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을 움직인 역관 홍순언 푸른숲 역사 인물 이야기 4
정명림 지음, 이우창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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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홍순언이 임진외란 때의 명나라 군과의 손을 잡은것 외에 역관은 무슨일을 하는 것인지를 적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간략히 정리하였습니다.             
  역관은 말 그대로 통역을 하는 관리를 뜻한다. 주로 사행에 나선 사신단을 대표해서이고, 또한 외국에서 사신들이 왔을 때 나라를 대표해 통역을 하였다. 이들은 외국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었다.이들은 시장 같은 곳에서 보통 사람들이 쓰는 말은 물론, 외교 관계에서 쓰는 말, 횡실에서 쓰는 말까지 장소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었다. 한 번 가면 몇달씩이나 걸리는 사행길에는 온갖 일이 다 벌어지고, 이럴 때마다 의사소통을 위해서 역관들이 나서야 했었다.  
  이 내용을 보면서 지금 현대시대에도 외국어를 배웠는데 예전에서의 조선시대 같은 곳에서도 외국어를 배우는 것을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다. 현제와 과거 때 에서의 외국어를 배우는 목적이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한글의 수는 어마어마 한데 그 한자와 함께 중국, 일본등의 말이나 어투, 글같은 것을 능숙하게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였다고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역관은 사행길에서 실질적인 책임자이기도 했다. 역관만큼 그 나라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에야 맘만 먹으면 다른 나라에 얼마든지 갈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럴 기회가 거의 없었다. 사행길에 따라 나서는 경우가 아니라면 나른 나라에 가 보기가 어려웠다. 사신으로 갈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았다. 사신의 대푶라 할 수 있는 정사, 부사, 서장관의 직책을 얻어 위국에 나갈 수 있는 기회도 일생 동안 한두 번 정도 있을 뿐이였다. 사신으로 선발되려면 관직을 유지해야 했고,사행은 오핸 시간이 걸리고 힘든 일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관은 통역을 하는 전문직이었기 때문에 사행길에 자주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 내용을 보면서 사신과 역관의 신분이 달랐고, 또한 사신보다 역관이 더 다국어를 잘한다는 것을 처음알았다. 비록 나는 오늘 처음으로 역관이 존재하고 역관이 하는 일을 알았지만 그 역관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또한 얼마만큼이나 나라에 필요한 중요핵심인지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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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6 - 이탈리아 먼나라 이웃나라 6
이원복 지음 / 김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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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이탈리아의 역사를 적은 책 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간략하게 정리하였습니다. 

 이집트나 페르시아 같은 동방에는 문화가 많이 있었다. 그라나 이런 고대 동방의 나라들은 모든 것이 왕의 말 한마디면 끝나는 절대 군주 제도였으며, 왕과 귀족 몇몇만을 위해 모든 사람이 봉사해야 하는 계급 사회였고,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다음의 세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집트를 예로 보자면 이집트 사람들은 그들의 왕을 '파라오'라 하여 태양의 아들로 섬기며 하늘처럼 떠받들었고, '파라오'의 말은 하늘의 말이나 다름없는 절대 명령이었다. 따라서 모든 것이 '파라오'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백성들은 '파라오'를 섬기기 위해 태어난 것으로 믿었다. 또한 이집트 왕들에세 평생 가장 중요한 사업이 자기가 죽은 뒤에 영원히 머무를 궁전 즉 며지를 만드는 것이었으며 그런 이집트 왕들의 묘지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피라미드 인 것이다. 피라미드는 모두 나일강 서쪽에 세워졌는데 영원한 태양이 지는 곳이 바로 서쪽 그 서쪽에 영원한 세계가 있다고 믿었던 까닭이다.  

 이러한 내용을 보며 비록 왕이 얼마나 위대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기 위해 남을 평생 부려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이 되고, 또한 그때 당시의 이집트 사람들의 상상력이 얼마나 풍부한지는 피라미드를 만들 장소에 대한 곳에서 알 수 있었다. 

