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0번 출간 기념 리커버 컬렉션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절판


N22045

"뭔가 잘못된 겁니다. 도대체 인간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땅에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인간입니다."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나보니 낯선 사람들이 집에 있고, 그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프란츠 카프카"가 쓴 <소송>의 주인공인 은행의 부장 "K"는 소설이 시작하자마자 이런 상황을 겪게 된다. 과연 그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체포된걸까?

["여기서 나갈 수 없소. 당신은 체포되었소.". "그런 것 같군요. 그런데 도대체 이유가 뭐죠?" "우리는 그런 걸 말해줄 입장이 아니오. 방으로 돌아가 기다리시오. 이제 소송 절차가 시작되었으니, 때가 되면 모든 걸 알게 될 겁니다."]  P.11



하지만 "K"는 체포되었다고 하지만 바로 감옥에 갖히거나 하지는 않는다. 요즘으로 치자면 불구속 기소 정도? 그는 처음에 누군가로부터 모함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하지만 그전에 나는 도대체 무슨 범죄를 저지를 걸까?

["이봐, 빌렘, 저자는 법을 모른다면서도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군." "자네 말이 맞아. 이 친구는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 다른 감시인이 말했다.]  P.16



도저히 무슨 죄를 저지른 건지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일단 체포되었기 때문에 나는 예심판사에게도 심리를 받아야 했고, 법원 사무처에도 가야 했다. 나는 아무 죄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법부와 관련된 곳을 가게 될 때마다 무기력해짐을 느낀다.

[평소 건강 상태가 아주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급격한 변화는 아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동안의 시험을 너무 쉽게 견뎌냈기 때문에 혹시 그의 육체가 반발하여 그에게 새로운 시험을 마련해주려는 것일까?]  P.100



결국 나는 점점 일상에 지장을 받게 된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내가 체포된 것을 안다. 하지만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제발 이름은 묻지 마세요. 하지만 당신의 잘못이 있으면 고치시고, 더 이상 그렇게 고집을 세우지 마세요. 아무도 이 법원에 맞서 싸울 수는 없고, 결국 자백할 수밖에 없어요.]  P.133



점점 코너로 몰리게 된 것을 느낀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지만, 차라리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싶다.단지 이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모르는 죄를 받아들이고 사건의 판결이 늦춰지게 하는 타협을 하고 싶다. 하지만 받아들일 순 없다. 왜냐면 나는 죄가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나의 죄는 뭐란 말인가?

["중요한 건 수없이 많은 미묘하고 세세한 일들인데, 법원이 그것들을 캐고 따지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는 거지요. 그러다가 결국 법원은 본래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심각한 죄를 끌어내지요."]  P.183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을 읽다보면 아마 대다수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이다. 도대체 "요제프 K"의 죄는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어도 이에 대한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책의 초반에 "K"가 말하는 누군가에게 모함을 당했다라는 힌트만 있을 뿐이다.

[이 법률 세계의 오래된 격언 하나를 말해주겠소. 피의자 한테는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것이 더 낫다는 격언이오. 왜냐하면 가만히 있는 자는 언제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울 접시에 올라가 자신의 모든 죄와 함께 저울질당할 수 있기 때문이오.]  P.239



죄명이 안나오는 이유는 아마 '어떤 죄를 저질렀는가'는 중요한게 아니고, '어쨌든 당신은 체포되었다'라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법이라는 체계에 일단 발을 들여놓게 되면 죄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결국은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은 피폐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사법부라는 곳은 비인간적인 곳이라는 것을 "프란츠 카프카"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면 "카프카"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인간이 태어나서 인생을 경험하는 것, 불완전한 인간의 존재 자체가 죄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건 내가 이해한 부분은 아니고 해설에 그렇게 나와있다. 워낙 해설이 잘 쓰여 있고 숨겨진 의미도 잘 정리해줘서 내 리뷰는 해설하고 좀 다른 방향으로 써봤다.)



책을 읽고 나서 왜 <소송> 이라는 작품이 명작이라고 칭송받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감상평을 적어보자면,

1. 일단 글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글을 읽으면서 내내 어두운 뒷골목의 거리와 낡은 건물의 긴 복도가 머리속에 그려졌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표정하고 가식적으로 느껴졌으며, 문장 자체가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2. 그리고 주인공인 "요제프 K" 가 느끼는 불안함이 문장을 통해 그대로 느껴졌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불안함을 느꼈다. (누군가가 노크할 거 같고,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카프카"의 필력이 정말 대단하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원서를 읽을 수는 없지만 번역도 아주 잘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3. 해설을 보면 "카프카"가 이 책은 처음 썼을 때 첫부분과 끝부분을 먼저 완성했고 중간부분은 미완성이라고 하는데, 이런 미완성이 오히려 작품의 우울하고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더욱 부각시켜준다. '이 분위기 어떻게 할꺼야?' 이런 느낌?





