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엽(사진가)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베네수엘라 전쟁을 석유 전쟁이라고 부르는 순간, 이미 절반은 틀린다. 문제는 석유의 양이 아니라 성질이다. 베네수엘라의 석유는 초중질유다. 그것은 땅에서 퍼 올린 순간 상품이 되지 않는다. 희석제, 전력, 업그레이더, 항만, 금융과 보험까지 하나의 시스템이 동시에 작동해야 비로소 ‘석유’라는 이름을 얻는다. 다시 말해 베네수엘라의 석유는 유전이 아니라 국가 전체가 공장인 자원이다.

이 지점에서 미국의 행동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만약 석유를 얻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가장 먼저 보호되었어야 할 것은 유전이 아니라 노동자와 기술자, 그리고 국영 석유회사의 연속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정치적 불안정, 제재, 군사적 긴장은 초중질유에 치명적인 조건들이다. 조금만 흔들려도 생산은 멈추고, 복구에는 수년이 걸린다. 이 석유는 탈취에는 부적합하지만, 봉인에는 이상적이다.

그래서 이번 전쟁은 ‘가져가는 전쟁’이 아니라 ‘못 쓰게 만드는 전쟁’에 가깝다. 미국이 쓰지 못해도 상관없다. 중국이 쓰지 못하면 충분하다. 초중질유는 내전과 불안정, 계약 불확실성이 겹치는 순간 자동으로 시장에서 퇴출된다. 총을 쏘지 않아도, 유전은 침묵한다. 이 침묵이 바로 전략이 된다.

