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는 그들이 바로 주인이야. 사랑하고 사랑받을 때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어.˝


사람이 꿈을 이루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꿈은 그걸로 끝인 걸까? 아니면 또다른 꿈을 찾아야하는 걸까? 그런데 무엇 때문에 사람은 꿈을 이루기 위해 그렇게 노력을 하는 걸까?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 열여섯 번째 작품인 <꿈>은 이러한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자신의 부모도 알지 못하는 채 태어나자 마자 버려져 여러 양부모에게서 자라난 ˝앙젤리크˝, 그녀는 양부모의 괴롭힘을 버티지 못하고 가출을 하게 되고 ‘보몽‘의 성당 앞에서 쓰려지게 된다. 그곳에 세워진 처녀 조각상에 바싹 붙어 피신한 그녀는 한밤의 추위를 이겨내고, 다음날 성당 인근에 살던 사제복 제조 장인 ˝위베르˝ 부부에게 발견된다.


부모의 반대에 의해 결혼했으나 자녀가 없었던 ˝위베르˝ 부부는 ˝앙젤리크˝를 받아들이고, 그녀에게 자신들의 사제복 제작 기술을 가르친다. 이후 그녀가 혹시 잘못된 길로 빠질까봐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주말 미사를 제외하고는 오로지 집에만 머물게 한다. 그녀는 그렇게 세상 물정을 모른채, 명량한 성격임에도 홀로 있는걸 좋아하는 소녀로 성장하게 된다.


어느날 아침 ˝앙젤리크˝는 먼지로 뒤덮인 아틀리에의 마루바닥에서 ‘황금빛 전설‘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고, 이 책은 외롭게 사는 그녀의 성격을 결정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스도의 성인들과 성경에 쓰여진 역사가 그림과 함께 쓰여진 이 책은 그녀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처움에는 책의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으나 점점 책에 빠지게 되고 특히 아름다운 성녀들의 이야기를 동경하면서 그녀 역시 그와 같은 고귀한 운명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꿈을 꾸게 된다.

[˝아! 허영심 많은 것, 아! 욕심쟁이, 넌 도저히 구제 불능인 거니? 여왕이 되고 싶은 욕심으로 아주 가 버렸어. 그 꿈은 말이야, 설탕을 훔치거나 무례한 대꾸를 하는 것보다는 덜 고약한 거야. 하지만, 흠, 악마가 그 뒤에 숨어 있어. 열정과 오만이 그 뒤에서 말하고 있단 말이지.˝]  P.75



열다섯살이 된 ˝앙젤리크˝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처녀로 성장하게 되고, 어느날 성당 그림 유리창 수선공인 ˝펠리시앵˝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가깝게 붙어 있을 수는 없지만 서로를 바라볼수 있는 거리에서 그들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마음으로만 그리다가, 결국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무엇이 있는지 소리 높여 말할 필요가 없을 때가 있다. 보이지 않는 메신저들이 그 사실을 옮겨 주고, 침묵하는 입이 그 사실을 반복해 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가 얼굴을 돌리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감미로운 순간이었다.]  P.112

[낮은 저녁의 만남을 위한 것이었고 밤은 아침의 만남을 위한 것이었으니, 그렇게 사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또 있을까?]  P.122



그러나 그 둘의 사랑을 가로막는 변수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신분의 차이였다. ˝앙젤리크˝ 자신은 모르지만 그녀는 행실이 나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였고, 현재는 성당의 사제복을 만드는 평벙한 가정에 입양된 소녀였지만, ˝펠리시앵˝은 사실 그 성당의 주교이자 귀족 출신의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던  ˝장 오트괴르 주교˝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사실 주교는 아픈 사랑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사랑했던 부인은 ˝펠리시앵˝을 낳다가 죽게 되고, 그는 부인을 너무 사랑했기에 부인의 목숨과 바꾼 ˝펠리시앵˝을 키울수 없었으며, 그를 다른 집안에 보내 성장하게 하다가 20년이 지나고 나서 그를 데려온 것이었다. 현재 그는 ˝주교˝의 신분이었지만, 사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뺏어간 신을 원망하며 살아왔던 평범한 인간이었다.


