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소실점을 향해 민음의 시 271
양안다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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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소실점을 향해>는 내가 원래 시를 읽지 않으려 했던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던 시집이었다. 지금까지 시집을 몇 권 읽어본 결과로써 느낀 나의 취향은 장시보다는 단시, 간결하고 함축적인 시들을 조금 더 선호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시집은 그와는 정반대의, 한 시에 열 페이지도 넘어갈 정도의 초장편시(?)들이 이곳에서 범람하고 있다. 아… 읽는 게 많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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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가 그랬던 건 아니지만 당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와닿지 않는 시들이 꽤 있었는데, 그 시들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느껴졌다. 그 세계관이 어떤 건지를 작품해설을 통해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 이 시집에는 그리운 추억들이 반복된다. 가족들로부터 달아나 네 평 남짓한 방 ‘방공호’에 모여 살던 아이들의 모습이 시집 대부분을 이룬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골목에서 악취를 견디며 할머니와 살던 유년의 풍경이 가끔 나타난다. (232p)

이 시집 속 여러 시들에서 ‘엘리’, ‘윤’, ‘단’ 등의 인물들이 나오고 이들은 서로를 비난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는 모습들을 보이는데, 시집을 읽을 땐 이해할 수 없던 이들의 행동이 해설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바로 이들은 가출 소년들이었던 것. 그제서야 이 시집을 감싸고 있던 차갑고 우울한 분위기가 이해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때에는 지금보다 이 시집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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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창비시선 469
최백규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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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시집을 꾸준히 찾아서 읽는다고는 하지만, 젊은 시인들의 시집은 어째서인지 나와 감성이 그다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예전의 유수한 시인분들께서 쓰신 시적 표현들을 반복하여 쓸 수는 없기에 새로운 표현들을 찾아 시를 적다보니, 그 표현들이 나날이 함축적이고 어려워져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같은, 너무도 좋았던 시집 한 권을 만났다. 단독 저서(?)로는 이 시집이 유일한, 최백규 시인님의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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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음송곳이 내 안으로 악착같이 자라서

숨을 뱉으면 전부 깨져버릴 것 같았고


 - <천국 흐리고 곳곳에 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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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가슴을 열지 않으면 암세포가 파고든다는데 수술비는 삼촌이 도박으로 탕진한 지 오래였다


사채업자들이 드나들기 시작하자 그는 자루 안에서 질질 끌려가는 것처럼 웅크렸다 여생 동안 돈에 묶여 물속으로 유기된 셈이다


 - <돌의 흉곽>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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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가 좋았던 시들도 물론 있었지만 이번에 읽은 시집에는 일부 구절들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던 경우가 많았다. ‘얼음송곳이 내 안으로 악착같이 자’란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우울하고 예민한 기질을 ‘얼음송곳’에 빗대어 표현한 걸까. 툭 건들기만 해도 와락(?) 쏟아지는 감정적인 반응을, 얼음송곳으로 인해 ‘숨을 뱉으면 전부 깨져버릴 것 같’다고 표현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그런 예민함을 겪은 적 있기에, 막연하게만 느꼈던 예민했던 그 마음이 ‘얼음송곳’으로 구체화되어 내게 다가와서 마음이 크게 동했던 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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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흉곽>이라는 시에 쓰인 구절은 또다른 느낌으로 좋았다. <천국 흐리고 곳곳에 > 구절이 개인적인 공감으로 좋았던 거라면, <돌의 흉곽> 클리셰적인 상황의 색다른 표현이 느껴져서 좋았달까…? 수술비를 내야하는 상황에서 도박으로 돈을 몽땅 탕진한 상황, 그래서 사채업자들의 협박을 받게 상황은 내가 직접 겪어보진 않았어도 아주 많은 영화, 드라마, 소설 속에서 흔히 마주한 적이 있다. 그런 사채업자들에게 빌빌거리게 되는 심정을자루 안에서 질질 끌려가는 으로, 돈에 묶여 물속으로 유기된것으로 표현한 것이 내게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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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창비시선 279
정호승 지음 / 창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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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서울대의 슬로건에 빗대어 위와 같이 쓴 이유는, 정호승 시인님의 시는 언제나 직관적이고 쉬운 표현들로 독자들에게 거대한 감동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동은 영화나 드라마 혹은 소설의 감동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함축적인 언어가 내밀한 속마음으로 와닿는 감각에서 비롯하는 묵직한 여운이다. 시집을 읽어보고는 싶은데 어렵게만 느껴져서 어떤 시집으로 입문해야할지 모르겠다 하는 분들에게는, 꼭 이 시집이 아니더라도 정호승 시인님의 시집 아무거나 집어들어 읽어보기를 꼭 권한다. 전에 읽었던 <슬픔이 택배로 왔다>에 이어 이번 <포옹>이라는 시집까지, 읽는 동안 적잖은 감동과 여운에 흠뻑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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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둥치에 매미 허물이 붙어 있다

