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 서당 6 - 조선시대 영조편 맹꽁이 서당 6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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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조선시에서 영조때의 사건을 만하로 하여 쓴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일고 조선시대때 영조이야기를 정리하여 썼습니다. 

 노론의 주장으로 왕세자로 책봉될 수 있었던 영잉군은 이후에도 노론과 소론의 대립으로 몇 번씩 위혐한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임인옥사 이다. 당시 소론의 대표 인물이었던 김일경은 목호룡이라는 인물을 앞세워 노론과 왕세자가 서로 힘을 모아 경종을 죽이려 한다고 모함하게 된다. 이로 인해 당시 노론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노론 사대신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분들께서 참형을 당하고, 이와 관련 있는 170여 명이 귀양을 가거나 옥살이를 하였다. 이에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노론이 소론에 의해 쫓겨나자 목숨의 위협을 느낀 영잉군은 인원왕후에게 호소하여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수렴청전은 왕이 어린나이로 즉위했을 때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어린 왕 대신 정사를 돌보는 일을 말한다. 남녀의 구별이 엄격하여 군신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청에 발을 치고 그 뒤에서 접견하였으므로 수령청정이라고 불렸다. 수렴청정을 하게 되면 외척이 등용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왕권이 약화되기도 했다. 세자나 세손이 왕 대신 정사를 보는 경우에는 대리청정이라고 부른다. 

 정순왕후는 영조의 첫 번째 부인이엇던 정성왕후 서씨가 죽자, 1795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정순왕후의 친정은 노론 쪽이었으나, 사도 세자가 소론 쪽에 가까웠기에, 그와 사이가 쫗지 않았다. 때문에 훗날 사도 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데 정순왕후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훗날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마저 승하하고, 11세의 나이로 순조가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스스로 '여자국왕' 이라 칭했을 정도로 임금의 모든 권한과 권리를 대신 행사했으며, 대대적으로 천주교를 탄압하여 정약용 등을 축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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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원정대 - 유네스코가 선정한 자랑스런 우리 문화유산
이룸 글, 류수형 그림 / 재미북스(과학어린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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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우리나라의 문화유산들을 적어놓은 책 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의 문화유산 중 세가지를 정리하여 썼습니다. 

 팔만대장경판의 본 이름은 고려대장경이다. 국보 제32호이  고려대장경은 몽공이 우리나라에 처들어 왔을때 13명의 스님들이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들을 몰아내기 위해 만든 것이다. 고려대장경은 부처의 말을 목판에 새긴 것이다. 목판의 개수는81,258장이나 되서 팔만대장경판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파만대장경은 목판 인쇄로 만들어졌다. 목판 인쇄란 책의 내용을 목판에 한 자, 한 자 세겨 왼쇄하는 것이다. 팔만대장경판이 다 만들어지기까지는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때는 고종 38년인 1251년 이였다. 즉 700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은 장경판전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창덕궁은 조선 시대 때 지어진 궁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양의 중심 궁궐은 경복궁이었고 창덕궁은 임금이 가끔 찾아와 머무는 궁궐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끝나고 불터 버린 창벅궁을 경복궁보다 먼저 복구하여 중심 궁궐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창덕궁은 현재 남아 있는 조선의 궁궐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자연 환경과 아름다게 조화를 이뤄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성의 첫 번째 왕인 태조에서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각 왕별로 기록한 책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오핸 시간 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실록이다. 총 1,893권 888책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으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선의 정치와 사회, 일반 백성들의 생활뿐만 아니라 당시 주변 국가와의 관계까지도 자세히 기록되어서 동양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귀중한 자료로 이용된다. 선조들의 훌륭한 자료로 보여주는 조선왕조실록은 1973년에 국보 제 151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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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바다 [구판] 초등과학학습만화 Why? 3
이광웅 지음 / 예림당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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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바다에 대한 자료나 바다에 있는 지역의 특징 외의 동식물 등을 적은 책 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바다에 대한 자료를 간략하게 정리하여 썼습니다. 

 넓고 푸른 바다는 사람들에게 어떤 희망을 주거나, 수평선 너머 미지의 세계로 여행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슴 설레게 만든다. 바다는 수억 년에 걸쳐 여러 생물들을 길러왔다. 모든 생물의 시초는 바다이기 때문이다. 바다는 세계를 있는데 이는 지구의 71퍼센트가 바다로 덮여있기 때문이다.  

 원시 때의바다생물로는 해파리, 암모나이트, 삼엽충, 바다나리, 바다전갈, 원생동물 등이 있다. 또한 바다는 육지보다 넓다. 바다의 넓이는 약 3억 6천 1백만 제곱 키로미터이다. 바다의 밑의 지형으로는 대륙붕, 대륙사면, 해저 선상지, 해산, 해구, 환초, 해령, 평정해산, 화산섬, 해분이 있다. 바다의 해저 지형은 육지 못지않게 복잡한 해저 지형은 대륙 주변부, 해저 분지, 중앙 해령으로 나눌 수 있다. 대륙 주변부에는 대륙붕, 대륙사면, 해구가 포함되며, 해저 분지에는 심해저, 해산 등이 포함된다. 중앙 해형의 길이는 6만 5천 키로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하와이 제도는 섬들이 여럿 모여있는 곳이다. 하와이 제도는 130개 이상의 화산섬으로 되어 있는데 ,사슬처럼 엮어진 섬들이 2,400 키로미터나 늘어져 있다. 또한 해중산은 대부분 원뿔이며, 옆면은 급경사를 이룬다. 해중산의 봉우리가 책상처럼 평평한 것을 '평정해산'이라고 하는데, 이 평평한 ㅜ분은 옛날에 해면 위에 있다가 침식된 후 가라않은 것이다. 육지가 가라앉으면서 생긴 뉴질랜드의 마우드 섬은 다른 섬들과는 달리 해안이 매우 가파르다.  