 한편 그리스 문명은 이집트나 페르시아 같은 동방보다 훨씬 늦게 시작되었다. 그리스 땅의 문명도 바로 이집트와 페르시아 등 동방에서 건너온 문화이다. 그리스와 입트, 페르시아의 중간에 크레타란 섬이 있는데, 이 섬 사람들은 배를 이용하는 상인들로 이집트나 동방의 물건을 사다가 미개한 지역에 팔아 크게 돈을 벌었다. 이 섬의 지배자가 살던 크노소스 궁전은 호화롭기가 이를 데 없었다. 여기서 문화는 두말할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 이집트와 동방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한가지 큰 차이하면 이집트 동방나라들은 농업, 유목 국가였던 것에 비햐 이 섬 사람들은 무역으로 먹고 살던 상인들이라 계산이 빠르고 훨씬 현실적이였다. 

 이 내용을 보면서 비록 그리스 문명은 동방 문명보다는 늦게 시작하였지만 그 동방 문명과의 차이가 거의 없고, 또한 이 내용을 보면 그리스 문명의 내용이 이집트 등의 문명보다 더 아름답고 웅장하고, 또한 이집트처럼 두려먹는 일이 심하지 않아서 더 마음에 들었다. 또한 그리스 인들은 돈으로 인해 물건을 사고 팔면서 먹고살기 때문에 나중에 더 잘 발전할 수 있던것의 기초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이 된다. 이 책을 보면서 아무리 가까운 나라여도 문명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또한 가까운 나라의 제도나 문명을 약간 바꾸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 다는 것도 알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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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8 - 일본 2 : 역사 편 먼나라 이웃나라 8
이원복 지음 / 김영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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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일본에 대한 역사를 적은 책 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일본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하여 썼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섬나라 일본에서 우리나라나 중국대륙으로 건너갔다고 볼 수 없다. 그러면 우리나라나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일본을 만든 거였고, 고기에 원주민인 아이누족과 동남아시아 등에서 온 남방민족이 섞여 오늘의 일본민족을 이룬 것이다. 인류가 지상에 나타난 것은 약 4백만 년 전이긴 하지만 원숭이 같은 모습의 원인이었고, 진화를 거듭하여 오늘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한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약70만 년 전에야 나타난다. 지구 기후가 변화함에 따라 급격히 추워져 세상의 모든 것이 얼어붙은 빙하기와 다시 따뜻해지는 해빙기가 반복됨에 따라 바닷물의 높이가 낮아지고 높아지기를 반복하였다.  

 약 1만 년 전 지구엔 또다시 빙하기가 찾아와 바다의 수면이 크게 낮아졌다. 그로 인해 물에 잠겨 있던 부분이 뭍으로 변해 중국, 한반도, 일본은 육지로 연결되어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일본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이때 몽고계 아시아인들이 대거 일본으로 이주하였는데 이들을 구몽고계하고 하고, 그 뒤에도 시베리아, 만주 등 추운 지역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한 신몽고계가 건너가 구몽고계, 신몽고계가 서로 섞여 혼혈을 거듭아여 오늘날 인본민족의 부리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수십만 년 전에도 일본이 대륙과 연결된 적이 있었으므로 매며드 가 발견되고 효고현 아카시란 곳에서 구석기시대 인간의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일본에는 이미 구석기시대에 인류가 갈았다고 일본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독자적인 역사는 빙하기가 끝나 얼음이 녹은 불로 해수면이 높아져 오들날처럼 대륙과 떨어진 섬나라가 되는 1만 년 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때는 아직 농사가 시작되기 전인 신석기시대여서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시대였다. 당시에 만든 새끼줄 모양의 무늬가 새겨진 질그릇이 발견되어 일본의 신석기시대, 본격적인 역사가 열리기 직전의 시대를 '조몬시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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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7 - 일본 1 : 일본인 편 먼나라 이웃나라 7
이원복 지음 / 김영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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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당시 일본 사람들의 사는 생활과 제도 등을 정리하여 쓴 책 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일본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하여 썼습니다. 

