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이윤 옮김 / 필로소픽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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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때는 작년이었던가.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에서 인지심리학자 김경일의 언급으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당장 읽겠다고 구매해놓고,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릴 줄은 그때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생각보다 얇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책인데, 제목만은 강렬한 '개소리에 대하여'이며, 영어로는 'ON BULLSHIT'이다.

심지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책이니, 더욱 이 책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참을 책장에 두고 펼쳐볼 새가 없었지만, 이번에 읽어보게 되었다.

그래도 막상 펼쳐 드니 '그래, 나 이 책 무척 읽어보고 싶었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독서의 시간을 가져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해리 G. 프랭크퍼트.

프린스턴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저명한 도덕철학자이며, 저서로는 《진리에 대하여》, 《불평등에 대하여》, 《사랑의 이유》, 《필연성, 의지, 그리고 사랑》, 《우리가 신경 쓰는 것의 중요성》 등이 있다. (책 속 저자 소개 전문)



이 책의 느낌이 어떤지는 맨 처음 문장을 한번 살펴보자.

처음 시작은 이렇게 된다.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모든 이가 이것을 알고 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개소리를 하고 다니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개소리를 알아 차리고 거기에 현혹되지 않을 정도의 지각은 갖추고 있다고 꽤 자만하고 있다. 그래서 개소리와 관련된 현상은 진지한 검토의 대상으로 부각되지 않았고, 지속적인 탐구의 주제가 되지도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개소리란 도대체 무엇인지, 왜 그토록 개소리가 많은지, 또는 개소리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등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개소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진지하게 밝혀낸 올바른 인식을 결여하고 있다. 달리 말해서 우리에게는 개소리에 관한 이론이 없다. (7~8쪽)



그러고 보니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은 2005년이고,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처음 출판된 것이 2016년이니, 어쨌든 그 이후 내가 어느 순간에 이 책을 읽든 공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겠다.

점점 더 개소리가 많아지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개소리에 관한 진지한 이론이 없으니, 저자가 몇 가지 가설적이고 예비적인 철학적 분석을 제공함으로써 개소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론을 발전시켜보고자 한다는 말에 궁금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저자는 개소리의 개념 구조를 개략적으로 규명하는 목적으로 이 책을 집필한 것이고, 그러는 데에는 이 정도의 부담 없는 두께와 글이 적합한 것이다.

너무 두껍거나 부담스러운 겉모습으로는 '개소리'를 담아내는 데에 적합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특히 프린스턴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이며 저명한 도덕철학자가 이야기하는 '개소리'는 더욱 신선한 느낌이 들어서 이 책을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어쩌면 이 책은 저자와 상반되는 이미지의 단어이기 때문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집중은 했지만 미세한 의미 차이를 이해하기 힘든 것은 언어 차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개소리와 협잡, 허튼소리, 쓸데없는 말, 말도 안 되는 얘기, 실없는 소리, 헛소리, 사기, 엉터리 등의 동의어 목록부터 설명에 집중하며 머리를 쓰며 읽어나가도 도통 느낌이 와닿지 않았고, 개소리와 불 세션의 차이를 말할 때에 한참을 단어에 집착하며 머리를 굴려도 결국은 언어의 차이 때문에 와닿지 않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역시 도덕철학자가 들려주는 개소리에 대한 이야기는 개소리까지도 철학적으로 사색하게 만드는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우연히도 더운 공기와 대변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그것은 더운 공기를 특히 소똥 bullshit에 어울리는 동의어처럼 보이게 만든다. 더운 공기가 모든 정보성 알맹이가 빠진 말인 것처럼, 대변은 영양가 있는 모든 게 제거된 물질이다. 대변은 영양분의 시체, 즉 음식에서 필수 요소가 다 빠져나가고 남은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대변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내는 죽음의 재현이다. 우리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대변을 어쩔 수 없이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아마도 우리가 대변을 그토록 혐오스러워하는 건 죽음을 너무도 친숙하게 만들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어쨌든 대변은 자양분이라는 목적에 기여할 수 없다. 마치 더운 공기가 의사소통이라는 목적에 기여할 수 없는 것처럼. (46쪽)

또한 이 책을 읽으며 개소리쟁이와 거짓말쟁이에 대한 사색도 인상적이었다.

