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이 좋은 것들이 있다. 무조건적인 애정을 줄 수 있다는건, 받는 사람의 경우에는 행복할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겠지만, 주는 사람은 확실히 행복하다. 하루키는 나에게 있어서 무조건적인 애정 대상자이다.


독서슬럼프에다가 바쁘다는 핑계를 극복하기 위해 나만의 치트키인 하루키의 작품을 연달아 두편 읽었다. 어라? 근데 모두 처음 읽은 작품이었다.



N23042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개인적으로 하루키의 장편 > 단편 > 에세이 순으로 좋아한다. 어떤분들은 에세이를 더 좋아하기도 하던데 난 확실히 하루키의 장편이 좋다. 그래서 하루키의 장편은 다 읽었는데 에세이는 아직 안읽은 작품이 몇개 남아있다. 그래서 행복하다. 반면 더이상 새롭게 읽을 작품이 없는 소세키랑 도스토예프스키는... 재독해야겠다...


하루키 에세이 세트 중 두번째로 읽은 작품이 이 책이다. 왜 이책을 골랐냐 하면 바로 책의 제목 때문이었다. 저 제목은 무엇을 의미하는걸까? 왜 F심 연필과 세일러복을 입은 여학생을 연관시킨 걸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아직도 모르겠다. 누가 아는 사람 없나요?

[˝그런데 무라카미 씨는 평소에 어떤 연필을 사용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늘 F심 연필을 사용하니까 ˝F를 쓰는데요˝라고 대답하자, 그 사람은 이 렇게 말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늘 생각하는 건데, F심 연필은 세일러복을 입은 여학생 같지 않습니까?˝]  P.90


이 책에는 이런 비슷한 류의  쿨한 에세이들이 아주 많이 실려있다. 책을 읽다보면 나까지 쿨해짐을 느낀다. 뭔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나 감동은 없지만 정말 재미있다. 재미는 100퍼센트 보장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하루키가 추천하길래 <장 크리스토프>를 일단 구매했다 ㅎㅎ <고요한 돈 강>  읽고 나서 읽어봐야 겠다.

[십대 시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장 크리스토프』『전쟁과 평화』『고요한 돈강』을 세 번씩 읽었던 것이 정말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당시에는 책의 두께가 두꺼울수록 좋았던지라, 『죄와 벌』 같은 작품은 페이지가 너무 적어 성에 안 찬다고 생각 했을 정도였다. 그 시절에 비하면 - 나이를 먹어 책 한 권을 찬 찬히 읽게 되었다는 변화도 있지만- 독서량이 오분의 일 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  P.153




N23043 <도쿄 기담집>

하루키의 번뜩이는 상상력이 빛나는 다섯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우연에 우연히 겹쳐서 결국 어느 곳엔가 다다르게 된다는 이야기인 <우연한 여행자>,

하나레이 만에서 서핑을 하다가 상어에 물려 한쪽 다리를 잃고 죽은 아들과 그를 기리기 위해 매년 하나레이만을 찾는 어머니의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인 <하나레이 만>,

(댄스 댄스 댄스가 연상되는..) 24층과 26층사이에서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인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오이디푸스 왕이 연상되는...) 남자가 일생동안 만날 수 있는 진정한 여자는 평생 3명이라는 아버지의 예언(저주?)에 묶여서 제한된 만남밖어 할 수 없었던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인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말하는 원숭이, 이름을 훔쳐가는 원숭이, 그러고 보니 나도 가끔 이름을 까먹는데 누가 내 이름표를 훔쳐간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했던 이 책의 대표작인 <시나가와 원숭이>까지


하루키가 써내려간 다섯편의 이야기가 모두 기묘하고 흥미롭다. 요즘같은 장마철에 가볍게 읽기 좋은 작품집이라 생각한다. 교훈 또는 감동을 준다거나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찾는 분들은 별로라고 하겠지만, 책을 읽고 나서 꼭 뭔가 남는게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Ps. 책은 저번주에 다 읽었는데 이제서야 리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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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7-16 13: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시리즈 디자인이 예쁘게 나왔네요ㅎㅎ
도쿄 기담집은 여름 날에 읽기 딱 좋을 것 같은데 도서관에 있나 찾아놔야겠어요!

새파랑 2023-07-16 13:35   좋아요 2 | URL
요 에세이집 완전 소장각입니다~!! 알록달록하니 엄청 예쁩니다~!!

잠자냥 2023-07-16 14:27   좋아요 2 | URL
전 예전 버전으로 다 있는데 이것도 예쁘네요!

새파랑 2023-07-16 15:24   좋아요 1 | URL
이건 소장용입니다 ㅋ 페이지 페이지 넘길때 조심해어 읽었습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3-07-16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유없이 좋은 게 분명히 있어요.
이번주에 새파랑님 좋아하는 두 작가의 작품을 연속으로 읽으신 거네요!
저는 하나레이 만, 영화가 좋아 도쿄 기담집 읽었지만 지금 기억이 하나도 안나요 ㅋㅋ

새파랑 2023-07-16 20:00   좋아요 3 | URL
하나레이만이 영화도 있다고 어디서 본거 같습니다 ㅋ

기억에 남을 만한 명작이 아닌거 같긴 합니다 ㅋ 저는 그냥 좋았습니다 ^^

scott 2023-07-16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옹 지금 미쿡 체류중 ㅋㅋ
인생은 하루키 옹처럼 ^^

새파랑 2023-07-17 11:32   좋아요 1 | URL
하루키옹은 만수무강 하셔서 세계 최고령자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희선 2023-07-17 02: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직 읽지 않은 게 있고 이번에 만나서 좋으시겠습니다 많이 읽어서 읽을 게 없는 작가군요 그런 작가가 한사람이 아니네요 하루키 소설이 빨리 한국에 나와야 할 텐데...


희선

새파랑 2023-07-17 11:33   좋아요 2 | URL
저도 신작 발매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제가 읽지 않은게 있다니 하루키옹도 많이 쓰신거 같아요~!!

고양이라디오 2023-07-19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오늘 <도쿄기담집> 다 읽었습니다. 새파랑님의 리뷰가 보여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ㅎ

1000% 공감가는 리뷰입니다^^

새파랑 2023-07-19 22:34   좋아요 1 | URL
오ㅋ 또 읽으셨군요~! 제가 왜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는지 후회됩니다 ㅋ 역시 하루키는 다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