 일본이과 우리나라는 단른점이 있다. 한국사람들은 불을 때서 방바닥을 따끈따끈 데우는 온돌방 생활을 했는데, 일본사람들은 짚으로 만든 다다미란 것을 바닥에 깔고 살았다. 음식으로 가면 두 나라의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사람이 맵고 짜게 먹는 데 비해 일번사람은 싱겁고 달착지근하게 먹는다. 또 한국사람은 뜨거운 음식을 먹어야 '제대로 먹었다'고 하는데, 일본사람은 미지근하게 먹지 펄펄 끓는 음식은 못 먹는다. 식탁 위에서 끓여 먹는 일본음식은 샤브샤브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자극적인 한국음식이 일본에서는 인기이다.  

 음식 먹는 방식도 서로 달르다. 한국인은 찌개 등을 가운데 놓고 여럿이 같이 먹지만, 일본사람은 한 음식을 여럿이 함께 먹는다는 건 상상도 못하고 반드시 한 사람앞에서 자기것만 먹는다. 이예 한 사람 앞에 하나씩 음식상을 따로 차려놓고 먹는다. 

 술 마실 때의 예절, 즉 주도도 달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대방의 술잔이 비어야만 다시 따라준다. 즉 술잔이 남아있는데 채우는 것은 '첨잔실례'라 하여 예절에 어긋나는 데 비해 일본에서는 술을 한 모금만 마셔도 다시 따라 가득 채워 주는 게 예이로 상댜방 술잔이 비면 큰 실례를 저지른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사람들의 성격은 대개 솔직하고 직선적이어서 술만 한자 걸치면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는 편이고,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솔직하게 본심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친한 친구가 아닌 사람에게도 말이다. 그러난 일본인들은 속에 있는 생각과 말하는 게 전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술에 취했건 안 취했건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길 극히 꺼려하고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깍듯이 예의를 지키며 본심을 말하더라도 빙빙 돌려 말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상대의 본심을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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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당 7 - 조선시대 정조편 맹꽁이 서당 7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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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조선 시대 때의 왕인 정조가 있었던 일을 정리하여 쓴 책 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정조때 있던 이야기를 정리하여 썼습니다. 

 수원 화성은 사젹 제3호로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조선 후기에 돌로 쌓은 성이다. 성의 전체 둘레는 5520m이다. 1794년 정조가 명을 내려 채제공의 책임 하에 공사에 착수하여 1796년 9월 완공하였다. 우형원과 정약용 등의 과학적 지식과 전통 성의선축법 및 중국 성의 장점을 고루 활용하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등록되었다. 

 삼정승은 조선 시대 국정을 통괄하던 의정부의 최고 대신을 말한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세 대신으로 영의정은 대부분의 경우 좌의정을 지낸 원로 대신이 임명되었다. 혹은 삼의정이라고도 부른다. 육판서는 고려, 조선 시대 국가의 정무를 맡아보던 대표적인 관청인 이조, 호조, 예조, 병조, 공조의 6개 관청의 수장을 일컫는 말이다. 이 여섯 새 기관은 육부 또는 육관이라고도 부른다. 

 규장각은 정조가 1776년 궁궐 안에 설치하여 역대 왕들이 친필, 서롸, 서책 등을 관리하던 조선 시대의 왕실 도서관이다. 세조 때 일시적으로 설치되었지만 폐지되었고 정조가 즉위하면서 정치 혁신의 중심부로 삼고자 설립하였다. 규각장은 1894년 갑오개혁 때 궁내부에 두었다가 1895년 규장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조선, 중국의 각종 책들과 왕가의 문서들을 보관하였다. 1897년. 고종 즉위 34년에 다시 규장각으로 이름을 되돌렸다. 1911년 조선총독부 취조국과 참사관실이 설치되어 규장각 도서들을 소장했으며 나중에는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하게 된다. 광복 뒤에는 서울 대학교에서 인수하여 관리했다. 현재는 규장각 도서 13만권, 고 도서 2만 5000여권, 고문서 5만여 점 등 총 22만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 

 홍봉한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사도 세자의 장인이다. 사위인 사도 세자가 영조의 미움을 사서 죽자 여전히 정권의 자리를 지켰다. 사심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당쟁을 막고 당파에 관계없이 인재를 뽑아 썼다. 나라의 재정을 충실하게 하고 백성의 부담을 덜어 주는 등 영조의 정책을 도와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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