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백반집이 오늘 쉬는 탓으로 거리를 헤매며(!) 저녁 먹을 음식점을 찾는다. 큰길로 나와 전에 몇 번 갔던 생선 음식점이 기억나 들어간다. 혼자임을 확인하더니 오늘은 안 된다고 자른다. “전부 예약석입니다.” 나는 하릴없이 돌아선다. 다시 거리로 나오며 생각해 본다. 일인 테이블 모두가 예약돼 있다고? 뭔가 이상하다. 곡절 있거니 하지만 거절당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한참 더 걸어 오리·닭 음식점 앞에 선다. 잠시 망설인다. 이 집도 여러 사람 함께 먹는 요리 중심이라 아까처럼 또 되돌아 나올 가능성을 예상해서다. 에이, 뭐 어때, 하고 들어간다. 대신 먼저 묻는다. “혼자 먹을 수 있습니까?” 나를 맞은 사람은 흔쾌히 그렇다고 대답한다. 다행이다. 삼계탕과 소주를 주문한다. 사부자기 외투를 벗어 옆에 놓는다. 소주부터 한 잔 따라 마신다.

 

오랜만에 먹어서기도 하려니와 삼계탕이 유난히 맛있는 며리가 기분 탓이기도 하다 여긴다. 다 먹고 마시고 나올 때까지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이다. 계산대 앞에 서자 주인장 여자 사람이 웃으면서 연삭삭하게 말한다. “들어오실 때 묻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비롯할까? 단지 영업 기술 문제로 치부하기엔 무언가 더 깊거나 너른 이해 방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가볍게 들어왔다가 가장 허망하게 나가는 직업으로 여겨지지만, 요식업은 결코 쉽게 생각해선 안 되는 직업이다. 아픈 사람 고치는 의료업보다 배고픈 사람 먹이는 요식업이 이치로 따지자면 훨씬 더 섬세한 판단과 성찰을 요구하는 직업이다. 음식 자체는 물론 그걸 먹으러 들어오는 사람을 허투루 여기는 짓은 생명 모독 행위다. 음식도 숭고하고 식사도 존엄하니 말이다.

 

집으로 향하며 나를 되돌아본다. 나는 어떤 의료인인가? 전부 예약석이라며 혼자 온 손님을 내보내는 집주인 같은가, 혼자 먹을 수 있는지 묻지 않아도 되는 집주인 같은가? 내 가난이 혹시 혼자 온 손님을 푸대접하는 집주인 같아서 빚어진 결과는 아닌가? 나 자신에게 부리는 이 냉갈령 탓에 술이 깨버리기 전, 얼른 씻고 잠자리에 든다. 푹 자고 일어나면 답이 머리맡에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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