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용서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넘쳐 흐릅니다.하지만 정작 공감과 용서에 목말라 하는 사람도 넘쳐흐릅니다.원인은 간단합니다.공감의 기초는 남의 이야기 들어주기인데 이게 안 됩니다.다들 "내 이야기를 들어주란 말이야!" 하고 목소리를 높이지, "당신 이야기를 들어주겠소" 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남이 나를 용서했으면 좋겠다, 내 말을 들어보면 정상을 참작할 수 있을 거다 하고 말합니다.그러나 남의 정상을 참작하겠다거나 남을 용서해주겠다는 사람은 드뭅니다.결론은 "나는 용서받아야 하지만 남을 용서할 수는 없다"가 되어버립니다.
내 이야기하기는 쉽지만 남의 이야기 들어주기는 어렵습니다.남이 나를 용서하는 것은 쉬워보이지만 내가 남을 용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꽤 오래전 한국 천주교계에서 내 탓이오 운동이 있었지만 별 성과를 못거두었습니다.실제로 스스로 뉘우치려는 사람보다는 "왜 너는 반성 안 하느냐?" 하면서 결국은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오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