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치료를 하는 사람이라 정신이 바깥으로 드러내는 신체 증후를 소미 섬세하게 포착할 수 있다. 지하철 객차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일거수일투족에는 그런 증후가 넘실거린다. 거의 대부분 비슷한 옷을 입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지만 정신장애(에 근접한) 증후는 가차 없이 내 감각을 파고든다.

 

의학 공부 이전에는 그런 증후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여느 사람처럼 혐오하거나 비난했다. ·풀 공부 이전에는 예리하게 포착한 사실에 머무를 뿐이었다. ·, 마침내 팡이 생명이 지닌 네트워킹 본성을 깨달은 뒤부터는 기도한다. 기도란 그 증후 나타내는 사람이 내가 모르는 어떤 인연을 통해서 건강한 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네트워킹 온 생명에게 소식 전하고, 도움 청하는 발화행동이다. 상담하는 임상의임을 밝히고 정신에 문제 있으니 치료 받으시라 직접 다가가 권하는 일이 다시없이 몰상식한 한, 필경 이 기도 말고 최선은 달리 없다.

 

낯선 이를 위한 기도. ·, 마침내 팡이 공부가 내게 가져다준 실팍한 변화 가운데 하나다. 이 변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연쇄반응을 일으킬까? 가방 두 개에다 하얀 면장갑 수십 켤레를 넣고 다니며 수시로 갈아 끼던 60대 여성은 평안 세계로 접근할 수 있을까? 커다란 백 팩을 메고 조그만 틈이라도 보이면 헤집고 들어가 남을 밀어내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던 70대 남성은 평화 세계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기도하는 내가 시나브로 평안해지고 평화로워지는 사건과 짝을 이루는 사건이 어디선가 일어나리라는 설렘은 분명하게 있다.

 

종교인들은 기도 응답을 말하거니와 나는 기도 순환을 말한다. 순환은 호혜적인 선물 네트워킹이다. 네트워킹에서 호혜 당사자는 직접성과 간접성 사이를 가로지른다. 무궁무진한 결과 겹으로 얽히고설킨다. 얽히고설킨 꿈을 따라간다. 꿈은 길을 알고 있으므로. Qui de l'arbre ou du soleil réchauffe l'autre?



 _Maria Riv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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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높이 떠 있는 지성소가 아니다 

하늘은

광활한 허공이 아니다

하늘은

뭇 별들의 틈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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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년 들어 통 꿈을 꾸(거나 기억하)지 못했다. 202211일 새벽, 꿈을 꾸었다. 이 꿈은 선명하기 그지없었다. 지금까지도 시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에 그대로 재현되곤 한다.

 

샤워나 배변 조건이 매우 열악한 풍경으로 그려진 힘든 여행을 끝내고 마침내 돌아가는 길이다. 집 가까이 이르러 문득 보니 하늘에 영롱한 무지개가 떠 있다. 얼른 사진기를 꺼내든다. 초점을 맞추는 찰나 그 무지개가 쌍무지개로 바뀐다. 놀라면서 셔터를 누른다. 곧이어 차르르필름 되감기는 소리가 들린다. 손으로 전해지는 진동감각도 워낙 생생해 잠시 거기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 와 닿는 감각과 함께 꿈에서 깬다. 즉시 일어나 불을 켠다. 10년 넘게 한의원에 두고 쓰다가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20211231일 저녁 처음 집으로 들고 온 일기장을 편다. 생전 처음 꿈 일기를 쓴다. 03:32.

 

즉각 알레고리 해석을 마쳤으나 쌍무지개가 탐색 이미지로 걸려 있지 않아서 기억지성소에 모셔만 둔다. 이 꿈을 영몽이라 하면 신비주의일까; 개꿈이라 하면 네트워킹 모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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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게 1000번째 침 치료 받은 분께 작은 선물을 드렸다. 지난 10년 동안 단순 근육통에서 심장병까지 거의 모든 문제를 내 침 치료에 맡겨 매우 적은 비용으로 건강 유지했으니 그분께나 내게나 좋은 인연이었음에 틀림없다. 



나와 비슷한 연배 여성인데 심신 모두 꾸민 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분이다. 10년 사이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둘째 손자가 태어나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 가정사를 스스럼 없이 화제에 올렸다. 침 치료하는 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그렇게 나누었다. 그뿐 아니다. 그 분이 김치를 담가 가져오기도 하고 나는 명절 음식을 나눠 보내기도 했다. 마을의사란 본디 이런 풍경을 그려내면서 살아야 한다. 다른 많은 분들과도 그렇게 하지 못해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이런 인연 하나 지었음에 감사한다. 



마침 오늘 12월 29일 탄생화가 꽈리란다. 꽃말은 자연미. 자연스럽게 그 분 모습이 떠오른다. 다시 한 번 오늘을 기려본다. 치료자로서 내 삶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 알지 못한다. 남은 날들도 더 좋은 인연 가꾸기를 꿈꾼다.



 


* 사진 출처/모야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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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29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연미 품은 꽈리 기억하겠습니다 선생님.
환우와 좋은 관계를 맺는 의사야말로 명의가 아닌가 싶어요. 꽈리가 이리 이쁜 줄 몰랐네요. 새해에도 복 많이 짓고 받으시길 바랍니다.

bari_che 2021-12-30 09:54   좋아요 1 | URL
꽈리,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는 친숙하면서도 경이로운 생명체였습니다. 특히 방울토마토처럼 생긴 열매는 부드럽게 만든 뒤 씨를 빼내고 바람 넣어 살짝 깨물면 ‘꽈르르르‘ 소리를 내죠. 자못 신이 나서 입에 담고 누나들 뒤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이젠 그나마 모습조차 보기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일으키는 모든 변화에 한껏 적응하며 살아가지만 시간이 흘러도 유지되는 인연 덕에 또 살아갈 힘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감사할 이유가 되지요. 이렇게 찾아오고 축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