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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ㅣ 창비시선 469
최백규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평점 :
최근 들어 시집을 꾸준히 찾아서 읽는다고는 하지만, 젊은 시인들의 시집은 어째서인지 나와 감성이 그다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예전의 유수한 시인분들께서 쓰신 시적 표현들을 반복하여 쓸 수는 없기에 새로운 표현들을 찾아 시를 적다보니, 그 표현들이 나날이 함축적이고 어려워져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같은, 너무도 좋았던 시집 한 권을 만났다. 단독 저서(?)로는 이 시집이 유일한, 최백규 시인님의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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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송곳이 내 안으로 악착같이 자라서
숨을 뱉으면 전부 깨져버릴 것 같았고
- <천국 흐리고 곳곳에 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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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슴을 열지 않으면 암세포가 파고든다는데 수술비는 삼촌이 도박으로 탕진한 지 오래였다
사채업자들이 드나들기 시작하자 그는 자루 안에서 질질 끌려가는 것처럼 웅크렸다 여생 동안 돈에 묶여 물속으로 유기된 셈이다
- <돌의 흉곽>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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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가 좋았던 시들도 물론 있었지만 이번에 읽은 시집에는 일부 구절들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던 경우가 많았다. ‘얼음송곳이 내 안으로 악착같이 자’란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우울하고 예민한 기질을 ‘얼음송곳’에 빗대어 표현한 걸까. 툭 건들기만 해도 와락(?) 쏟아지는 감정적인 반응을, 얼음송곳으로 인해 ‘숨을 뱉으면 전부 깨져버릴 것 같’다고 표현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그런 예민함을 겪은 적 있기에, 막연하게만 느꼈던 예민했던 그 마음이 ‘얼음송곳’으로 구체화되어 내게 다가와서 마음이 크게 동했던 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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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흉곽>이라는 시에 쓰인 구절은 또다른 느낌으로 좋았다. <천국 흐리고 곳곳에 비>의 구절이 개인적인 공감으로 좋았던 거라면, <돌의 흉곽>은 클리셰적인 상황의 색다른 표현이 느껴져서 좋았달까…? 수술비를 내야하는 상황에서 도박으로 돈을 몽땅 탕진한 상황, 그래서 사채업자들의 협박을 받게 된 상황은 내가 직접 겪어보진 않았어도 아주 많은 영화, 드라마, 소설 속에서 흔히 마주한 적이 있다. 그런 사채업자들에게 빌빌거리게 되는 심정을 ‘자루 안에서 질질 끌려가는 것’으로, 또 ‘돈에 묶여 물속으로 유기된’ 것으로 표현한 것이 내게는 꽤 신선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