정직한 사람이 말할 때, 그는 오직 자신이 참이라고 믿는 바를 말한다. 거짓말쟁이는, 이에 상응하게 자신의 발언이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 그렇지만 개소리쟁이에게는 이 모든 것이 무효다. 그는 진리의 편도 아니고 거짓의 편도 아니다. 정직한 사람의 눈과 거짓말쟁이의 눈은 사실을 향해 있지만, 개소리쟁이는 사실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개소리를 들키지 않고 잘 헤쳐 나가는 데 있어 사실들이 그의 이익과 관계되지 않는 한, 그는 자신이 말하는 내용들이 현실을 올바르게 묘사하든 그렇지 않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기 목적에 맞도록 그 소재들을 선택하거나 가공해낼 뿐이다. (58~59쪽)

그러고 보면 우리는 개소리에 대해 관대했나 보다. 거짓말보다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왔다면 이 책을 계기로 개소리에 대한 고찰을 해볼 필요가 있겠다.

거짓말을 하려면 진리를 모르면 할 수 없지만, 개소리는 굳이 공들여 만들 필요 없이 약간의 뻔뻔함만 있으면 된다니까.



이 책은 이 시대에 만연한 언어의 타락 현상을 다룬다.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영미철학 특유의 분석적 기법으로 개소리라 불리는 친숙한 개념을 파고든다. 개소리를 협잡, 거짓말 등의 개념과 비교해가면서 그 특유의 본성을 탐색하고, 개소리 현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것이 왜 중요한 사회 문제인지를 밝혀낸다. (71쪽, 옮긴이의 글 중에서)

다 읽고 보니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도 초판 1쇄 발행이 2016년 10월 31일에 되었고, 나는 2020년 9월 13일 초판 4쇄 발행본을 읽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개소리에 대해 사색했다고 생각하니, 놀랍기도 하고 이 책이 다시 보였다.

지금껏 개소리에 대해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지 못했으니, 이 책을 계기로 한번 인문학적으로 생각에 잠겨보아도 좋겠다. 꽤나 독특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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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2-11-09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카일라스님~^^

thkang1001 2022-11-09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일라스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무섭지만 재밌어서 밤새 읽는 천문학 이야기 재밌밤 시리즈
아가타 히데히코 지음, 박재영 옮김, 이광식 감수 / 더숲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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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렇게 천문학 이야기를 읽어줘야 한다. 시간 개념부터가 달라진다. 기껏해야 100년 사는 인간이 지구 나이 앞에서는 겸손해지며, 지구 같은 별이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르는 광활한 우주 공간으로 시선을 돌리면, 인간사 웬만한 걱정은 훌훌 털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청소년 과학 필독서 <재밌밤>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청소년 도서로 나온 책을 보면 대부분 곁가지 치고 중요한 내용을 알차게 추려내서 들려주니 기대 이상이었다. 그래서 이 책도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에서는 한번 읽으면 멈출 수 없는 섬뜩하고 스릴 넘치는 우주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한다.

감수의 글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우주를 많이 보고 오래 사색한 이라면, 인류가 이 우주에서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생존하고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엄청난 행운과 수많은 우연의 중첩으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폭력적인 장소다. (192쪽)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며 이 책 『무섭지만 재밌어서 밤새 읽는 천문학 이야기』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아가타 히데히코. 일본의 대표적인 천문학자이자 교육자. 교사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친숙하고 흥미로운 방법으로 천문학의 재미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활발한 강연과 집필은 물론이고 라디오, TV에서 활동 중이다. (책날개 발췌)

이 책에서는 과학적인 입장에서 가장 오래된 학문인 천문학의 성과를 마음껏 누리게 하고 싶다. 천문학은 공포로 장식된 스릴 넘치는 세계다. 부디 그 스릴을 즐기기 바란다. (7쪽)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우리 주변의 우주가 주는 공포 - 위험한 태양계', 2부 '우주는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 항성과 은하 세계의 공포', 3부 '밝지만은 않은 우주의 미래 - 우주론의 무시무시한 세계'로 나뉜다.