˝앙젤리크˝의 부모인 ˝위베르˝ 부부는 ˝펠리시앵˝과의 신분 차이 때문에 그녀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단정하고 딸에게 그를 잊으라고 한다. 그리고 ˝펠리시앵˝은 다른 귀족 집안과 이미 결혼하기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둘의 결혼은 불가능하다고 딸에게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펠리시앵˝ 역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고, 그는 너를 잊었다고 딸에게 이야기 한다.


˝앙젤리크‘는 겉으로는 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꿈이 결코 이룰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성녀들의 이야기와 같이 그녀의 앞에도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훗날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예요. 아니 알고 있다고 확신해요. 당신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부유하고 가장 고귀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저의 꿈이기 때문이죠. 전 평온한 마음으로 기다려요. 전 확신해요. 그 꿈이 이루어지리라는 걸. 당신은 제가 소망하던 바로 그 사람이고, 전 당신의 것이에요.]  P.172



결국 ˝펠리시앵˝은 늦은밤 몰래 그녀의 방에 나타나게 되고, 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함께 도망가서 살자고 ˝앙젤리크˝ 제안한다. ˝앙젤리크˝는 갈등하지만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예수님과 동일시하게 생각하는 ˝주교(펠리시앵의 아버지)˝의 허락을 얻지 못하고 그와 함께 떠나면 그것은 신의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팰리시앵˝은 떠나고, 그녀는 현실와 이상 사이에서 오는 사랑의 간극으로 인해 점점 죽어가게 된다. 사랑보다는 죽음을 선택한 그녀는 이제 하루를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안좋아지게 된다. 그녀를 그렇게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고 판단한 ˝주교˝는 그녀의 집을 방문하여 그녀를 위해 기도를 하고, 그녀와 아들의 결혼을 허락하게 된다. 그러면서 ˝주교˝는 다 죽어가던 ˝앙젤리크˝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대면서 ˝하느님이 원하시면 나도 원하노라˝라는 말을 한다. 바로 그 순간 다 죽어가던 ˝앙젤리크˝는 눈을 뜨게 된다. 이건 기적일까? 아님 꿈인 걸까?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난 ˝앙젤리크˝, 하지만 그녀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마치 다 나은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그녀는 현재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슬퍼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지금 살고 있는 것 자체가 그녀에는 기적이었기 떄문이다. 마지막 꿈을 이루기 위해 그녀는 육체의 고통을 이겨내어 결혼식 날 까지 살아남게 되고, 성당으로 입장하여 성스러운 결혼식을 치루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팰리시엥˝과의 입맞춤을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다.

[그녀는 행복의 끝점에 반드시 이르게 될 것이라는 변함없는 확신을 갖고 있었으므로 행복의 환희 속에서 영원히 떠나가 버리고 말것이라는 예감에는 어떤 안타까움도 느끼지 않았다. 고통은 기다려 줄 것이다. 이제 그녀의 거대한 환희는 침착하고 사색적이 된 듯했다.]  P.305



하지만 모두 예상했다는 듯이 아무도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고,  ˝주교˝는 그녀의 영혼을 해방시켜 주었고, ˝위베르‘ 부부는 용서를 받았으며, 성당과 도시는 축제에 쌓인다. 혹시 결혼식 자체가 ˝앙젤리크˝의 꿈, 또는 ˝펠리시앵˝의 꿈은 아니었을까?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온 환영은 다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돌아갔다. 그것은 어떤 환각을 일으킨 다음 사라져 버리는 허상에 불과했다. 모든 것은 꿈일 뿐이다. 그리고 행복이 절정에 이른 순간 앙젤리크는 사라졌다. 입맞춤의 가느다란 숨결 속에서.]  P.320



