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순환둘레길 안양 구간을 걸었다. 공식으로는 10km인데 중간에 길을 놓치는 바람에 18km를 걷게 되었다. 집을 나서서 돌아오기까지 총 22.5km로 하루 기록 최고치를 경신했다.^^

길을 놓치고 헤매는 동안 지나가는 상념이 인생 과정과 포개진다. 가벼운 공포, 분노, 체념, 투지, 평정, 우연한 재회에서 느끼는 기쁨, 길을 놓쳤기에 발견한 경이를 감사함, 전반을 조망할 때 관대함…


막바지 인덕원역 근처 길섶 소슬한 풍경으로 눈길이 달려간다. 아직은 이른 계절이라 큰봄까치꽂 낯빛이 스산하지만 서쪽으로 완연히 기운 해를 향해 배시시 웃는 모습은 그럼에도 건강해보인다.


내 생에 다시 봄날이 올 수야 없겠지만 가을 빛을 봄 빛으로 느끼고 피어나는 꽃처럼 기지개 활짝 펴보는 일이 나쁘지만은 않겠다. 길 놓치는 또 한 풍경인들 어떠랴. 볕 다사롭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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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는 신체 -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그 위태로움에 대하여
우치다 타츠루 지음, 오오쿠사 미노루.현병호 옮김 / 민들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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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꿈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바는.......현실적 바람이 아니라 오히려 꿈을 꾸는 그 자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꿈속에서는 인과관계가 뒤집히고 크다: 작다, 좋다: 나쁘다 같은 상반된 의미가 동일한 말로 말해진다.......시간조차 거꾸로 흐른다. 인간은 이러한 거꾸로 된 세계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는데, 꿈꾸는 일은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와 거꾸로 된 세계를 왕래하는 일 자체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 아닐까.......꿈속에서 인간은 일시적으로 인간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한다.

  .......인간은 혹시 인간 아닌 상태와 인간인 상태를 정기적으로 왕래하는 일을 통해 그때그때 자신을 인간으로 재창조하는 것이 아닐까.(39~40)


 

꿈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아직도 인간은 다 알지 못하고 있지만, 꿈이 단지 일 뿐이지 않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장자 나비 이야기를 호사롭게 인용하지 않더라도 꿈속 현실이 지니는 실재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 문제에 관해 우치다 타츠루가 통찰해낸 진실은 실로 예리하다: 꿈은 현실 욕망의 도구가 아니다. 현실 인간이 꿈 비인간을 넘나들면서 매순간 새로이 스스로를 창조하므로 꿈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에 따르면 꿈은 누락 불가한 커뮤니케이션이다. 꿈꾸는 몸도 꿈 서사도 모두 커뮤니케이션 당사자다. 꿈꾸지 않는 몸과 서사를 현실이라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둘 다 비대칭대칭을 이루는 현실 실재다. 꿈꾸는 동안 심지어 변온동물”(37)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이 극명한 가로지름을 통해 인간은 하루 한 번씩 스스로를 거듭해서 창조하는 동사존재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아니다. 인간이기 위한 도상에서 꿈 장인 잠은 존재론적 본성을 지닌다. 꿈이 잠 못 자게 하는 자극을 진정시켜서 계속 자도록 하는 이야기 기능”(37)을 지니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충분한 잠, 풍부한 꿈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

 

이 통찰을 더 핍진히 밀고 가본다. 꿈꾸는 동안 인간 아닌 상태가 되는 일은 변온동물 정도에서 멈출까? 나는 더 이전 상태로 소급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존스홉킨스의대 병원에서 환각버섯을 사용해 우울장애 치료를 했다는 사실은 이미 뉴스가 아니다. 버섯은 곰팡이다. 곰팡이 본성을 지닌 물질이 인간 뇌에 작용해 인간 의식에 고착된 편향인 정신장애를 풀어내 치료한다면 그 과정에 있는 뇌와 뇌가 변화시키는 생명 상태가 곰팡이하고 아무런 관련이 없을 수 없다. 가장 근본적인 곰팡이 네트워킹 본성과 상응함으로써만 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각물질이 이끌어내는 환각 상태와 본성이 같은 인간 꿈은 생명역사를 관통하는 인간 이전 미소생명 상태 서사를 풀어낸다. 충분한 잠, 풍부한 꿈은 인간을 인간 너머 아득한 미소생명과 커뮤니케이션하게 한다. 그 커뮤니케이션은 공생을 환기하고 기리는 제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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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는 신체 -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그 위태로움에 대하여
우치다 타츠루 지음, 오오쿠사 미노루.현병호 옮김 / 민들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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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이 내포된 말을 적절하게 알아들음으로써.......카오스에서 코스모스가 솟아오르는 순간을 만난다.......커뮤니케이션은 일의적이고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이해했다고 안심하는 사람보다 오해하지 않았을까 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이 커뮤니케이션에서 더 본질적인 경험을 한다.(34~36)


