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백운산에 가장 오래 있긴 했지만 이산 저산 떠돌며 48년 겨울부터 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옭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252쪽)
그렇구나. 그랬구나. 빨치산으로 산 세월이 고작 사년이면서 이 기간이 평생을 좌우했구나.
어쩌면 많은 이들이 그러한 고통으로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소설은 그러한 사람들의 현실과 마음을 끌어내어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을 계기로 그들의 마음과 삶을 짐작해본다. 우리의 현대사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265쪽)
마지막 장면에서는 결국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한참을 울컥한 기분으로 책장을 부여잡고 먹먹했다.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