바람이 불어도 꼼짝도 하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다

나는 허물을 떼려고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죽어 있는 줄 알았던 허물이 갑자기 몸에 힘을 주었다

내가 힘을 주면 줄수록 허물의 발이 느티나무에 더 착 달라붙었다

허물은 허물을 벗고 날아간 어린 매미를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허물이 없으면 매미의 노래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허물의 힘에 놀라

슬며시 손을 떼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보았다

팔순의 어머니가 무릎을 곧추세우고 걸레가 되어 마루를 닦는다

어머니는 나의 허물이다

어머니가 안간힘을 쓰며 아직 느티나무 둥치에 붙어 있는 까닭은

아들이라는 매미 때문이다


 - <허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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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슬픔이 택배로 왔다>에서도 그렇고, 이번 <포옹>이라는 시집에도 부모님을 소재로 한 시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부모님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만날 때면 언제나 마음이 크게 동하는 편이다. 때문에 소설 뿐만 아니라 대중매체 등에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다루는 작품을 의도적으로 피할 때가 종종 있는데, 정호승 시인님의 시 같은 경우에는 읽을 때 마음이 무거워지기 보다는 따뜻해지므로 오히려 더 찾아 읽게 되는 듯하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자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어머니의 마음을 매미 허물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 상당히 신선하면서도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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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핀 국도에 차들이 달린다

할머니 한 분이 아까부터 허리를 구부리고

길을 건너지 못하고 서 있다

그때

할머니 뒤에 서서 개나리를 쳐다보고 있던 흰 거위떼들이

뒤뚱뒤뚱 떼지어 길을 건넌다

순간

있는 힘을 다해 달려오던 차들이 놀라 멈춰선다

버스가 멈춰서고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이 멈춰선다

거위들은 경적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거위 뒤를 따라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길을 건넌다


