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교육 민음의 시 260
송승언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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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대체적으로 ‘데모’와 관련한 시들이 많은 것 같다. 직접적으로 ‘데모’를 언급하는 시들도 있었고, 간접적으로 그 상황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시들도 있었다. 물론 전혀 관련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시들 또한 데모와 관련지어 생각하면 또 색다르게 해석되기도 하였다. 아무튼 ‘데모’라는 주제는 뭐랄까… 사람 마음을 참 무겁게 만든다. 데모에 직접 뛰어든 당사자의 처절한 마음도, 그런 당사자들을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착잡한 마음도, 모두 다 이해되고 공감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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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하러 가는 길은 멀었다. 버스에서는 잠깐 졸았다. 덜 깬 채 버스 밖으로 쏟아지듯이 나와 사람들을 따라다녔다. 너무 앞으로 가면 뒤로 가고 너무 뒤로 가면 앞으로 갔다. 사람들이 뭐라고 소리치면 나도 뭐라고 중얼거렸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듯이 죽어도 죽은 것 같지가 않다. 그건 아직 살아있을 때 느꼈던 감각. 누군가 내 손에 뭔가를 쥐여주었고 나는 그것을 흔들고 다녔다. 나는 광장 너머 언덕 너머 교회 첨탑들을 보며 묘지같이 다정하다고 말했던 사람을 생각한다. 10년 전 데모하려 모인 자리에서 처음 본 사람. 다시는 못 본 사람. 이제 나는 공원으로 가거나 공장으로 가겠지. 그리고 가겠지. 화도 눈물도 안 나는 상황 속에서 하늘에 흩날리는 풍선들이나 보고 있겠지. 방독면 쓰겠지. 버스 타러 가겠지. 잠깐 졸겠지. 꿈도 꾸겠지. 돌아올 수 없는.


 - <커대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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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과 연의 구분이 일절 없는 ‘산문시’가 좋았던 적인 이 시가 처음인 듯하다. 산문시는 읽을 때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것 같은데, <커대버>라는 시는 그렇지 않았다. 이 시의 제목인 ‘커대버’는 ‘시체’를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커대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읽을 때에는 그저 데모하러 가는 사람의 흔들리면서도 결연한 다짐을 쓴 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커대버의 뜻을 찾고 난 뒤 다시 이 시를 읽으니, 마지막 구절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돌아올 수 없’다는 말이 죽었기 때문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일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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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파괴된 동상

모두 사랑했던 동상


사랑하던 사람들 다 가고 손가락질하던 사람들 다 가고 그 후손들 다 가는 이후에도


반쯤 파괴된 채 남은 동상

아주 파괴되지는 못한 동상

동상에게 동상의 외로움 있겠지

동상에게 동상의 슬픔 있겠지


그러나 피도 눈물도 없는 동상

그러나 핏자국 눈물 자국은 있는 동상


이전을 아는 사람들이 만든 이전은 모르는 동상

이후를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이전을 가르쳐주는 동상

이제 가르칠 사람이 없는 동상

친절한 동상 슬픈 동상


없는 시간을 사는 동상

아닌 시간을 사는 동상


있어 볼 만큼 있어 본 동상

슬슬 없어도 되겠지만 없어질 수 없는 동상


사라진 누군가를 모델로 한 누군가의 모델인 동상

누군가가 잊힌 뒤에도 잊힌 누군가의 모델인 동상


그런 동상이 나 본다

반쯤만 인간인


 - <반쯤 인간인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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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데모’의 상황을 대입하기 전과 후의 감상이 달랐던 바로 그 시다. 시 자체로만 보았을 때는 그저 동상에 대한 색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만 생각했다. ‘피도 눈물도 없’지만 ‘핏자국 눈물 자국은 있’다는 표현과, ‘이후를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이전을 가르쳐주는 동상’이란 표현에 놀랐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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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 연을 보는 순간 분위기는 반전된다. 시적 화자인 ‘나’도 실은 ‘반쯤만 인간’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제목까지 더하여 생각해보면 시적 화자도 ‘동상’이었던 것이다. 즉, 이 시는 한 동상이 다른 동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적은 듯한 시였고, 나는 그렇게 이 시를 다시 읽으면서 두 동상이 세워지게 된 계기가 어쩌면 ‘데모’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더더욱 무거워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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