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동산 열린책들 세계문학 22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렇게 소중했던 것이 사라져만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적 있나요?


단편의 황제 체호프의 희곡은 어떨까? 나는 예전에 희곡 읽기를 어려워 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희곡 읽기에 재미를 느껴서 주 1회 희곡 1편 읽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다.

나에게 있어서 희곡 읽기가 힘든 이유는 등장인물별로 대사가 나오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많아질 경우에는 누가 누구인지 햇갈려서 초반에 내용 파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계속 앞부분의 등장인물 소개 페이지 부분으로 돌아가야 해서 집중력도 떨어지고.

그래서 나름 요령이 생겼는데, 우선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을 어느정도 외운 다음 읽기를 시작하고, 그 다음에는 등장인물 페이지를 복사하거나 사진을 찍어서 바로 옆에 놓고 책을 읽는 것이다.
(쓰고 보니 특별한 요령이 아닌 것 같다...)

특히 극악 부도한 러시아의 경우, 사람 이름이 부칭, 성, 애칭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문제는 희곡 대본에 명시되는 등장인물 이름과 대화에서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건 러시아 소설을 읽다보면 느끼는 어려움과 동일한 건데, 러시아 작품의 경우 특유의 이름 파악의 어려움에 직면하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기 쉽다.

<갈매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꼰스딴찐 가브릴로비치 뜨레쁠례프˝를 예로 들자면,

꼰스딴찐(이름),  가브릴로비치(부칭), 뜨레쁠례프(성) 인데, 작품에서는 아래와 같이 4가지로 불리거나 표현된다.

1. 뜨레쁠례프 : 희곡 대사명
2. 꼬스짜 : 가족 등 친한 사람이 부르는 애칭
3. 꼰스딴찐  가브릴로비치 : 제 3자가 부르는 일반적인 표현
4. 꼰스딴찐 : 이것도 친밀한 표현

여기에 가족이나 형제자매 등 이름이 비슷한 또다른 인물이 등장하면 혼란은 증가한다.

이러한 점을 사전에 인지하고 희곡과 러시아 작품 읽으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한번 적어봤다.
(쓰고 보니 다른 분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일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두가 너무 길었는데 이번에 읽은 <벚꽃 동산>은 체호프의 희곡 6편이 실린 작품으로, 내가 읽은 체호프의 세번째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별 아홉개~!! 웃음과 사랑과 풍자가 가득한 작품으로 체호프의 단편을 좋아하거나 희곡을 좋아하는 사람 모두 만족할만한 작품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은 <청혼>, <어쩔 수 없이 비극 배우>, <기념일>, <갈매기>, <바냐 아저씨>, <벚꽃동산>  여섯 작품이다.

앞의 세 작품은 희극적인 희곡으로 아주 짧지만 연극을  보는 재미를 주는 단막 웃음극 이다.


<청혼>

이웃집 여인에게 청혼하기 위해 방문한 남자. 하지만 땅의 소유와 어느 집 개가 더 우수하냐는 문제가 언급되자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싸우게 되는데, 어느새 자기가 방문한 목적도 잊은채 화를 내며 돌아선다. 남자는 과연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이 비극 배우>

직장에서 치이고 집안에서 치이는 한 남자가 친구집에 방문하여 친구에게 신세한탄을 하는 이야기. 그는 이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지만 친구 역시 위안이 되지 못하는 이야기. 남자는 과연 비극배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기념일>

한 신용 조합에서 경리로 일하는 남자. 그는 조합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댓가는 보잘것 없고, 그의 노력은 모두 대표이사의 공이 된다. 지금도 그는 작성하고 있는 보고서의 기한을 맞추기 위해 열일중이다. 하지만 계속 그의 일을 방해하는 요인이 나타난다. 대표이사의 말 걸기, 대표이사 아내의 요란스러운 방문,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방문하여 떼를 쓰는 일반인까지. 결국 폭발한 남자는 돌아버리게 되고 난동을 피운다. 남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여기까지 언급한 세 작품은 정말 짧은 단막극이고, 아래의 세 작품은 어느정도 분량이 있는 희곡으로, 코메디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내포하는 의미는 다소 진지하고 다 읽고 나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갈매기>

희곡 작가를 희망하는 청년인 ˝뜨레쁠례프˝에게는 어머니이자 아름다운 여배우인 ˝아르까지나˝,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고 그의 희곡을 연기하는 ˝니나˝가 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에게는 젊고 유능한 작가인 ˝뜨레고린˝이라는 애인이 있었고, 어머니는 아들인 ˝뜨레쁠례프˝에게 대단히 인색하며, 아들의 재능을 무시한다.