트럼프식 정치에서 장기 재건은 필요 없다. 정교한 계획도 요구되지 않는다. 불안정이 유지되는 한, 석유는 땅속에 묶인다. 베네수엘라는 그래서 점령의 대상이 아니라 봉인의 대상이 된다. 이 전쟁의 목적지는 카라카스가 아니라, 석유가 다시는 흐르지 못하는 상태 그 자체다.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여기 있다. 석유를 가졌기 때문에 공격받는 것이 아니라, 석유의 성질 때문에 버려질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점. 초중질유라는 물성이 전쟁의 형태를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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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일이송(영화감독)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새해 첫 뻘글은 어떤 지도에서 시작해보자. 저 보라색 형체는 무엇일까? 범고래일까? 아니면 상어? 아니다. 초호화 요트들이다. 새해맞이 기념으로 카리브해의 작은 섬에 수백 대의 슈퍼요트들이 집결했다. 억만장자들이 그 주인공.
카리브해의 세인트 바츠(St. Barth)라는 작은 섬이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전 구글 CEO, 디즈니 상속녀, 마이클 조던 등 미국에서 중동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억만장자들이 새해 파티를 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부지런히 이곳에 모여 들었다.
300대가 넘는 초호화 요트들. 며칠 전부터 지켜봤는데, 각자 부를 과시하느라 가관이다. 어떤 요트는 헬기 착륙장이 있고 또 어떤 초호화 요트는 각종 편의 시설을 장착하고 있다.
이 섬은 '억만장자들의 섬'이라고도 부른다. 억만장자들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매년 나비처럼 이곳에 날아들어 그들만의 춤을 춘다. 왜 몰려들까?
이곳엔 최고급 휴양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특급 스파 서비스, 세계 각국의 요리를 제공하는 고급 레스토랑, 부유층의 쇼핑몰과 부티크, 심지어 개인 해변까지. 확실히 그들만의 낙원이다. 이곳에 모여 사교 파티를 열고, 투자 정보를 교환하며, 또 각종의 세금 혜택 속에서 과소비를 하며 흥청망청 돈을 뿌려대는 것이다.
전세계 인민의 대다수가 저임금과 고혈의 세금에 허덕이면서도 새해를 맞아 서로에게 안부를 전하고 따뜻한 온기를 나눌 때, 온갖 공적 보조금을 배불리 흡입하며 부를 축적했던 저들은 세상의 눈을 피해 저 아름답고 따뜻한 섬으로 디젤 연료를 질질 흘려가며 자기들끼리 모여 돈을 활활 불태운다.
하필 왜 카리브해일까? 역사엔 우연이 거의 없다. 16세기 초부터 유럽인들은 거의 멸종시키다시피한 카리브해 선주민들을 대신해 서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끌고 가 저기 카리브해에 거대한 설탕 플랜테이션을 구축했다. 쿠바에서 자메이카에 이르기까지 서인도 지역의 거의 모든 섬들에 설탕 플랜테이션이 형성됐다. 검은 노동으로 생산한 하얀 설탕, 그것이 상업자본주의의 시작이었고 자본주의의 연료다.
식민 시대와 설탕 플랜테이션 시대가 끝난 후 카리브해는 오도가도 못하는 흑인 후예들과 빈곤만이 덩그라니 남았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세계의 억만장자들이 카리브해의 작은 섬들을 겨냥해 휴양지로 사유화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사유화, 그것이 더 용이한 곳이기 때문이다. 수백년 동안 저곳에서 노동력과 자원을 흡혈하더니 이제는 자연 풍경을 빨아 들인다.
오늘날 억만장자들은 사막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작은 섬에 이르기까지 그들만의 초호화 낙원과 비밀 벙커를 부지런히 구축하고 있다. 초호화 요트들이 억만장자들에게 불티나게 판매되고 있으며, 최고급 휴양지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 속에서 허덕이는 동안, 이들의 흥청망청은 나날이 화려해지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이 서로 새해 복을 나누고 각자의 소박한 결심을 써내려가는 동안, 저 억만장자들은 저런 방식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이것이 불평등한 세계의 외설이다. 세계의 부를 한줌의 소수가 독점하는 지독한 불평등이 펼쳐질 때 나타나는 필연의 풍경이다.
이 와중에도 부유세 강화하자 불평등을 줄이자는 말들에 각다귀처럼 달라들어 부자가 될 자유를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 부자들의 발바닥을 못 핥아서 환장하는 사람들, 새해에는 부디 정신줄을 부여 잡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사람은 나와 이웃들, 즉 우리들이다.
새해에는 불평등에 대한 분노의 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부자들 말고 우리 서로를 염려하는 말들이 더 많아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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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일이송(영화감독)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일론 머스크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모든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다'라고 말했고, 빌 게이츠는 '대부분의 일에 인간이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간단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일자리와 소득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가족을 부양하고, 의료 서비스를 받고, 집세를 낼 수 있을까요?"
며칠 전 버니 샌더스가 언론과 한 인터뷰 내용이다. 180만 명 이상이 공유하며 화제가 됐다. 버니 샌더스가 AI에 대한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높이기 시작한 건 11월 중순경. 이후 폭포수처럼 계속 비판의 말을 쏟아내는 중이다. 아니, 이 양반이 왜 AI에 대한 말이 없지 싶었는데 기다렸다는 듯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저는 규제 없는 인공지능 개발 및 배포 경쟁을 부추기는 데이터 센터 건설에 대한 일시 중단을 추진할 것입니다. 이러한 중단 조치는 민주주의가 기술적 발전을 따라잡을 기회를 제공하고, 또 기술 혜택이 상위 1%만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돌아가도록 보장하는 길입니다."
그동안 집요하게 과두제를 비판해 온 버니 샌더스가 AI의 기술적 성취를 독점하는 빅테크 자본을 겨냥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일 것이다. 문제는 이 노령의 정치인을 제외하고 미국에서도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을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의 목소리를 잠깐 들어보자.
"트럼프 당선 이후 마크 주커버그는 250억 달러, 제프 베조스는 360억 달러, 래리 엘리슨은 780억 달러, 일론 머스크는 1870억 달러 더 부유해졌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한편 미국인의 60%는 빠뜻하게 살아가고 있고, 식비와 주거비가 치솟고 있으며, 심지어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없애고 있습니다."
"향후 2년 안에 AI 데이터 센터는 전기 요금 폭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약 4천억 킬로미터 이상을 자동차로 주행하는 것과 맞먹는 수준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지구에서 태양까지 1,600번 왕복하는 것과 같은 양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AI 데이터 센터 건설을 일시적으로 중단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좋은지 나쁜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인공지능을 통제하고 누가 그로부터 이득을 얻는가의 문제입니다."
"트럼프는 인공지능 규제를 완화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려 합니다.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는 소수의 재벌들을 더욱 부유하게 만드는 반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일자리와 소득을 잃게 할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우리 모두의 삶을 개선해야지, 소수의 억만장자들만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현재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이 인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설계된 것인지, 아니면 민주주의와 사생활을 훼손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을 더욱 부유하고 강력하게 만들 것인지 여부입니다."
"거대 기술 기업의 과두 재벌들은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후보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수억 달러를 쏟아부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민연합(Citizens United) 판결을 뒤집고 선거에 공적 자금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억만장자들이 선거를 매수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AI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적 일에 함께 참여하는 게 인간 본성이라는) 교황 레오의 말씀이 옳습니다. "인공지능 개발이 진정으로 공익에 기여하고, 소수의 부와 권력 축적에만 이용되지 않도록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기술의 혜택이 부유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돌아가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버니 샌더스의 말은 경청할 가치가 넘친다. 무작정 AI를 거부하는 게 아니다. 그 기술이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소수의 부자가 아니라 모두에게 이로운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며, 또 그러기 위해서 민주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에서도 이런 비판적 성찰과 지성이 더 많아졌으면 싶다. 일자리 걱정을 한다는 노동조합이 성명서를 AI로 대리 작성하고, 환경을 걱정한다는 환경단체가 성명서를 AI로 작성하는 무비판적인 관성이 얼마나 문제적인지도 함께 살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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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백반집이 오늘 쉬는 탓으로 거리를 헤매며(!) 저녁 먹을 음식점을 찾는다. 큰길로 나와 전에 몇 번 갔던 생선 음식점이 기억나 들어간다. 혼자임을 확인하더니 오늘은 안 된다고 자른다. “전부 예약석입니다.” 나는 하릴없이 돌아선다. 다시 거리로 나오며 생각해 본다. 일인 테이블 모두가 예약돼 있다고? 뭔가 이상하다. 곡절 있거니 하지만 거절당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한참 더 걸어 오리·닭 음식점 앞에 선다. 잠시 망설인다. 이 집도 여러 사람 함께 먹는 요리 중심이라 아까처럼 또 되돌아 나올 가능성을 예상해서다. 에이, 뭐 어때, 하고 들어간다. 대신 먼저 묻는다. “혼자 먹을 수 있습니까?” 나를 맞은 사람은 흔쾌히 그렇다고 대답한다. 다행이다. 삼계탕과 소주를 주문한다. 사부자기 외투를 벗어 옆에 놓는다. 소주부터 한 잔 따라 마신다.

