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집중 촛불이라 오후 3시부터 4시 20분까지 집회하고 행진할 예정이라 한다. 한의원 접수 마감이 3시니까 아무래도 집회 참석은 어렵겠다. 행진이나 끝까지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서둘러 떠나 최단 경로를 거쳐서 가니 다행히 집회 마무리 부분이 진행되고 있다. 잠시 후 행진 선두가 출발하고 바로 뒤 대열에 합류한다. 서초대로를 따라 교대역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내게 이 길은 익숙하다. 많은 촛불집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지만 20년 전 교대역 근처에 한의원 처음 열어서 숱하게 지나다닌 길이다. 아직도 한의원, 음식점서껀 기억에 남은 여러 점포 간판이 그대로 있음을 확인하며 씁쓸해한다. 이명박 정권 때 한의원 털리며 당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모질고 아픈 시간이었다. 여태 그 후유증에서 온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징하다.
돌이켜보면 슬기롭지도 거쿨지지도 못했던 나만 아니라 좌뜨고 우접은 숱한 사람들이 골수 부역 권력이 휘두른 칼에 쓰러졌다. 박정희와 그 졸개들은 그나마 정치범으로 묶어 감옥에 보냈지만, 이명박은 잡범으로 몰아 삶 터전을 뭉개버렸다. “영혼 자체가 악령화한 인간 사회에서 가장 비인간적인”(임헌영) 친일파 아이콘 그가 아직도 활보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참담 무비다.
한의원이 있던 건물 앞을 지나간다. 언제 또 이 서초대로 차선 걸어서 여길 지나랴 싶어 사진으로 남긴다. 폐부에서 찌르르 슬픔을 전해온다. 강남역 네거리를 왼쪽으로 돌아 강남대로 위에 선다. 이어 신논현역 방향으로 나아간다. 흥청거리는 이 부역 도심 번화가 한가운데를 자주민주주의 외치며 지나가자니 모순과 역설 감각이 뒤엉키다 휘황한 불빛 아래서 부서진다. 배고프다.
뭘 먹지, 마음 쓰다가 문득 몸이 여길 떠나라고 하는 말을 듣는다. 그렇구나! 내가 여길 먹으러 온 게 아니다. 아니. 여긴 당최 내가 뭐 먹을 곳이 아니다. 나는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간다. 몸도 마음도 열어놓을 수 있는 음식점을 기억해 내고 그리로 간다. 얼큰한 두부두루치기와 따끈한 굴국을 안주로 소주를 마신다. 최순실 25번, 김명신 50번, 합계 75번째 광장이 이렇게 저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