˝뜨레쁠례프˝는 어머니와 지인들 앞에서 자신의 연극을 선보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이를 무시하게 되고 그는 이예 상처를 받는다. 게다가 ˝니나˝는 그의 어머니의 정부인 ˝뜨레고린˝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화가난 ˝뜨레쁠례프˝는 갈매기를 죽여서 ˝니나˝에게 보여주면서 자신도 곧 죽을거라고 말한다.

그에게서 어머니와 사랑하는 사람인 ˝니나˝를 뺏아갔으며, 자기보다 재능이 훨씬 뛰어난 ˝뜨레고린˝에 대한 질투는 극에 달한다. 모든걸 뺏기고 자괴감밖에 느낄 수 없는 ˝뜨레쁠례프˝,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어머니와 ˝니나˝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글을 쓴다. 하지만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직접 확인한 그는 자포자기의 상태가 된다.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았지만, 모든 걸 잃어버린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주변사람은 모두 행복한데 나만 불행하면 얼마나 우울할까? 아직도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그녀를 떠난사람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는걸 직접 듣는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주인공인 ˝뜨레쁠례프˝의 감정에 이입되어 책을 읽다보면 그의 슬픔이 그대로 느껴진다.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공감이 되고. 등장인물이 많고 분량도 적지 않지만 완전히 몰입하여 읽었다.



<바냐 아저씨>

이 단편 제목의 바냐는 본명이 ˝보이니쯔끼 이반 빼뜨로비치˝로, 예칭이 ˝바냐˝이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참 복잡하다. 퇴직한 교수인 ˝세례브랴꼬프˝는 첫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딸인 ˝소피아˝를 낳았다. 하지만 그녀는 죽고, 두번째 부인인 젊고 아름다운 ˝옐례나˝와 재혼한다.

제목인 ˝바냐 아저씨˝의 ˝바냐는˝ 첫번째 부인의 동생이다. 그런데 ˝바냐˝는 ˝옐례나˝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 그리고 ˝바냐˝는 ˝세례브랴꼬프˝ 가 한동안 없었던 그의 집에 살면서 그의 딸인 ˝소피아˝와 함께 그의 집안 업무를 한다. 이후 ˝옐레나˝ 부부가 돌아와서 이들은 함께 지내게 되는데 꼬이고 꼬인 관계, 사랑에 대한 감정도 꼬일대로 꼬여 있었기 때문에 점점 복잡한 상황이 연출된다.

게다가 ˝옐레나˝는 아름다운 외모로 모두 그녀에 대해 연정을 품지만, 딸인 ˝소냐˝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한다.

모두에게 사랑받은 여인이지만 이미 늙고 병에 걸린 남편 대한 사랑은 많이 식어버린  ˝옐레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그에 따른 질투, 자신의 업적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바냐˝, 친모를 잃고 아버지는 관심도 없고 단지 집안을 위해 일해왔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절 당하는 ˝소피아˝ 등 어딘지 모르게 하나씩 결핍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벚꽃 동산>

이 책의 표제작인 ˝벚꽃 동산˝은 세상이 변해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재산을 소비하면서 살아가는 세 모녀가 결국은 자신의 고향이자 어린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는 ˝벚꽃 동산˝을 상실하게 되는 이야기 이다.

그렇게 소중했던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곳은 과연 소중했던 것이었을까? 그들 가족에게 벚꽃 동산은 어떤 의미였을까? 벚꽃동산을 잃어버리게 된 원인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그들은 사랑하는 벚꽃동산을 과거로만 남겨두게 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없다면 소중한 것은 결국 사라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벚꽃동산을 읽으면서 주인이었던 ˝라네프스까야˝에게 비난의 감정 보다는 오히려 많은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소중한 것이 사라져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감정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아닌 걸 알면서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그 안쓰러움이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 해결책을 알고 있지만 그저 바라만 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도 분명히 있다.



여섯편의 단편 줄거리를 모두 쓰려고 하다보니 글이 길어져서 가장 좋았던 벚꽃동산의 이야기를 많이 쓰지 못했다. 결론은 여섯 작품 모두 좋다. <벚꽃 동산>은 특히 좋았고, <갈매기>는 처음 읽었을 때는 이해가 잘 안됐지만 한번 더 읽고 감탄했다. (벚꽃 동산과 갈매기는 두번씩 읽었다.)



길게 쓰이고 자세히 설명되어야 하며 오래 생각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 있다. 반면 길이는 짧더라도 단어의 배치와 조합 만으로도 공감할 수 있는 문장도 있다.  체호프의 문장이 바로 그런 문장이라 생각한다.

