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이라는 존재 자체가 희귀했던 시절, 게다가 불문과와 영문과에 재학 중이라면 뭔가 멋지고 세련된 느낌을 줬습니다.그래서인지 많은 영화나 소설에서도 불문과와 영문과 다니는 여대생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지요.대학 나온 사람이 드물었던 시절, 많은 남자들의 환상 속에 살았던 미모의 여대생들...얼핏 생각나는 장편 소설 두 편!
박범신이 쓴 최초의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1978).왠지 제목도 멋지고 이야기도 재밌어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하지만 통속적인 재미만 추구했다고 해서 박범신=흥미위주의 대중작가라는 평가를 오래 따라다니게 한 굴레같은 작품이기도 하지요. 주인공 다희는 가난한 불문과 여학생입니다.같은 과 남학생과 연인인데 둘 다 가난하다 보니 동거생활도 라면이나 끓여먹고 그러죠.그러다 재벌 2세와 만나서 옛 연인을 버리고...하는 전형적인 아침 드라마 같은 이야기지만 문장이 깔끔하고, 가끔 가다가 보들레르 시도 인용하면서 세력된 지적인 느낌도 주었습니다.결국 재벌 2세는 기업이 부도나자 홧김에 과속으로 승용차 몰다 죽고, 다희는 정신이 돌았는데 그때 이미 죽은 남자의 애를 임신 중이었고...나는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30대 초반의 박범신을 스타로 만든 작품이라서 더 관심이 갔던 소설이기도 했습니다.
다희라는 이름은 지금도 세련된 느낌을 주죠.편견인 것 같지만 불문과 여대생이 복순이라든가 순임이라고 하면 안 어울릴 것 같습니다.이 소설이 나오고 10년 후 이문열이 연애소설을 하나 쓰는데 이 또한 잘 팔렸습니다.제목도 멋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이문열 본인은 이 소설에 대해 좀 쑥스러웠다고 하는데 어쨌든 당시에는 대단한 인기를 모은 게 사실입니다.아직 이문열 씨도 젊었고 해서 이런 불타다가 파멸하는 청춘들 이야기를 써도 어울렸죠.이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은 윤정입니다.영문과 학생이고요.역시 가난이 싫어 애인과 헤어지고 미국으로 유럽으로 떠돕니다.남자는 그런 그녀를 찾아 가고 그리고...권총으로 여자를 쏴죽이고...
이문열과 달리 박범신은 <죽음보다 깊은 잠>에 상당한 애정을 지니고 있습니다.그래서 최근까지 판을 찍었지요.하지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한동안 인기를 얻었습니다다만 지금은 구하기 힘든 책이 되었습니다.헌책방에서도 구하기 힘들더군요.
소설이 인기가 있었기에 바로 영화화되었고 여주인공은 당대 톱스타였습니다.<죽음보다 깊은 잠>은 김호선 감독에 정윤희가 주연.<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장길수 감독에 강수연이 주연이었습니다.20대의 정윤희 강수연은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죠.
<죽음보다 깊은 잠>은 이사다니다 없어졌는데 몇 년 전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없어진 뒤로 감감무소식이군요.이젠 강수연과 그녀의 애인역을 맡은 손창민의 20대 시절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손창민 씨는 요즘도 연기자로 왕성하게 활동하는데 강수연 씨는 몇 년 전 주말연속극에 나와 시원찮은 시청률을 올린 후로 연기활동을 안 하는군요.그때 이미 미모가 많이 시든 상태라서 세월의 심술이 야속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