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창비시선 446
안희연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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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수천의 심장을 따로 모아 기도를 올린 적도 있지요

다음 생엔 부디 너 자신으로 태어나지 말아라

내가 주는 것이 안식이라는 믿음

시간은 무자비하게 나를 단련시켰고


어쩌면 자비였을 수도 있겠군요

적어도 영혼이라는 말은 믿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꿈속에선 심해를 헤엄치게 될까요

머리를 내려칠 때마다, 심박수가 파도를 만들어낸다는 목소리가

꼬리를 내려칠 때마다,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라는 목소리가

멈추질 않고


손에선 비린내가 가시지 않습니다

어떤 물을 마셔도 바닷물을 받아 마신 듯 입이 쓰고 갈증이 납니다


아침저녁으로 피를 씻어내는 일이 나의 묵상입니다

하지만 무엇으로도 씻기지 않는 것들이 끝내 나이겠지요


지금껏 나는 수없이 나를 죽이고

토막난 자신을 마주해왔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생선 장수의 노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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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과 회를 무지막지하게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시였다. 그리고 무수한 생선을 죽여야 하는 생선 장수의 죄책감과, 시간이 쌓이면서 그 마음이 옅어지는 데에 다시금 느껴지는 생선 장수의 죄책감이 너무도 슬펐던 시이기도 했다. 특히 ‘시간은 무자비하게 나를 단련시켰고’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생선을 죽이는 그 무거운 마음이 점차 옅어지는 과정을 ‘시간’이 ‘나를 단련시’킨다고 표현함과 동시에, 그 마음이 옅어질지언정 행위 자체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기에 중간에 ‘무자비’하다는 표현을 넣은 것이 놀라웠다. 이게 시인의 표현이구나 싶게 만드는… 압도당하게 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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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은 녹기 위해 태어났다는 문장을 무심히 뱉었다

녹기 위해 태어났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었을까


녹고 있는 얼음 앞에서

또박또박 섬뜩함을 말했다는 것

굳기 위해 태어난 밀랍초와

구겨지기 위해 태어난 은박지에 대해서도


그러려고 태어난 영혼은 없다

그러려니 하는 마음에 밟혀 죽은

흰쥐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흰쥐, 한마리 흰쥐의 가여움

흰쥐, 열마리 흰쥐의 징그러움

흰쥐, 수백 마리 흰쥐의 당연함


질문도 없이 마땅해진다

흰쥐가 산처럼 쌓여 있는 방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잘 수 있게 된다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거라고

어른이 된다는 건 폭격 속에서도

꿋꿋이 식탁을 차릴 줄 아는 거라고


무엇이 만든 흰쥐인 줄도 모르고

다짐하고 안도하는 뒤통수에게


넌 죽기 위해 태어났어

쓰러뜨리기 위해 태어난 공이 날아든다

당연한 말이니까 아파할 수 없어

불길해지기 위해 태어난 까마귀들이

전신주인 줄 알고 어깨 위에 줄지어 앉기 시작한다


 - <표적>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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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과학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영재 교육이랍시고 과학 실험들을 이것저것 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내가 뼛속까지 문과인 걸 보면 아무 의미 없는 듯하다.) 거기서 했던 여러 실험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뭐니뭐니 해도 ‘생쥐 해부 실험’이었다. 비위가 약한 편은 아니라 학원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곧잘 해부하긴 했지만, 그래도 살아서 뽈뽈 움직이던 쥐들을 투명한 상자에 가둬놓고 마취 약을 풀어서 실시간으로 잠재우던 그 모습은 아직도 생생히 (영상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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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이 시를 읽으면서 속으로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해부했던 쥐도 시에서 나오는 ‘흰쥐’였는데, 걔네도 엄연한 한 생명이었고 해부실험에 쓰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었을텐데… 비단 흰쥐 뿐만이 아니라 ‘그러려고 태어난’ 존재는 없다고 말하는 이 시가, 특히 팩트 폭행 수준으로 직설적으로 내리꽂는 몇 구절들이 너무도 아프면서도 무겁게 느껴졌다. ‘흰쥐가 산처럼 쌓여 있는 방에서 / 밥도 먹고 잠도 잘 수 있게 된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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