 - <거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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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는 할머니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을 도와주려는 듯이 보이는 거위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시의 도입부에는 그저 개나리를 구경할 뿐이었으나, 할머니가 길을 건너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자 그제서야 ‘뒤뚱뒤뚱 떼지어 길을 건넌’ 것이다. 한낱 거위들에게 적잖은 감동을 받을 줄이야… 그리고 예상 외로 감동을 받은 측면이 또 하나 있다. 거위들이 길을 건너려고 하자 그를 로드킬(?)하지 않고 운전을 멈춰서 거위들을 기다려준 버스와 트럭들이다. 우람한 크기의 버스와 트럭이 작디 작은 거위들을 위해 멈춰 선 모습을 상상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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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교육 민음의 시 260
송승언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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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대체적으로 ‘데모’와 관련한 시들이 많은 것 같다. 직접적으로 ‘데모’를 언급하는 시들도 있었고, 간접적으로 그 상황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시들도 있었다. 물론 전혀 관련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시들 또한 데모와 관련지어 생각하면 또 색다르게 해석되기도 하였다. 아무튼 ‘데모’라는 주제는 뭐랄까… 사람 마음을 참 무겁게 만든다. 데모에 직접 뛰어든 당사자의 처절한 마음도, 그런 당사자들을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착잡한 마음도, 모두 다 이해되고 공감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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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하러 가는 길은 멀었다. 버스에서는 잠깐 졸았다. 덜 깬 채 버스 밖으로 쏟아지듯이 나와 사람들을 따라다녔다. 너무 앞으로 가면 뒤로 가고 너무 뒤로 가면 앞으로 갔다. 사람들이 뭐라고 소리치면 나도 뭐라고 중얼거렸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듯이 죽어도 죽은 것 같지가 않다. 그건 아직 살아있을 때 느꼈던 감각. 누군가 내 손에 뭔가를 쥐여주었고 나는 그것을 흔들고 다녔다. 나는 광장 너머 언덕 너머 교회 첨탑들을 보며 묘지같이 다정하다고 말했던 사람을 생각한다. 10년 전 데모하려 모인 자리에서 처음 본 사람. 다시는 못 본 사람. 이제 나는 공원으로 가거나 공장으로 가겠지. 그리고 가겠지. 화도 눈물도 안 나는 상황 속에서 하늘에 흩날리는 풍선들이나 보고 있겠지. 방독면 쓰겠지. 버스 타러 가겠지. 잠깐 졸겠지. 꿈도 꾸겠지. 돌아올 수 없는.


 - <커대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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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과 연의 구분이 일절 없는 ‘산문시’가 좋았던 적인 이 시가 처음인 듯하다. 산문시는 읽을 때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것 같은데, <커대버>라는 시는 그렇지 않았다. 이 시의 제목인 ‘커대버’는 ‘시체’를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커대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읽을 때에는 그저 데모하러 가는 사람의 흔들리면서도 결연한 다짐을 쓴 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커대버의 뜻을 찾고 난 뒤 다시 이 시를 읽으니, 마지막 구절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돌아올 수 없’다는 말이 죽었기 때문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일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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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파괴된 동상

모두 사랑했던 동상


사랑하던 사람들 다 가고 손가락질하던 사람들 다 가고 그 후손들 다 가는 이후에도


반쯤 파괴된 채 남은 동상

아주 파괴되지는 못한 동상

동상에게 동상의 외로움 있겠지

동상에게 동상의 슬픔 있겠지


그러나 피도 눈물도 없는 동상

그러나 핏자국 눈물 자국은 있는 동상


이전을 아는 사람들이 만든 이전은 모르는 동상

이후를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이전을 가르쳐주는 동상

이제 가르칠 사람이 없는 동상

친절한 동상 슬픈 동상


없는 시간을 사는 동상

아닌 시간을 사는 동상


있어 볼 만큼 있어 본 동상

슬슬 없어도 되겠지만 없어질 수 없는 동상


사라진 누군가를 모델로 한 누군가의 모델인 동상

누군가가 잊힌 뒤에도 잊힌 누군가의 모델인 동상


그런 동상이 나 본다

반쯤만 인간인


 - <반쯤 인간인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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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데모’의 상황을 대입하기 전과 후의 감상이 달랐던 바로 그 시다. 시 자체로만 보았을 때는 그저 동상에 대한 색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만 생각했다. ‘피도 눈물도 없’지만 ‘핏자국 눈물 자국은 있’다는 표현과, ‘이후를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이전을 가르쳐주는 동상’이란 표현에 놀랐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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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 연을 보는 순간 분위기는 반전된다. 시적 화자인 ‘나’도 실은 ‘반쯤만 인간’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제목까지 더하여 생각해보면 시적 화자도 ‘동상’이었던 것이다. 즉, 이 시는 한 동상이 다른 동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적은 듯한 시였고, 나는 그렇게 이 시를 다시 읽으면서 두 동상이 세워지게 된 계기가 어쩌면 ‘데모’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더더욱 무거워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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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창비시선 446
안희연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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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수천의 심장을 따로 모아 기도를 올린 적도 있지요

