 얼음 같은 고독‘이라니 많이 슬픈 내용일 듯 합니다. 그러나 독자에게는 좋은ㅋ

‘산다는 게 아니라 살았다야‘ 이 부분도 공감이구요. ^^

새파랑 2023-10-10 18:31   좋아요 1 | URL
제가 좋아하는 전형적인 일본문학이었습니다 ㅋ 표지가 좀 그랬는데 재미있고 감동도 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페넬로페 2023-10-10 17: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지 않았지만 왠지 아픔이 묻어나오는 소설 같네요.
이 작가 모르는 작가인데 관심 가져봐야겠어요^^
과거에 대한 회한은 항상 남는 것 같아요.

새파랑 2023-10-10 18:32   좋아요 3 | URL
저도 처음 들어본 작가인데 북플에서 좋다고 해서 바로 사서 읽었습니다~!! 이 책 읽고 어제 밥을 못먹었습니다 ㅜㅜ

scott 2023-10-10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가을에 이토록 쓸쓸한 글이 ㅋㅋ 새파랑님의 고독은 책만이 치유 할 수 있음요 ^ㅎ^

새파랑 2023-10-10 21:21   좋아요 1 | URL
아 쓸쓸한가요? ㅋ 요새 가을 타나 봅니다~! 지금 <라우루스>도 읽고 있는데 이것도 쓸쓸하네요 ㅜㅜ

은오 2023-10-10 2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헐.. 술파랑님 저 이거 궁금해요! 이거 새파랑님께 땡투 ㅋㅋㅋㅋ
근데 취중리뷰인가요?? ㅋㅋㅋ
고독하디 실폐가 웬말입니까? ㅋㅋㅋㅋㅋ

새파랑 2023-10-10 21:21   좋아요 3 | URL
앗 ㅋㅋ 쉬는시간에 조금씩 급하게 쓰다보니 오타입니다....

업무중에 취하지는 않습니다 ㅋㅋ

전 이 책 너무 좋았습니다~!

얄라알라 2023-10-11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흑...쓸쓸한 아름다움... 책 읽으시느라 식사를 거르심인가요? 새파랑님 ㅎ 역시!!!

새파랑 2023-10-11 07:28   좋아요 0 | URL
식사를 거르는건 아니고 ㅋ 그정도의 열정은 없습니다~! 가끔 시간내서 조금씩 쓰고 다시 일하고, 조금씩 쓰고 일하고 ㅋ

리뷰를 빨리 써야 퇴근하고 책읽을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희선 2023-10-12 0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 이야기가 담기기도 했나 봅니다 이 작가도 폐결핵이었다니... 작가는 괜찮았으려나 찾아보니 일찍 죽지는 않았네요 소설에서는 죽게 하고... 본래 그런 거기는 하겠습니다 처음 좋아한 사람이 죽다니, 그게 상처가 돼서 더 기분이 우울해진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희선

새파랑 2023-10-12 07:17   좋아요 0 | URL
작가의 사소설 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더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희선님도 이 작품 좋아하실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