운석은 매일 밤 쏟아지고 있다, 태양에서 쏟아지는 방사선의 공포, 태양에서 보내는 일상적인 위협, 화성인이 지구를 공격했다?, 도대체 우주는 왜 무서울까?, 언젠가 일어날 초신성 폭발, 감마선 폭발로 발생한 대멸종, 안드로메다은하가 은하수에 충돌한다?, 무서울 만큼 가속 팽창하는 우주, 우주의 크기조차 잘 모른다 등의 글이 담겨 있다.



우주에 대한 책은 자주 읽어왔는데 이번 책은 콘셉트부터 독특하다. 바로 '공포'를 키워드로 하여 천문학을 들려주는 것이니 말이다.

알고 보니 공포스러운 일이지만, 그다지 공포를 모르고 살았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운석은 매일 밤 쏟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별똥별을 본 적이 있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아마 올 8월에도 별똥별이 쏟아진다는 우주쇼 뉴스를 보았던 것 같다. 올해 못 보면 몇 십 년간 못 본다는 이야기도 하면서 매스컴에서 떠드니 '올해는 꼭 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운석은 매일 밤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 게다가 운석이 지붕을 뚫고 들어왔다거나 자동차 보닛을 찌그러뜨렸다는 사례는 꽤 많다. 그리고 가장 많이 떨어지는 곳이 바로 남극이라고 한다. 남극에서 돌이 발견되면 운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 거대 운석 베스트 10' 목록도 흥미롭다. 현재 알려진 최대 운석은 1920년에 호바 운석으로 나미비아에서 발견되었는데, 66톤이나 된다는 것이다. 밭을 갈던 한 농부가 발견한 철운석이며 약 8만 년 전에 지구에 충돌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세계 거대 운석 베스트 10 중에 가장 최근에 있었던 것은 2016년에 아르헨티나에 떨어진 간세도 운석으로 30.8톤이나 된다.

또한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 인체도 원소 수준으로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면 우주와 더욱 가까운 듯하면서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의 몸은 산소·수소·탄소·질소 외에도 철·인·유황 등 수많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 원소들은 별 속에서 탄생하거나 초신성이 폭발할 때, 그 후의 중성자별끼리 합체할 때 그 반응으로 만들어진다. 초신성 폭발이 없으면 생명체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138억 년 전에 우주는 빅뱅이 일어나 엄청나게 작은 곳에서 탄생했고 초신성 폭발을 여러 번 거친 후 46억 년 전에 태양과 지구, 즉 태양계가 완성되었다. 우리는 원소 수준으로 생각하면 그야말로 '별의 아이들'이다. 46억 년 전에 똑같은 태양계 안에서 태어났으며 원소 수준으로 우주와 이어져 있다. (132쪽)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 한 가지만 더 언급해야겠다.

콜롬비아는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그때까지 문제가 많은 치안과 내부 갈등을 극복하려고 애써 왔다. 2012년에는 메데인에 근대적인 플라네타륨(천체투영관)이 완성되었다. 플라네타륨의 카를로스 몰리나 관장이 매우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했다.

열다섯 살 정도의 갱단 청소년들이 플라네타륨에 찾아왔다. 평소에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패거리 싸움에 몰두하느라 마음이 피폐해진 청소년들이다. 갱단의 두목이 플라네타륨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고 돔에서 나오자마자 무기를 버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늘 좁은 영역 싸움을 반복해 왔는데 잘못 알았어요. 지구 전체가 인간이 속한 영역이군요." 그 후 싸움이 잦아들고 청소년들은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179쪽)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사실 나도 인간사 고민이 많을 때에 일부러 우주 관련 서적을 찾아 읽곤 하는데, 갱단 청소년들에게 그런 일화가 있었다니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주를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우리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철학적인 부분까지 사색에 잠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이다.