다음 생엔 부디 너 자신으로 태어나지 말아라

내가 주는 것이 안식이라는 믿음

시간은 무자비하게 나를 단련시켰고


어쩌면 자비였을 수도 있겠군요

적어도 영혼이라는 말은 믿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꿈속에선 심해를 헤엄치게 될까요

머리를 내려칠 때마다, 심박수가 파도를 만들어낸다는 목소리가

꼬리를 내려칠 때마다,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라는 목소리가

멈추질 않고


손에선 비린내가 가시지 않습니다

어떤 물을 마셔도 바닷물을 받아 마신 듯 입이 쓰고 갈증이 납니다


아침저녁으로 피를 씻어내는 일이 나의 묵상입니다

하지만 무엇으로도 씻기지 않는 것들이 끝내 나이겠지요


지금껏 나는 수없이 나를 죽이고

토막난 자신을 마주해왔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생선 장수의 노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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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과 회를 무지막지하게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시였다. 그리고 무수한 생선을 죽여야 하는 생선 장수의 죄책감과, 시간이 쌓이면서 그 마음이 옅어지는 데에 다시금 느껴지는 생선 장수의 죄책감이 너무도 슬펐던 시이기도 했다. 특히 ‘시간은 무자비하게 나를 단련시켰고’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생선을 죽이는 그 무거운 마음이 점차 옅어지는 과정을 ‘시간’이 ‘나를 단련시’킨다고 표현함과 동시에, 그 마음이 옅어질지언정 행위 자체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기에 중간에 ‘무자비’하다는 표현을 넣은 것이 놀라웠다. 이게 시인의 표현이구나 싶게 만드는… 압도당하게 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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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음은 녹기 위해 태어났다는 문장을 무심히 뱉었다

녹기 위해 태어났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었을까


녹고 있는 얼음 앞에서

또박또박 섬뜩함을 말했다는 것

굳기 위해 태어난 밀랍초와

구겨지기 위해 태어난 은박지에 대해서도


그러려고 태어난 영혼은 없다

그러려니 하는 마음에 밟혀 죽은

흰쥐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흰쥐, 한마리 흰쥐의 가여움

흰쥐, 열마리 흰쥐의 징그러움

흰쥐, 수백 마리 흰쥐의 당연함


질문도 없이 마땅해진다

흰쥐가 산처럼 쌓여 있는 방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잘 수 있게 된다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거라고

어른이 된다는 건 폭격 속에서도

꿋꿋이 식탁을 차릴 줄 아는 거라고


무엇이 만든 흰쥐인 줄도 모르고

다짐하고 안도하는 뒤통수에게


넌 죽기 위해 태어났어

쓰러뜨리기 위해 태어난 공이 날아든다

당연한 말이니까 아파할 수 없어

불길해지기 위해 태어난 까마귀들이

전신주인 줄 알고 어깨 위에 줄지어 앉기 시작한다


 - <표적>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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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과학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영재 교육이랍시고 과학 실험들을 이것저것 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내가 뼛속까지 문과인 걸 보면 아무 의미 없는 듯하다.) 거기서 했던 여러 실험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뭐니뭐니 해도 ‘생쥐 해부 실험’이었다. 비위가 약한 편은 아니라 학원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곧잘 해부하긴 했지만, 그래도 살아서 뽈뽈 움직이던 쥐들을 투명한 상자에 가둬놓고 마취 약을 풀어서 실시간으로 잠재우던 그 모습은 아직도 생생히 (영상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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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이 시를 읽으면서 속으로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해부했던 쥐도 시에서 나오는 ‘흰쥐’였는데, 걔네도 엄연한 한 생명이었고 해부실험에 쓰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었을텐데… 비단 흰쥐 뿐만이 아니라 ‘그러려고 태어난’ 존재는 없다고 말하는 이 시가, 특히 팩트 폭행 수준으로 직설적으로 내리꽂는 몇 구절들이 너무도 아프면서도 무겁게 느껴졌다. ‘흰쥐가 산처럼 쌓여 있는 방에서 / 밥도 먹고 잠도 잘 수 있게 된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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