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일이송(영화감독)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새해 첫 뻘글은 어떤 지도에서 시작해보자. 저 보라색 형체는 무엇일까? 범고래일까? 아니면 상어? 아니다. 초호화 요트들이다. 새해맞이 기념으로 카리브해의 작은 섬에 수백 대의 슈퍼요트들이 집결했다. 억만장자들이 그 주인공.
카리브해의 세인트 바츠(St. Barth)라는 작은 섬이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전 구글 CEO, 디즈니 상속녀, 마이클 조던 등 미국에서 중동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억만장자들이 새해 파티를 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부지런히 이곳에 모여 들었다. 300대가 넘는 초호화 요트들. 며칠 전부터 지켜봤는데, 각자 부를 과시하느라 가관이다. 어떤 요트는 헬기 착륙장이 있고 또 어떤 초호화 요트는 각종 편의 시설을 장착하고 있다.
이 섬은 '억만장자들의 섬'이라고도 부른다. 억만장자들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매년 나비처럼 이곳에 날아들어 그들만의 춤을 춘다. 왜 몰려들까?
이곳엔 최고급 휴양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특급 스파 서비스, 세계 각국의 요리를 제공하는 고급 레스토랑, 부유층의 쇼핑몰과 부티크, 심지어 개인 해변까지. 확실히 그들만의 낙원이다. 이곳에 모여 사교 파티를 열고, 투자 정보를 교환하며, 또 각종의 세금 혜택 속에서 과소비를 하며 흥청망청 돈을 뿌려대는 것이다.
전세계 인민의 대다수가 저임금과 고혈의 세금에 허덕이면서도 새해를 맞아 서로에게 안부를 전하고 따뜻한 온기를 나눌 때, 온갖 공적 보조금을 배불리 흡입하며 부를 축적했던 저들은 세상의 눈을 피해 저 아름답고 따뜻한 섬으로 디젤 연료를 질질 흘려가며 자기들끼리 모여 돈을 활활 불태운다.
하필 왜 카리브해일까? 역사엔 우연이 거의 없다. 16세기 초부터 유럽인들은 거의 멸종시키다시피한 카리브해 선주민들을 대신해 서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끌고 가 저기 카리브해에 거대한 설탕 플랜테이션을 구축했다. 쿠바에서 자메이카에 이르기까지 서인도 지역의 거의 모든 섬들에 설탕 플랜테이션이 형성됐다. 검은 노동으로 생산한 하얀 설탕, 그것이 상업자본주의의 시작이었고 자본주의의 연료다.
식민 시대와 설탕 플랜테이션 시대가 끝난 후 카리브해는 오도가도 못하는 흑인 후예들과 빈곤만이 덩그라니 남았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세계의 억만장자들이 카리브해의 작은 섬들을 겨냥해 휴양지로 사유화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사유화, 그것이 더 용이한 곳이기 때문이다. 수백년 동안 저곳에서 노동력과 자원을 흡혈하더니 이제는 자연 풍경을 빨아 들인다.
오늘날 억만장자들은 사막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작은 섬에 이르기까지 그들만의 초호화 낙원과 비밀 벙커를 부지런히 구축하고 있다. 초호화 요트들이 억만장자들에게 불티나게 판매되고 있으며, 최고급 휴양지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 속에서 허덕이는 동안, 이들의 흥청망청은 나날이 화려해지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이 서로 새해 복을 나누고 각자의 소박한 결심을 써내려가는 동안, 저 억만장자들은 저런 방식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이것이 불평등한 세계의 외설이다. 세계의 부를 한줌의 소수가 독점하는 지독한 불평등이 펼쳐질 때 나타나는 필연의 풍경이다.
이 와중에도 부유세 강화하자 불평등을 줄이자는 말들에 각다귀처럼 달라들어 부자가 될 자유를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 부자들의 발바닥을 못 핥아서 환장하는 사람들, 새해에는 부디 정신줄을 부여 잡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사람은 나와 이웃들, 즉 우리들이다.
새해에는 불평등에 대한 분노의 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부자들 말고 우리 서로를 염려하는 말들이 더 많아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