청소년들에게도 이 책이 우주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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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어서 네가 즐거우면 나도 즐겁다
허공당 혜관 지음 / 파람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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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들려주는 비움과 채움의 삶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마음이 북적북적 복잡할 때에는 스님이 들려주는 깨달음의 언어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제목은 어떤 의미일까.

자비의 기쁠 '자慈'는 상대가 한 옳은 일로 기뻐할 때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뜻이고, 슬퍼할 '비悲'는 상대가 옳은 일을 했음에도 슬퍼할 때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뜻이니,

내가 있어서 네가 즐겁고, 네가 즐거워서 나 또한 즐겁다면 자비가 이미 그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기쁨이든 슬픔이든 우리는 함께 나누어야 하고,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지고지순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책 뒤표지 중에서)

이 정도의 이야기라면 한 걸음 정도는 가깝게 다가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숲을 건너오는 소슬바람처럼 청량하고

이름 모를 들꽃의 속삭임처럼 다감하여

얼음장 아래 흐르는 물처럼

투명한 깨달음의 언어 (책날개 중에서)

어떤 글을 담고 있을지 궁금하여 이 책 《내가 있어서 네가 즐거우면 나도 즐겁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허공당 혜관. 열한 살 무렵부터 합천 해인사에서 수행을 시작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긴 후 해인사를 떠나 몸을 법당으로 삼고 마음을 도량으로 삼아, 편안하되 편안하지 않고 자유롭되 자유롭지 않은 수행을 이어오고 있다. 깨달은 만큼이라도 법우님들과 함께 나누고자 글을 쓰고 있다. (책날개 작가 소개 전문)

세상 모든 곳이 다 수행처이며, 그 어떤 이들이나 그 어떤 것들이라도 다 스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한 곳에서 사흘을 머물지 말라'라고 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많은 곳을 떠돌며 만나는 사람들과 동식물, 심지어 먼지 한 점까지도 귀하게 여겨 살피고 수행해왔습니다. 살아오면서 저 모든 이들이나 것들로부터 입은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 궁리하다가, 페이스북을 통해 수행해 오면서 겪고 느낀 바를 법우님들께 전하던 중 한 출판사와 좋은 인연을 맺게 되어 책의 글로써 전하게 되었습니다. (7쪽)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된다. 1부 '많이 줘도 욕심, 적게 줘도 욕심', 2부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것'으로 나뉜다. 할매 부처님, 사랑이 아니고 동정이어요, 가야산의 메아리, 아스팔트 위의 지렁이, 천 원짜리 할머니, 두뇌 역시 도구일 분, 왜 화를 내시나요?, 비만은 파멸인데도, 노숙자의 행복, 같은 짝퉁끼리 뭘 어쩌겠다고, 사람의 아비가 아닌, 멍청한 거미의 왕생극락, 좋은 소나무는 다 잘려나가고, 누가 살리고 죽이는 것이기에 등의 글이 담겨 있다.



이 책을 보면 스님에게 있었던 일화라든지 소소한 일상 이야기, 스님이 읽었던 책 중 과학자들의 이야기까지 다방면으로 다양하게 풀어내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가 짤막짤막해서 부담 없이 읽기에 좋다.

허공당 혜관 스님은 열한 살 무렵부터 합천 해인사에서 수행을 시작했고, 각처를 돌아다니면서 오랜 수행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하여 깨달은 만큼이라도 함께 나누자고 이 책을 출간한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독자도 그의 이야기와 더불어 깨달음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본 세상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과 감동의 시간을 갖는다.