 바다에서는 판의 소멸이라는 것이 생겨나는데 판들이 멀어지는 확장 경계에서 두 판이 서로 멀어지게 되면 상대적으로 다른 쪽에서는 서로 가까워지게 되어 충돌하게 된다. 이 때 무거운 해양판이 가벼운 해양판에 부딪치면서 그 밑으로 밀려 들어간다. 이 때 판은 맨틀로 만나 녹아 없어진다. 이러한 과정으로 생긴 해저지형이 바로 해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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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논술로 되새기는 한국의 인물 6
민병덕 지음, 원유일 그림, 손민정 / 혜원출판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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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졍약용의 살면서 세상에 남긴 업적과, 그 시대때의 정약용이 하였던 일을 적은 책 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중요한 부분만 간략하게 정리하여 썼습니다. 

 정약용은 1762년 때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정약용이 9세가 될때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1783년 정약용의 나이 22세 때 소과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섰다. 28세 때에는 대과에 합격하여 규장각 초계문신이 되었고, 한강에 놓을 배다리를 설계하여 정조의 신임을 받았다. 그자가 31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정약용은 화성과 거중기를 설계하였다. 또한 암행어사로도 활약을 하였었다. 그가 39세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다 정조가 세상을 떠났다. 1801년 천주교를 탄압한 신유사옥에 관련되어 경상도 장기로 귀향을 갔다. 하지만 천주교도 황사영이 비밀 편지를 보내려다 발각된 사건으로 다시 전라도 강진으로 귀양가게 되었다. 그가 1808년 때 다산으로 거처를 옴겨 많은 책들을 제자와 함께 기르면서 써나갔다. 그가 55세가 될 때에 둘째 형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숨을 거두었고, 56,57세 때에는 책 경세유표와 목민심서를 완성하였다. 그후 1년 뒤 흠흠신선을 완성하고 17년 뒤 세상을 떠났다. 

 정약용에서는 실학이 많이 나왔는데 실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난 까닭은 조선 후기에는 정치를 맡는 관리들이 서고 권력을 잡으려고 다투기만 하는 통에 백성들의 삶이 날로 힘들어졌다.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어야 비로소 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때 실학자들은 백성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실용적인 학문을 연구하기 시낙하였다. 잘못된 제도를 바꾸고 백성들이 잘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17, 18세기 실학자들은 먼저 백성들이 가난한 이유를 따져보았다. 그 뒤 각자 자기들이 생각하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내놓았다. 정약용은 19세기가 되어도 실학자들이 생각이 실제 정치에 반영되지 못했다. 오히려 사회는 더욱 혼란해지고 실학자들은 권세가들에게 탄압을 받기도 하였다. 정약용은 권세가들이 모함으로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실학을 도욱 깊이 있게 발전시켰다. 정약용은 그동안 여러 실학자들이 내놓은 생각들을 모두 모아 백성이 잘살고 나라가 안정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정약용은 평생 동안의 연구 결과를 500여 권의 책으로 정리하여 실학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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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8 2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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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5 - 독립 운동부터 21세기 한반도까지
전국역사교사모임 원작, 이성호 글, 이은홍 그림 / 휴머니스트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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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독립 운동부터 21세기 한반도까지의 이야기를 적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세편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썼습니다. 

 3.1운동이 시작된 후, 많은 학생들이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나이 어린 보통 학교학생들의 참여도 대단했다. 전국의 수많은 학교에서 동맹 휴학과 시위가 일어났다. 3월 23일 서울의 정동 보통 학교와 의동 보통 학교에서는 졸업식이 열렸다. 학생 대표는 단상에 올라 인사를 하다가 품 속에서 태극기를 꺼내어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모든 학생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졸업식장은 삽시간에 만세 시위장으로 변했다. 학생들은 졸업 증서를 찢어 바닥에 던져 버리고 밖으로 나와 만세 시위를 계속하였다.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에는 '나눔의 집'이 있다. 일제에 끌려가 성적 희생을 강요당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현재 전국적으로는 100여 명의 피해자 할머니들이 생존해 계시고, 나눔의 집에는 열 명 남짓한 할머니들이 함께 생활라고 계시지만, 모두 연세가 많으셔서 생존자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할머니들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림을 배워 자신들의 과거를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마다 수요 집회에 참가해 일본 정부의 진실 인정과 사과,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1935년 사회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의 단결을 내세우며 중국 난징에서 '민족 혁명당'이 탄 생하였다.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을 중심으로, 만주와 중국에서 활동하던 여러 독립 운동 단체들이 통합하여 당을 만든 것이다. 민족 혁명당은 1938년 자체 군사 조직으로 '조선 의용대'를 창설하였다. 200영 명의 조선 의용대는 일본에 밀리고 있던 중국군을 도와 함께 싸울 것을 요청에 따라 후방으로 내려가 군사 훈련만 받게 되자, 즉각 항일전에 나설 것을 주장하는 대원들은 이에 반발해 화북으로 갔다. 한편 이렇게 대원 가운데 상당수가 화북으로 가 버리자 김원봉은 1942년 임시 정부에 합류하였고, 남은 조선 의용대는 광복군에 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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