 

오랜만에 먹어서기도 하려니와 삼계탕이 유난히 맛있는 며리가 기분 탓이기도 하다 여긴다. 다 먹고 마시고 나올 때까지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이다. 계산대 앞에 서자 주인장 여자 사람이 웃으면서 연삭삭하게 말한다. “들어오실 때 묻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비롯할까? 단지 영업 기술 문제로 치부하기엔 무언가 더 깊거나 너른 이해 방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가볍게 들어왔다가 가장 허망하게 나가는 직업으로 여겨지지만, 요식업은 결코 쉽게 생각해선 안 되는 직업이다. 아픈 사람 고치는 의료업보다 배고픈 사람 먹이는 요식업이 이치로 따지자면 훨씬 더 섬세한 판단과 성찰을 요구하는 직업이다. 음식 자체는 물론 그걸 먹으러 들어오는 사람을 허투루 여기는 짓은 생명 모독 행위다. 음식도 숭고하고 식사도 존엄하니 말이다.

 

집으로 향하며 나를 되돌아본다. 나는 어떤 의료인인가? 전부 예약석이라며 혼자 온 손님을 내보내는 집주인 같은가, 혼자 먹을 수 있는지 묻지 않아도 되는 집주인 같은가? 내 가난이 혹시 혼자 온 손님을 푸대접하는 집주인 같아서 빚어진 결과는 아닌가? 나 자신에게 부리는 이 냉갈령 탓에 술이 깨버리기 전, 얼른 씻고 잠자리에 든다. 푹 자고 일어나면 답이 머리맡에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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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집중 촛불이라 오후 3시부터 420분까지 집회하고 행진할 예정이라 한다. 한의원 접수 마감이 3시니까 아무래도 집회 참석은 어렵겠다. 행진이나 끝까지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서둘러 떠나 최단 경로를 거쳐서 가니 다행히 집회 마무리 부분이 진행되고 있다. 잠시 후 행진 선두가 출발하고 바로 뒤 대열에 합류한다. 서초대로를 따라 교대역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내게 이 길은 익숙하다. 많은 촛불집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지만 20년 전 교대역 근처에 한의원 처음 열어서 숱하게 지나다닌 길이다. 아직도 한의원, 음식점서껀 기억에 남은 여러 점포 간판이 그대로 있음을 확인하며 씁쓸해한다. 이명박 정권 때 한의원 털리며 당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모질고 아픈 시간이었다. 여태 그 후유증에서 온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징하다.

 

돌이켜보면 슬기롭지도 거쿨지지도 못했던 나만 아니라 좌뜨고 우접은 숱한 사람들이 골수 부역 권력이 휘두른 칼에 쓰러졌다. 박정희와 그 졸개들은 그나마 정치범으로 묶어 감옥에 보냈지만, 이명박은 잡범으로 몰아 삶 터전을 뭉개버렸다. “영혼 자체가 악령화한 인간 사회에서 가장 비인간적인”(임헌영) 친일파 아이콘 그가 아직도 활보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참담 무비다.

 

한의원이 있던 건물 앞을 지나간다. 언제 또 이 서초대로 차선 걸어서 여길 지나랴 싶어 사진으로 남긴다. 폐부에서 찌르르 슬픔을 전해온다. 강남역 네거리를 왼쪽으로 돌아 강남대로 위에 선다. 이어 신논현역 방향으로 나아간다. 흥청거리는 이 부역 도심 번화가 한가운데를 자주민주주의 외치며 지나가자니 모순과 역설 감각이 뒤엉키다 휘황한 불빛 아래서 부서진다. 배고프다.

 

뭘 먹지, 마음 쓰다가 문득 몸이 여길 떠나라고 하는 말을 듣는다. 그렇구나! 내가 여길 먹으러 온 게 아니다. 아니. 여긴 당최 내가 뭐 먹을 곳이 아니다. 나는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간다. 몸도 마음도 열어놓을 수 있는 음식점을 기억해 내고 그리로 간다. 얼큰한 두부두루치기와 따끈한 굴국을 안주로 소주를 마신다. 최순실 25, 김명신 50, 합계 75번째 광장이 이렇게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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