또한 이 책을 보며 각양각색 여러 사람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선행이나 깨달음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선행이고 깨달음의 경지라는 생각이 드니, 그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 원짜리 할머니>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할머님께서 재래식 시장에 '해 뜨는 식당'을 여신 것은 지난 2010년 전후부터였다고 하는데, 밥값이 천 원이라 '천 원 할머니'라고도 불렸다는 것이다.

"내가 천 원이란 돈이나마 받는 이유는, '밥값이 싸니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은 성품을 기르라'라는 뜻이고, 내가 천원이란 돈이나마 받는 이유는, '천 원이나마 밥값을 내니까 당당하되 거만하지 않은 성품을 기르라'라는 뜻이야." (30쪽)

선행을 많이 하면서도 깨달은지도 모르는 사람 일화도 있다.

진정 깨달은 이는, 조건 없이 자비를 베풀며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즐겁고 편안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깨닫게 하여 함께 부처님이 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깨달은 이는 자비를 바탕으로 하되 중생을 이끄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37쪽)

그밖에 다양한 분야에서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니 옛날이야기 듣는 듯 읽어나가도 좋고, 사람 살이 삶의 소리를 듣는 느낌으로 펼쳐보아도 좋겠다.



짤막한 이야기와 각종 일화, 우화 등을 보면서, 짧은 이야기 끝에 긴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악을 악으로 갚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대처하면 될지 그 지혜도 알려주는 책이다.

스님의 에세이를 통해 인생의 고찰과 선행에 대한 생각 등등 나 또한 깨달음을 맛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보았다. 법문처럼 읽을 수 있는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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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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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읽고 싶은 소설을 찾던 중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어서 호기심이 생겼는데, 유시민 작가가 아나키스트인 아버지와 아들이 벌이는 코미디물인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의 예를 들며 이 소설을 추천했고, "올해 읽은 책 중 제일 재밌고 강력하다!"는 평을 했다고 하니 더욱 궁금했던 것이다.

결국 '어디 직접 한번 읽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누가 재미있다고 하면 나에게도 그 책이 정말 재미있는지 호기심이 생겨서 직접 읽어보고 싶다. 그래서 기다리는 시간이 두근두근 설렜다.

『빨치산의 딸』 출간 시 판매금지, 기소 등의 사건을 겪은 정지아 작가가 32년 만에 소설의 첫 문장을 다시 썼다고 하니, 더욱 호기심을 자아내어 이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정지아. 1965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되었다.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 등이 있다.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올해의 소설상, 노근리 평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책날개 작가소개 전문)



이 책의 초판 1쇄 발행이 2022년 9월 2일이고, 내가 읽은 책이 2022년 10월 7일 초판 6쇄 발행본이니 그 인기는 짐작할 만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소설이다. 아마 지금보다 더 입소문이 날 것 같다. 나도 재미있게 읽었고 입소문을 내는 데에 동참하고 싶은 소설이니 말이다.



소설의 첫 시작은 강렬하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7쪽)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왜 그런 식으로 삶을 마감한 것인지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소설을 계속 읽어나갔다.



이 소설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거기에서 비롯된 과거의 이야기들이 함께 전개된다. 그 등장인물들이 독특한 성품이어서 재미있게 표현되고 그들의 성격을 훤히 볼 수 있게 이야기해준다.

개성 있는 사람들의 등장이 독특해서 재미있게 읽어나갔다. 게다가 구례의 사투리로 대화를 나누어 더욱 실감 나고 현장감 넘치는 느낌이 들었다.

역사적인 현장을 보는 듯이 표현해서 실감 나게 읽었다. 그동안 사상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것을 떠나서 인간적인 면모를 바라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백운산에 가장 오래 있긴 했지만 이산 저산 떠돌며 48년 겨울부터 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옭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252쪽)

그렇구나. 그랬구나. 빨치산으로 산 세월이 고작 사년이면서 이 기간이 평생을 좌우했구나.