체호프의 문장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다 읽고나면 다양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아련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이래서 고전을 읽는 것이고, 이런 작품을 명작이라고 하나 보다. 역시 러시아는 정말 좋은 나라다. 스탈린만 빼고.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7-17 09:1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등 댓글 찜! !

새파랑 2021-07-17 09:43   좋아요 4 | URL
1등 🎁을 드리고 싶어요 ^^

반유행열반인 2021-07-17 09:5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물한살에 아는 언니 따라 가서 벚꽃 동산 연극을 봤었는데 놀랍게도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ㅋㅋㅋ언니가 아는 분이 배우셔서 커튼콜 끝나고 뵈러 갔는데 와 연극 분장은 진짜 진하다 하고 놀란 기억이랑 극장 앞 포차에서 어묵 사 먹은 거만 기억남 ㅋㅋㅋ

새파랑 2021-07-17 09:57   좋아요 5 | URL
벚꽃동산이 우리나라에서도 연극으로도 했었군요. 정말 보고 싶네요. 완전 부럽습니다~!! 전 도대체 전 스물한살에 뭘 한건지 😞

페넬로페 2021-07-17 15: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정말 러시아인의 이름은 참 그렇죠~~
분량이 최소한 두 권정도 되어야 글이 끝나갈 무렵 겨우 이름을 분간할 수 있는데 이 책엔 6편이 들어있어 엄청 헷갈리겠어요. 체홉의 벚꽃동산과 갈매기가 유명한데 아직 못읽었어요.
올해 한 작품이라도 입문하고 싶어요~~

새파랑 2021-07-17 10:48   좋아요 5 | URL
벚꽃동산하고 갈매기가 유명한 작품이었군요~!! 저도 이 두 작품이 가장 좋더라구요 👍👍
이 작품에 등장인물들도 그런데다가 작품도 여섯편이어서 그런지 리뷰를 쓰면서 내용이 머리속에서 막섞이는 기분이 들었어요 😐

scott 2021-07-17 12: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체호프의 희곡 작품은 매년 가을 마다 국립극장에 연극을 올리는데
코로나로 언제 가능 할지 모르겠네요
몇년에 한번씩 현대카드와 엘지 아트 센터에서 러시아 거장 연출가들이 내한 공연 하는 작품들은
새로운 해석과 연출 무대 예술로 체호프의 극을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유툽에 가면 다양한 체호프의 작품을 볼수 있어요

새파랑 2021-07-17 12:15   좋아요 5 | URL
스콧님은 연극까지 AI ~!! 정말 가서 보고 싶네요~!! 스콧님 덕분에 읽게 된 이책 완전 좋음 😊

붕붕툐툐 2021-07-17 12: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ㅎㅎ스탈린 의문의 1패.(물론 당해도 쌈..ㅋㅋㅋ) 저도 너무나 좋아하는 체홉의 희곡집 읽으셨군용~
이거 무대 올라가서 다같이 보러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새파랑님 이번 주도 희곡읽기 미션 클리어!!^^

새파랑 2021-07-17 13:05   좋아요 5 | URL
역시 희곡 천재 툐툐님은 읽으신 작품이군요~!! 저 이번주 희곡책 두권 읽었어요 😎

mini74 2021-07-17 22: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주요등장인물들을 저는 색칠하면서 읽어요. 근데 이게 또 문제더라고요. 다음에 읽을 때 아무 생각없이 칠한 빨간 색이 뭔가 등장인물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느낌 ㅎㅎ발음도 어렵네요 꼰수딴찐 ~~ 재미있겠어요. *^^*

그레이스 2021-07-17 18:53   좋아요 5 | URL
ㅎㅎ

새파랑 2021-07-17 21:52   좋아요 3 | URL
색칠까지 하시면서 읽는군요. 역시 다 나름의 방법이 있나보네요. 러시아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언제나 어려운거 같아요 ㅠㅠ

희선 2021-07-18 00: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사람은 이름 외우기 힘들겠습니다 성은 여성과 남성이 다르기도 하더군요 그런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지... 여러 권 읽다보면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도 할까요 새파랑 님은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보셨으니 체호프 소설과 희곡 그렇게 힘들지 않게 만났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1-07-18 09:54   좋아요 2 | URL
많이 읽어봐도 여전히 어려운 부분은 있는거 같아요 ㅎㅎ 그래서 책 읽는 속도는 좀 느려지지만 왠지 더 흥미로운거 같아요. 해석하며 읽는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