지금까지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은 <변신>, <시골의사> 이렇게 두 단편만 읽어봤었는데, <소송>을 먼저 읽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든다. "카프카"의 대표작은 <변신>이 아니라 <소송>이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빨리 읽어봐야 겠다.


PS. 경찰이나 검찰, 법원과는 되도록이면 안엮이는게 좋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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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3-21 14: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독서 모임 책으로
만난 책이네요.

아마 영화도 본 것 같은데
아마 카일 맥라클렌이 주
인공으로 나오지 않았나
싶네요.

새파랑 2022-03-21 14:59   좋아요 3 | URL
독서모임 책으로 하기에 딱 좋은 책인거 같아요 ㅋ 영화도 엄청 재미있을거 같아요~ 이제 카프카도 열심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페넬로페 2022-03-21 15: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내용은 기억 안나지만 ‘요제프 K‘라는 이름은 또렷이 기억납니다. 카프카 읽기가 어려운 것 같지만 말하고자 하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을것 같아요~~
일단 소송에 한 번 발을 디디면 나중엔 저지른 죄보다 그 절차로 사람 진을 빼놓죠^^
안엮인다~~절대적 진리입니다^^

새파랑 2022-03-21 15:40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 벌써 읽으셨군요 ㅋ 읽으면서 책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어요. 일단 법없이 살수 있다지만 최대한 안엮이는걸로 ^^

미미 2022-03-21 15: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도 카프카는 아직<변신>인데 새파랑님 리뷰 읽고보니 <소송>을 꼭 읽어야겠어요! 저 읽다말았는데 왜그랬을까요ㅋㅋㅋ그 후에는<성>도 읽고 <카프카일기>까지도 보고싶어요. ‘법‘이란 세상살이 중 평범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끝판왕이란 생각도 듭니다.^^*

새파랑 2022-03-21 16:17   좋아요 2 | URL
예전에 미미님 소송 구매하셨던거 같은데 읽다가 접으셨군요 ㅋ 전 완전 흥미롭더라구요~ 뭔가 저세상 분위기였어요 ^^ 한번 다시 읽어보시면 재미를 발견하실 수 있을거 같아요 ~!!

거리의화가 2022-03-21 16: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소송 을 이렇게 평가하셨군요. 카프카 변신만 읽어봤는데 소송을 먼저 읽어볼걸 하는 생각도 드네요.

새파랑 2022-03-21 16:36   좋아요 3 | URL
이 책 뒤에있는 해설이 정말 잘 쓰여 있는데, 읽어보면 아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더라구요. 전 제가 느낀대로 일단 받아들였습니다 ㅋ 해석과는 별개로 읽는 재미가 있더라구요 ^^

희선 2022-03-22 00: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살면서 경찰 법원하고 엮이지 않는 게 좋겠지요 죄도 짓지 않은 사람이 끌려가면, 자신이 죄를 지었나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거짓 자백까지 하고... 이런 것도 생각나다니... 지금도 죄를 짓지 않았는데, 어쩌다 잘못해서 끌려가는 사람 있을 듯합니다 그런 일 일어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2-03-22 06:20   좋아요 3 | URL
희선님은 법없이도 살수 있을거 같아요 ^^ 요즘 시대에는 그런게 별로 없을거라 믿습니다~!!

mini74 2022-03-22 2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무서운데요. 독재시절도 떠오르고 프랑코 통치시절 스페인 등도 떠오르고. 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떠올라 새파랑님 글만 읽는데도 두렵네요 ㅠㅠ

새파랑 2022-03-22 21:32   좋아요 1 | URL
미니님 이 책 좋아하실거 같아요 ㅋ 약간 카뮈의 부조리도 연상되기도 하더라구요. 카프카가 형일거 같지만요 ㅎㅎ 무섭긴한데 재미있어요 ^^

고양이라디오 2022-03-23 1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송>도 읽고 싶은 책인데ㅎㅎ 새파랑님 부럽습니다ㅎㅎ

새파랑 2022-03-23 22:14   좋아요 2 | URL
고양이라디오님도 <소송> 읽어보세요. 왠지 잘 맞으실거 같아요 ^^

고양이라디오 2022-03-24 10:22   좋아요 1 | URL
어제 80p쯤 읽어봤는데 저랑 <소송>은 잘 안맞는 거 같아요ㅠ

더 읽어봐야겠네요ㅎ

새파랑 2022-03-24 10:48   좋아요 1 | URL
앗 ㅜㅜ 그러시군요. 이 책 평을 보니까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