어쩌면 많은 이들이 그러한 고통으로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소설은 그러한 사람들의 현실과 마음을 끌어내어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을 계기로 그들의 마음과 삶을 짐작해본다. 우리의 현대사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265쪽)

마지막 장면에서는 결국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한참을 울컥한 기분으로 책장을 부여잡고 먹먹했다.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



성장기의 나는 먼 데서 기적이 울릴 때마다 그 기차가 가닿을 서울을 꿈꾸었다. 지금보다 더 멀리 더 높이. 그렇게 동동거리며 조바심치며 살다가 알게 되었다. 빨치산의 딸이므로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의 비극은 내 부모가 빨치산이라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내 비극의 출발이었다.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267쪽, 작가의 말 중에서)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예전에는 당연히 문제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래도 말이라도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되기는 했나 보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상 문제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이 책을 계기로 인식한다.

예전에는 『빨치산의 딸』 출간 시 판매금지, 기소 등의 사건을 겪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이만큼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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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지 않으려면 -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필로소피 클래스
오타케 게이.스티브 코르베유 지음, 김윤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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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먼저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에 덜컥, 소리를 내며 들어온다.

'남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지 않으려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 책을 읽어보아야 할 것만 같다.

그렇게 책은 호기심을 유발하면서 다가올 때 더욱 효과적이다. 이 책이 필요한 순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 『남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지 않으려면』을 읽으며 하나씩 짚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은 오타케 게이, 스티브 코르베유 공동 저서이다. 오타케 게이는 학생을 대상으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자이자 철학자다. 철학 교실, 글쓰기 교실 등을 운영하며 일상 속에서 철학하는 것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스티브 코르베유는 캐나다 출신으로 세이신여자대학 국제교류학과 준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수업 준비 '보는 것은 세계와 관계를 맺고 세계를 바꿔나가는 일이다', 첫 번째 수업 '정리의 시점', 두 번째 수업 '해체의 시점', 세 번째 수업 '탐구의 시점', 네 번째 수업 '발전의 시점', 다섯 번째 수업 '재생의 시점', 여섯 번째 수업 '창조의 시점'으로 구성된다. 중간중간 특별수업이 수록되어 있으며, '수업을 끝내며'와 '참고 도서'로 마무리된다.

먼저 이 책을 읽기 전에 철학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철학이란 주어진 프레임워크의 반대편을 꿰뚫어보는 신체적 행위다.(6쪽)'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주어진 프레임워크'에 대한 것부터 '신체적 행위'까지 낱낱이 짚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책은 수업을 듣는 듯 읽어나가면 된다.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해주며, 철학이라는 무기를 장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철학이 무엇인지, 즉 철학이란 주어진 프레임워크의 반대편을 꿰뚫어보는 신체적 행위라는 점을 이 책을 읽으며 순간순간 다시 인식해본다.

그러면서 살아가며 필요한 사색의 노하우를 하나씩 터득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철학적 사색은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인식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철학' 하면 대부분 어려운 학문으로 생각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갖게 되지만, 이 책을 펼쳐보면 우리 삶 속에서 꼭 필요한 부분으로 이끌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문제를 명료하게 바라보고 나다운 해결책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 안내해주는 생각 연습을 해보아야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각 철학자의 사상에 대한 설명으로 일관하지 않고, 현 상황을 더욱 깊이 이해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만한 수많은 시점을 소개했다. 이 책은 또 사회와 세계를 보는 시각을 제안한다. 개설적이고 포괄적인 기존 철학서와 달리, 여기서 소개한 시점을 통해 독자 자신이 지금까지 떠올리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그것을 이용해 일상에서 떠올리는 의문에 답하기 위한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것이 저자들의 바람이다. (305~306쪽 발췌)

이 책은 제목에서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며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생각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들은 질문을 던진다. '만약 역사적, 세계적으로 위대한 철학자들의 훌륭한 생각을 AI에 입력해 인류의 운명을 그에 맡긴다면 우리는 행복해질까?'라고 말이다.

과연 그 답은 무엇일까.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여기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이 책을 읽으며 철학적 사색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현실과 연결된 주제로 사유할 수 있도록 지평을 넓혀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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