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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2-16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 그림도!

축하드립니다

bari_che 2021-12-17 08:5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전혀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그림으로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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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2-15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신비로운 이미지는 뭘까요? 현실의 공간은 아니겠지요? 꿈에서라도 봤으면 좋겠습니다.

bari_che 2021-12-15 13:15   좋아요 1 | URL
안개와 아스라한 햇빛에서 비롯한 침엽수 흐린 윤곽을 수채 번짐으로 표현해 신비롭고 몽환적인 정서를 일으키는 듯합니다. 동아시아 산수화 느낌마저.......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생각이 사라져갑니다~^^

쎄인트 2021-12-16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21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bari_che 2021-12-16 17:21   좋아요 0 | URL
앗! 저도 모르고 있었는데 먼저 아시고 축하해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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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명처럼 규칙성에서 더 정교한 규칙성이 나오지 않고 반대로 불규칙성에서 규칙성이 나오기 때문에 인간은 곰팡이가 자기성장을 조율해 버섯 피워내는 원리에 아직도 본격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396~397, <살아 있는 미로: 곰팡이가 길을 찾는 방법> 미주13. 참조) 곰팡이가 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하는 지혜는 대체 어디서 왔을까?

 

린 마굴리스가 확립한 내부공생설에 따르면 초기 진핵생물은 단세포 유기체가 다른 단세포 유기체를 삼켜 공생이 이루어짐으로써 생겨났다. 이 현상을 단세포 유기체가 다른 단세포 유기체를 뚫고 들어갔다고 표현하든, 단세포 유기체끼리 결합했다고 표현하든, 두 원핵생물이 일으킨 상호작용에서 진핵생물이 기원했다는 내용은 동일하다.

 

삼키는 유기체도, 뚫고 들어가는 유기체도, 서로 결합하는 유기체도 목 내놓고예측불허 미래 속으로 뛰어들어 한판 붙는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투 끝에 적정 거래가 성립해 호혜공생이 이루어지기까지 혼돈은 전방위·전천후로 계속되었으리라. 이 혁명 경험이 곰팡이 몸에 오롯이 새겨져, 지의혁명으로, 식물혁명으로 번져가지 않았을까?

 

혁명은 가장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장자리는 혼돈을 본질로 한다. 혼돈에서만이 새로운 질서가 일어난다. 새로운 질서는 어떤 경우에도 완벽하지 않아서 아무 때에도 완성되지 않는다. 혁명은 계속된다. 혁명 경험이 주는 지혜도 부단히 번져간다. 인간 지혜는 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지혜 혁명에 참여하는 인간은 늘 가장자리에 선다.

 

가장자리에 서는 인간은 찰나마다 죽는다, 아니, 스스로 죽인다. 그렇게 찰나마다 스스로 죽이지 않으면 찰나마다 지혜가 죽어나가기 때문이다. 지혜이고서야 생명네트워킹 일원이 되므로 기쁘게 스스로 죽임으로써 살아간다. 최후까지 나는 노래하는 제물이며 넙죽 엎드린 제자며 춤추는 사제다. 모가지는 늘 말랑말랑 나울나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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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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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트워크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네트워크도 나를 들여다본다.(362)

 

곰팡이가 세상을 만들고, 우리를 분해한다. 곰팡이 행동을 포착할......., 곰팡이는 우리 행동을 포착한다. 우리가 지금 살아 있다면,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살고 있었다.(378)

 

인생 잘 풀리지 않은 사람이 나를 들여다보고 남 탓하지 않을 때, 숭고하다. 숭고함은 보통사람 양식良識이며, 그 양식이 두터운 사회가 건강하다. 인생 잘 풀린 사람이 나를 들여다보고 남 덕으로 돌릴 때, 우아하다. 우아함은 엘리트 명덕이며, 그 명덕이 이끄는 사회가 고급지다. 이 진실을 누군들 모를 리 없다.

 

알고도, 부덕한 몇몇 엘리트가 나를 들여다보지 않고 내 덕으로 여겨 사회를 휘저을 때, 거기 부역해 의도적 무식에 갇힌 보통사람이 나를 들여다보지 않고 남 탓하며 사회를 뒤흔들 때, 병적 저급함으로 떨어진다. 지금 우리사회는 그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중이다. 숭고 삼킨 참담, 우아 삼킨 개그가 판친다.

 

인간이 자기성찰 능력에 터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지만, 이 자부는 장물이다. 본디 자기성찰, 그러니까 내가 또 다른 나를 들여다봄으로써 형성되는 되먹임은 네트워크에서 발원했다. 네트워크어법으로 자기성찰을 표현하면, “내가 네트워크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네트워크도 나를 들여다본다.가 된다.

 

그 네트워크 본진이 곰팡이다. 우리가 곰팡이 행동을 포착할......., 곰팡이는 우리 행동을 포착한다.-네트워크가 우리-네트워크를 들여다보면, 우리-네트워크가 나-네트워크를 들여다본다. 이 원리는 곰팡이가 세상을 만들고, 우리를 분해한다.는 역사적 증거를 조건으로 지닌다. 들여다보기는 절대윤리다.

