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잊어버리려면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어.˝
˝프랑수아즈 사강˝ 좋아하나요? 누가 나에게 물어보면 좋아한다고 할 거 같다. 끝에는 점 세계(...)를 찍고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사강의 작품을 많이 읽은 건 아니다. <슬픔이여 안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딱 두편 읽어 보았다. 그런데 이 두편이 역대급으로 좋았다. 그래서 나는 사강을 좋아하고, 그녀의 작품을 한번씩 검색해 본다. 그런데 막상 살 수 있는 책이 별로 없었다. 새책은 대부분 절판이고, 중고책도 우주점에는 있지만 알라딘 직접 배송 상품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한 우주점에서 정말 가지고 싶었던 음반(김광진 5집)이 있길래, 배송비를 아끼려고 2만원을 채우는 과정에서 검색을 했고, 사강의 책이 있길래 바로 구매했다.
(이때 산 게 김광진 5집, 길모퉁이 카페, 맹인악사 였다.)
나에게 있어서 사강하면 떠오르는건 그녀의 감각적인 문체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뭔가 음악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길지 않은 문장이 상당히 임팩트 있게 느껴진다. 이번에 내가 읽은 단편집 <길모퉁이 카페> 역시 사강 특유의 문체를 느낄 수 있고, 사랑의 덧없음에 대한 그녀 특유의 감정이 열아홉편의 단편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당신을 많이 사랑해요‘와 ‘당신을 많이 사랑했어요‘ 그리고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거에요‘와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려고요‘ 사이에는 서로 다른 사랑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세계를 레티시아도 감정적으로나 문법적으로나 해결하기 힘들었다.] P.153
사강에 대해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데뷔작인 <슬픔이여 안녕>의 대성공 이후 많은 작품을 출판했지만, 이와 동시에 그녀는 다소 막나가는(?) 삶을 살아간다. 담배와 술을 끼고 살았으며, 카지노에 빠져 인세의 대부분을 날렸으며, 연애와 약물에 중독되어 있었고, 말년에는 다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작품은 그녀의 삶과 다르게 반짝반짝였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녀의 비참한 삶이 그녀의 작품을 더욱 빛나게 했다고도 할 수 있다.
<길모퉁이 카페> 이 작품도 그녀의 다른 작품들처럼 그녀만의 매력이 넘쳐 흐른다. 단편들의 대부분의 주제는 사랑의 권태, 삶의 환멸, 인간관계의 실증, 담담한 죽음 등을 다루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울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와 섬세한 심리묘사 때문이다. 단편들의 페이지는 짧지만 단편들을 읽을 때마다 여운이 크게 남았다.
특히 그녀의 삶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단편들이 그녀의 인생을 투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감정이입이 되었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여자는 잠깐씩 생각에 잠긴 니콜라의 옆모습을 훔쳐 보았다. 스무 살이었다면 이 남자를 미친 듯이 사랑했을 거라는, 지금까지의 삶이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낭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P.47
[하지만 결국 난 죽게 되겠지, 그렇다면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말해야 할까? 하지만 무엇에 대해 말하지? 우리에 대해서? 우리 사이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거의 없거나.] P.55
[처음으로 감수성이라는 나약한 전선이나 허영이라는 강한 전선 뒤로 후퇴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의 죽음을 변명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 P.200
오랜만에 읽은 사강의 작품은 너무 좋았다. 다른 사람들이 사가기 전에 아직 남아있는 그녀의 절판된 책을 사야겠다. (그런데 오늘 벌써 책을 주문했다는...)
PS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0번 출판 기념 리커버판 5종이 나왔습니다. 사은품인 양장노트가 왠지 탐이 나서 5종 중 안읽어본 책인 ˝카프카˝의 <소송>을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선택한 사은품 양장노트는 노인과 바다 ㅎㅎ)
PS 2. <길모퉁이 카페> 리뷰를 쓰면서 들은 노래~ 왠지 사강과 이 작품하고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언니네 이발관 곡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
언니네 이발관, <산들산들>
https://youtu.be/cB2xyEY_JRs
그렇게 사라져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네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순간도 희미해져 갔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었지
하지만 잊을 수 없는게
어딘가 남아 있을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