성당을 배경으로 종교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다소 성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이러한 종교적인 이야기가 극의 몰입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야기의 신비함을 더해주었다. 되풀이되는 운명의 굴레 속에서 결국 현실에서의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꿈을 이룬 그녀의 마지막은 결코 슬프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펠리시앵˝은 ‘황금빛 전설‘을 읽으면서 그녀가 사랑하게 된 ˝신˝의 발현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희망없던 삶에 나타난 한줄기 희망은 바로 사랑이었다.



ps 1. <목로주점>과 <인간짐승>에 이은 ˝에밀 졸라˝의 세번째 읽은 작품이 <꿈>이었다. 이전에 읽은 작품들에 비해 <꿈>은 많이 순한맛(착한맛?) 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순한맛 나름의 읽는 재미가 있었다. 특이한건 이 작품 이후에 출판된 작품이 <인간짐승>이라는 거다. ˝에밀 졸라˝의 다음 작품으로는 <나나>를 정말 꼭 읽어야 겠다.



ps 2. 오랜만에 노래 소개. ‘꿈‘과 관련된 노래는 너무 많지만, 나름 안유명(?)하면서도 오래된 좋은 노래 한곡 소개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 노래의 가사 생각났다. 초등학교 시절 테이프로 많이 듣던 노래.

<꿈에서 본 거리>
https://youtu.be/DKxAsWbRBJQ
어지럽던 내사랑도 이제는 하늘 저멀리
구름 위로 날려 버린채
숨가쁜 생활을 벗어날 수 있는 그곳은
내 꿈에서 본 거리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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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28 21: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에밀 졸라의 이야기치곤 색다르네요. 순한 맛 ㅎㅎ 저는 고딩때 야자시간에 몰래 이어폰 꼽고 듣던 노래네요 *^^*

새파랑 2021-11-28 21:57   좋아요 5 | URL
미니님 고딩때 저는 초딩~!! 제 초등학교때 푸른하늘이 해체했던 기억이 납니다 ㅋ
표지만큼 순했던 책이었어요~!!

scott 2021-11-28 22:02   좋아요 5 | URL
푸른 하늘 모르는 사람 여기 .🖐 ^^

새파랑 2021-11-28 22:10   좋아요 5 | URL
푸른하늘 나름 90년대에 인기 많은 그룹이었어요 ㅋ 테이프 열심히 모았던 기억이 😅 요새 티비에서 유영석님 나오시던데 그때는 엄청 인기 많으셨어요 ^^

그레이스 2021-11-28 22: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순한 맛 좋음!

새파랑 2021-11-28 22:11   좋아요 6 | URL
책을 읽으면서 성스러워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

페넬로페 2021-11-28 22: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이야기는 요즘 드라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버전인데 종교적인 내용이 가미되어 있어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을것 같네요~~
에밀 졸라 계속 읽기에 박차를 가하시네요
주말에도 쉬지 않으시는 새파랑님^^

새파랑 2021-11-28 22:53   좋아요 5 | URL
이번 주말에는 그래도 책을 좀 내려놨었는데 ㅋ
에밀졸라 로맹가리 소세키 공평하게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

미미 2021-11-28 23: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역시 하나빼곤 다 세드앤딩이군요😭 그래도 막상 읽으면 좋을것 같아요ㅋㅋㅋ댓글도 재밌고요ㅋ

새파랑 2021-11-29 07:07   좋아요 1 | URL
에밀 졸라의 마니아 미미님은 꼭 읽으셔야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밀 졸라 책은 잘 읽혀서 특히 좋은거 같아요 ^^

희선 2021-11-30 0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앙젤리크는 가장 좋을 때 죽었군요 그게 꿈일지도 모르지만... 가장 좋은 순간에 죽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다시 괴로운 일을 겪지 않아도 되니... 앙젤리크는 몸이 아파서 그랬지만, 건강한 사람은 그 뒤도 있겠네요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해도 그게 늘 좋은 건 아닐지도 모르는...


희선

새파랑 2021-11-30 07:14   좋아요 0 | URL
앙젤리크는 이름부터 천사 더라구요~ 가장 행복할때 죽는것도 그렇게 나쁜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 순간만 기억할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