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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림태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0월
평점 :
"너였다. 지금껏 내가 만난 최고의 문장은, 나는 오늘도 너라는 낱말에 밑줄을 긋는다. 너라는 말에는 다정이 있어서, 진심이 있어서, 쉬어갈 자리가 있어서, 차별이 없어서,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 나는 너를 수집했고 너에게 온전히 물들었다."
너라는 단어는 참 예쁜 말이다. 상황에 따라 부정적으로 쓰일 때도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너라는 단어는 정말 다정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랬을까?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라는 책은 제목만으로도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림태주 시인님이 쓰신 에세이에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하고 온통 밑줄을 긋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중 몇개의 좋은 문장만 소개해 보자면,
[오늘 생을 마감하는 사람에게 내일이라는 시간은 전 재산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가치를 지닌다. 우리 모두는 시간 앞에서 유한한 존재들이다. 내가 가진 시간의 양이 목숨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고 있다는 말은 내 목숨의 일부를 내주고 있다는 의미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을 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도 내 목숨이 사용된다. 그래서 인생에서 시간은 어느것에 더 목숨을 소비하고 사용했느냐의 결과를 말한다.] P.20
나의 시간을 너에게 내어주는 것은 내 목숨의 일부를 내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부정적인 사람 보다는 긍정적인 사람을 만나고 싶다. 재미없는 책 보다는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다.
[탐욕의 언어로 믿음을 정의하지 말자. 믿는 마음을 더럽히지 말자. 믿음은 바라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자신의 마음을 지켜보는 것이다. 나의 유익과 기대 때문에 누군가를 힘들게 하거나 자신을 옭아매게 해서는 안 된다. 믿음은 내 마음을 지키고 다스리는 일이다. 나의 욕심을 잠그는 일이다.] P.25
믿음이라는 말로 상대방을 구속해서는 안된다. 믿음은 너에 대한 것이 아닌, 나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백 마디의 좋은 말보다 나쁜 한 마디의 말에 자신의 기분을 온통 맡겨버릴 때가 있다. 이것은 생의 낭비다. 내면의 평화를 연습하지 않으면 인생은 악마의 말 한마디에도 함락될 수 있다.] P.69
말 한마디에 흔들리지 말자. 흔들릴 필요가 없다.
[정말 변한 것이 있다면 사람이 아니라 상황과 환경이다. 혹은 내가 미처 몰랐던 원래 그 사람으로 되돌아간 것일 뿐이다. 이 바뀐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그 사람의 본모습을 대면하는게 두려운 것, 이것이 관계의 비극이다.] P.73
사람이 변했다고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미쳐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변한건 시간일 뿐이다.
[어쩌면 인생은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마음, 하지 않은 마음에 진면목이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서 좋아하는 무엇을 하는 만큼, 싫어하는 무엇을 하지 않는 것, 그 깊은 마음은 사랑을 그윽하게 만든다.] P.74
때로는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그게 더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타인에게 보여준 언어가 되돌아와 당신이 된다. 당신이 별을 보여줬기 때문에 우주가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당신이 먼저 와 있었기 때문에 기다리는 사람인 걸 나는 안다. 당신이 꽃을 들고 왔기 때문에 향기로운 사람인 걸 나는 안다. 당신이 보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에 다정한 사람인 걸 나는 안다. 그렇게 당신이 내게 보여준 말의 색채가 어느새 나의 빛깔이 되었다는 걸 부인하기는 어렵겠다.] P.196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보여지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해서 소중한 것을 알게 된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별 어려움 없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어마어마한 특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독서는 유난스러운 일도 아니고 특별한 능력도 아니다. 독서를 하지 않는 이유는 시간이 부족하거나 다른 재밋거리에 빠져서 이지 읽을 줄 몰라서가 아니다. 그런데 사실 독서는 인간의 노력으로 얻게 된 엄청난 행운이다. ] P.230
독서는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노력으로 얻게 된 엄청난 행운이다.
[사랑이 식었다는 말은 의미가 희미해졌다는 거고, 배신당했다는 말은 의미가 더렵혀졌다는 거고, 상처받았다는 말은 의미가 다쳤다는 거고, 숨 막힌다는 말은 의미가 파괴됐다는 거고, 잊었다는 말은 의미를 잃었다는 거다. ] P.241
이런 문장을 읽다보면 그냥 감탄하게 된다.
사실 멋진 문장이 쓰여있는 에세이는 대단히 많고, 굳이 책으로 읽지 않더라도 인터넷이나 SNS에서도 멋진 문장들은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문장들이 모두 인상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문장들이 쓰이게 된 스토리나 배경에 공감이 되지 않거나, 아니면 그런 스토리나 배경 없이 멋진 문장만 나열한 글은 아무리 멋진 문장이라 하더라도 밑줄을 긋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들만 많은게 아니라, 그 문장이 등장하게 되는 스토리나 배경에 공감하였고, 문장들에 담긴 작가님의 진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서 좋았다. 밑줄을 긋고 싶었다.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그렇게 좋은 것이다.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겨울이 오기 직전인 이 시기에 정말 잘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