 

모순이 내포된 말을 적절하게 알아듣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적절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맹렬히 싸워 정밀히 녹여낸 모순이 불안으로 들끓는 카오스와 맞닿는 찰나 신음되어 일어난다신음 소리는 일의적이고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을수록 커진다큰 신음 소리만큼 커뮤니케이션 본성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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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는 신체 -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그 위태로움에 대하여
우치다 타츠루 지음, 오오쿠사 미노루.현병호 옮김 / 민들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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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미한 메시지를 주고받으려고 인간이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한다는 생각은 피상적이다. 유의미한 메시지를 주고받는다는 구실로 언어와 주체가 태어나는 영광스런 순간, 즉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그 순간을 축하하는 일이 커뮤니케이션 근원 실재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34)



커뮤니케이션하는 매순간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한다. 엄밀히 말해서 매순간 스스로를 창조하려면 인간은 커뮤니케이션해야만 한다. 더없이 엄밀히 말해서 인간이 커뮤니케이션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이 인간. 주어가 동사 앞자리를 점령한 문장은 생명본성에 대한 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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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학에서는 contact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메시지를 교류메시지라 부른다. 전형적 교류메시지는 전화를 걸 때 말하는 여보세요. “여보세요이 회선은 통하고 있나요?”를 뜻한다. 그에 대한 여보세요라는 응답은 “contact가 이루어지고 있어요!”를 뜻한다. contact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상대방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일이다.

  교류커뮤니케이션 목적은 통신회선 설치, 즉 커뮤니케이션의 커뮤니케이션 혹은 닫혀 있는 커뮤니케이션 개방이다. 그런 관지에서 여보세요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원초적인 메타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인류는 여보세요라는 부름과 여보세요라는 응답으로 최초 언어활동을 시작했으리라.

  커뮤니케이션은 말이 지닌 의미가 아니라 말이 발신자에게서 수신자에게로 보내질 때 수신자가 느끼는 반대급부 의무감에서 동기 부여된다(클로드 레비스트로스).......태고 어느 날, 어떤 인간이 어떤 음성을 발했다. 그 음성을 들은 누군가가 그것을 증여라고 느꼈다. 경제인류학에 따르면 증여를 받은 자는 증여로 말미암아 생긴 불균형을 오직 그에 대한 가치 보완, 즉 응답하고 답례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다.(31~32)

 


인간은 여보세요 인간homo hello이다. 소통과 교환은 결여를 상보하는 상호의존적 존재로서 인간이 일으키는 본성사건이다. 증여라는 표현이 경제인류학 문맥을 반영한 전문적’ ‘기술적용어인지는 모르지만 대뜸 인간본성에 가 닿을 수 있는 촉감 어린 말은 아니다. 정확한 상응어로 선사膳賜라는 좋은 말이 있는데 요즘은 흔히 쓰지 않으니 선물정도로 하면 훨씬 더 살갗에 와 닿는다.

 

인간은 선물 인간이다. 선물 주고받기는 여보세요에서 시작됐다. 여보세요가 선물이 되는 조건은 말이 지닌 의미가 아니라여보세요로 말미암아 생긴 불균형을 오직 그에 대한 가치 보완, 즉 응답하고 답례함으로써 해소할 수있는 다른 여보세요 발화 자체다. 가치 보완, 즉 응답과 답례는 화폐적 득리得利가 아니다. 존재론적 결여를 해소해 비대칭대칭 구조사건을 온전하게 만드는 득리得理.

 

비대칭대칭이므로 여보세요는 같은 말이고[일치 또는 연속] 다른 징후다[모순 또는 단절]. 이 역설이 뭉그러지는 과정은 개인적 불편에서 질병으로, 질병에서 사회악으로 번져간다. 숙의치료를 하는 의자로서, 글을 쓰는 작가로서, 능동 정치행위를 하는 시민으로서 나는 역설이 뭉그러지는 모든 과정에 세밀히 관여한다. 삼일절, 매판 아이콘인 대통령후보가 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기막힌 풍경이 연출되었다. 참담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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