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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4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지음, 임수현 옮김 / 민음사 / 2005년 9월
평점 :
N22135
˝내가 원하는 것을 당신은 절대 가질 수 없을 겁니다.˝
‘당신의 욕망을 채워주고 싶은 사람(딜러)‘과 ‘당신에게는 욕망이 없는 사람(손님)‘과의 대화는 평행을 달릴 뿐이다. 합의점을 찾을 수 없다.
‘베르나르마니 콜데스‘의 희곡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단절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쉬지 않고 전개된다. 딜러는 손님에게 당신이 가지길 원하는 것, 욕망을 말하라고 하며 자신이 이를 들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손님은 자신은 욕망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딜러는 그렇다면 왜 자신이 있는 이곳까지 왔는지 물어본다. 손님은 우연이라고만 한다. 그리고 서로는 서로에게 숨기고 있는 본심을 털어놓을 것을 설득한다.
[딜러 : 유일하게 존재하는 경계란 사는 자와 파는 자 사이의 경계뿐이지만, 이 둘의 욕망과 그 대상은 모두 들쑥날쑥하기에 그저 불확실할 뿐입니다. 그래도 인간이나 동물들 사이에서 암컷이나 수컷으로 구분되는 것보다는 덜 부당하지요. 내가 잠시 겸손함을 가장하고 당신에게 거만함을 건네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당신과 내게 어쩔 수 없이 똑같이 주어진 이 시간에, 당신과 나를 구분하기 위해서란 말이지요.] P.13
[손님 : 나의 욕망으로 말하자면, 내가 이런 황혼의 어둠 속에서, 꼬리조차도 보이지 않는 동물들이 으르렁거리는 이곳에서 기억해 낼 수 있는 욕망이 있기나 한 걸까요. 당신이 겸손함을 내던지고, 내게 거만함이라는 선물을 주지 않기를 바라는 확실한 욕망을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왜냐하면 난 거만함에 대해서는 일종의 약점을 갖고 있는 데다가, 겸손함은 내 것이건 남의 것이건 증오하기까지 하거든요.] P.17
‘지하의 공간, 짐승의 시간, 곡선의 우회, 어둠의 영역‘에 속하는 딜러, 그리고 ‘도시의 공간, 인간의 시간, 직선의 이동, 빛의 영역‘에 속하는 손님. 그들은 처음부터 만나서는 안될 사람들이었다. 갑의 위치에 있는 손님은 딜러에게 자신이 원하는걸 맞춰보라고 하지만, 딜러는 그럴수 없었다. 말하지 않는 타인의 욕망을 알 수는 없으니까. 왜 딜러는 손님에게 집착할 수 밖에 없는 걸까?
[딜러 : 모든 장사꾼들은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욕망까지도 만족시켜 주려고 애쓰는 반면, 손님들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제안하는 것을 언제든지 거절할 수 있다는 데서 가장 큰 만족감을 느끼곤 하니까요. 그가 밝히지 않은 욕망은 이렇듯 거절에 의해 더욱 고무되고, 장사꾼을 모욕하는 데서 느끼는 쾌감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잊게 되는 것입니다.] P.36
[손님 : 이곳에 익숙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고 나는 여기서 이방인일 뿐입니다.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도 나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도 나지요. 난 당신을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고 다만 어둠 속에 있는 당신의 모습을 추측할 뿐입니다. 뭔가를 알아맞히고 이름 붙여야 할 사람은 당신입니다.] P.41
결국 두 사람 사이의 감정대결은 극에 달하고 인내심이 바닥난 딜러와 제로이고 싶은 손님의 사이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서로의 알 수 없는 마음, 드러내지 않는 속내, 함께 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두 사람에게 미래가 있을까?
[딜러 : 추억이란 사람이 발가벗겨졌을 때조차도 꼭 지니고 있는 비밀 무기랍니다. 상대방 또한 어쩔 수 없이 솔직해지게 만드는 최후의 솔직함이죠. 정말 마지막 하나까지 다 벌거벗은 상태라고나 할까요.] P.63
[손님 : 정의할 수 없는 시공간인 이 시간과 이 장소의 끝없는 고독 속에서 우린 혼잡니다. 내가 여기서 당신을 만날 이유도, 당신이 나와 마주칠 이유도, 온정을 나누어야 할 이유도, 우리가 내세울 만한,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해 줄 만한 적당한 수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단순하고, 외롭고, 오만한 제로가 됩시다.] P.69
작가는 딜러와 손님 사이의 대화를 통해 마음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운 인간관계의 파국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팔아야 하는 딜러는 처음에는 약한 쪽이었지만 관계가 끝으로 갈수록 더 분노하게 되고 그동안의 노력을 청산받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손님은 점점 더 냉담해 질 뿐이었다.
꼭 인간관계 뿐만 아니더라도, 개인이 체득한 이성(손님)과 개인이 숨기고 있는 욕망(딜러) 사이의 내적 갈등을 표현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타협할수 없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언제나 갈팡질팡하는 인간의 마음을 문장으로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혹시 읽게 된다면 꼭 두번 이상 읽어야 이 작품의 의미를 약간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이란 없습니다. 사랑은 없어요. 아니, 당신은 이미 존재하는 건 아무것도 손에 넣을 수 없을겁니다. 인간은 죽은 다음에야 자신의 죽음을 찾아 헤매고, 하나의 빛으로부터 또 다른빛을 향해 이동하는 위험한 여정 중에 마침내 우연히 죽음을 만나게 되니까요. 그러곤 이렇게 말하죠. 결국 이것뿐이었다.] P.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