 

요 며칠 강용원 ᄂᆞ울은 죽음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죽음을 어찌 맞을까, 전할까, 거둘까, 그리고 무엇보다 죽은 자 관지에서 오늘을 어찌 살아갈까.......어렵다.

 

단서가 여기 있다. “우리가 지금 살아 있다면,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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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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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공유 균근 네트워크 연구는 정치 부담이 가장 크게 따라다니는 분야 중 하나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 시스템을 숲 자산을 재분배하는 사회주의 한 형태로 묘사한다.......이 네트워크를 식물과 곰팡이가 합리적 이성을 지닌 경제주체로, 주식시장에서 경제제재’, ‘전략적 투자’, 그리고 시장수익에 간여하는 생물학적 시장이란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355~356)

 

어떤 학문이나 종교나 특정직업 분야가 정치에서 독립적 또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적 억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뜻에서 너나없이 걸어두는 현수막이다. 심지어 검찰까지 이 현수막 걸고 자기 영역을 수호해왔다. 검찰 수장이었던 자가 사표 던지자마자 수구정당 대통령후보가 되고, 그 일을 매판언론이 만들어주고, 근본주의 종교가 뒷받침해주고, 미학 저술가와 의대 교수 선동가가 나팔수 노릇 해주는 오늘 우리사회 살풍경을 보면 그 현수막이 실은 연막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알처럼 확인할 수 있다.

 

균근 네트워크를 각각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묘사할 때, 그들 자신이 자연과학자라는 사실을 잊거나 그 묘사가 정치적 은유라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미필적이 아닌 명백한 고의로 한 가치판단 관련 언술은 description이 아니고, prescription이다; 자신이 정치적으로 어떤 관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선언한 행위다.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지평 관계없이 인간문명에서 정치가 차지하는 위상으로 볼 때, 이 점은 불변하는 진실이다. 진실과 늘 다른 현실에서 대부분 그 당사자들은 시종일관 bullshit이다.

 

저들이 아둔한 까닭은 정치적이 아니라는 주장 자체가 기득권층, 우리로 치면 매판세력에 부역하는 정치적 입장이라는 고백임을 모르는, 아니, 모르는 체 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체 해도 괜찮은 까닭은 대중이 일부러 인간적무지 속에 들어앉아 있기 때문이다. 인간적 무지라고 구태여 말하는 까닭은 네트워킹 하는 균근이면 모를 수 없는 진실을 인간이어서 모르기 때문이다. 중첩적 아둔함을 또 다시 모른 체 하며 균근 네트워크를 의인주의로 몰아넣는 이 도저한 무저갱 아둔함이라니. 무저갱 바닥까지 닿을 동아줄을 생각해본다.

 

곰팡이를 전형적인생명체로 바라본다면 인간 사회와 관습은 얼마나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될까?(360)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근원혁명이 이루어질 텐데. 가장 큰 걸림돌은 인간 언어다. 언어는 본질상 은유다. 은유 전복이 없는 한 근원혁명은 악무한이다. “곰팡이를 전형적인생명체로바라보는, 그러니까 인간을 곰팡이로 은유하는 언어[擬黴法]가 가능할까? 능력 너머 질문이다. 다만 인간 한계부터 냉정하게 짚으면 어떻게 은유해야 하는지 방향 정도는 알 수 있지 싶다. 인간 한계 요체는 동물로서 인간 몸이 장기중심 구조를 지니기 때문에 곰팡이 같은 거의완전한 네트워킹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네트워크라는 말부터 실재에서 곰팡이 아닌 인간에게 아득한 은유다. 인간은 이 진실을 거꾸로 뒤집어 곰팡이에게 은유를 뒤집어씌우고 있다. 실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자체도 인간에게 턱없는 은유다. 따지고 보면 곰팡이 네트워크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가로지르는 거의완전한 정치경제학을 구사한다. 인간이 도리어 곰팡이 생명윤리를 은유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가로지르는 네트워크에 목숨 걸어야한다. 곰팡이를 전형적인 생명체로 바라보고 거기서부터 모든 언어와 행위를 다시 창조해내야 한다.

 

재창조가 아니면 파멸이다. 파멸 위기를 뚫고 가는 유일한 길이 네트워크다. 네트워크로 가는 길은 파멸에 준하는 험난한 길이다.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인간중심 문명을 발본 혁파, 그러니까 내파implosion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능력 너머 의문이 떠오른다. 인류는 어떻게 스스로 내파해낼 수 있을까? 내 능력껏 대답한다면, 참 이상한 말장난 같지만, 내파 방법은 네트워킹이다. 네트워킹으로 일극집중구조인 인간 문명을 무너뜨리고 무한중첩 네트워킹을 만드는 과정이 내파며 재창조다. 비대칭대칭 안팎은 결국 같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내파를 거듭하고 있다. 60갑자 넘게 살아온 생명체 사회와 관습을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지점부터 점검하면서 전형적 생명체를 향해 네트워킹 빛띠(스펙트럼)를 조정해간다. 세계를 말하기 전에 나부터 말해야 도리에 맞다. 나는, 아니 일단 강용원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ᄂᆞ울은 곰팡이 시점에서 회상어법으로 말하는 전미래 언어를 실험하는 중이다. 니마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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