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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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증, 사회가 병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우울증은 개인, 그리고 개인적 인간관계의 문제가 아닙니다.·······우울증은 사회가 병든 것입니다.

  의학은, 그래서 사회학입니다. 사회가 건강하지 않을 때 어떤 개인이 건강하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함정을 안고 있는 말입니다. 사회적 소외와 생물학적 소외는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저소득층의 우울증 발병률이 현저히 높다는 통계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2008년 초 어느 일간지에 실린 기사입니다.


우울장애를 1년 동안 한 차례라도 경험하는 비율이 5년 새 껑충 뛰었다. 우울장애는 특히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쉽게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나 ‘사회 양극화’에 따른 정신건강 문제가 우려된다.

·······연구팀은 “지난 5년 간 40~50대 중년 남성과 20대 남녀에게서 주요우울장애가 증가했다”며 “무직, 저소득층, 이혼·별거·사별 등을 경험한 이들에게서 위험이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2001년과 비교했을 때는 저소득층과 남성의 유병률 증가가 뚜렷했다. 연구팀은 200만원 미만의 수입을 가진 계층에서 우울증의 위험률이 다른 소득 계층보다 높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 땅에서 건강하다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울증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이 사회적 관점을 확립해야 하는 연유가 있습니다.·······우울증과 그 치료에 대한 올바른 사회윤리를 바탕으로 국민보건의료체계는 처음부터 판을 다시 짜야 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더 치명적으로 노출되는 일을 막아야 함은 물론 가난하기 때문에 치료에서 소외되는 일도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97-99쪽)


이제는 점입가경이란 말도 더는 쓸 수 없는 언어도단 지경에 다다른 지 오래건만 여전히 통치의 정점에서는 매번 자체 기록을 갱신하는 뉴스가 터져 나오고 있어 실로 탄식무인지경의 아사리 판인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최고 헌법기관이 공식 회의석상에서 책상을 여러 번 내려치며 화를 냈다는 보도가 공식적으로 전해지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대체 나라이기는 한 것일까요? 바로 이런 사이비 국가의 정치경제학적 난맥이 사회 전체를 우울로 몰고 갑니다. 아니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전체가 우울증입니다. 그럼에도 우울증에 대한 최초의 국가적 접근은 매우 기만적이고 음모적입니다. 2월 26일 아침 신문 보도를 그대로 인용해보겠습니다.


정부는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을 포함한 ‘정신건강 종합대책’(2016~2020년)을 확정했다.

정부는 우선 1차 의료기관에서 우울증 등에 대한 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기로 했다. 자살자의 28.1%(2015년 심리부검 결과)가 사망 전에 복통이나 수면곤란 등으로 1차 의료기관을 방문했다는 점에 착안했다. 동네 의원에서도 정신질환이 있는지를 검사하고 진단할 수 있도록 선별검사 도구를 개발할 계획이다. 또 내년부터 전국 224곳의 지역별 정신건강증진센터에 ‘마음건강 주치의’(정신과 전문의)를 배치해 정신질환을 조기에 진단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내년부터 정신과 외래진료의 본인부담률도 30~60%에서 20%로 낮아진다. 질환이 나타나는 초기에 집중치료를 받게 하겠다는 취지다. 또 상담료 수가를 올려서 심층치료를 활성화하도록 하고 비급여 정신요법, 의약품에 대한 보험 적용이 확대된다.

정부는 또 올해 안에 ‘정신질환 차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정신과 진료 기록으로 민간보험 가입에 차별을 받는 등 불합리한 문제를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아울러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 등 중독에 대한 개념을 의학적으로 정립하고 질병코드 신설을 추진하는 한편, 자살 시도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을 추진하는 등 자살예방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한겨레신문)


얼핏 보면 정부가 국민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하여 복지 차원까지 고려한 체계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 같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행간에 숨겨진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대책’은 토건적 발상에 근거를 둔 일종의 ‘사업’입니다.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장애를 유발하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요인에 대한 검토와 예방책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결정적 증거입니다.


동네 의원에서 쉽게 진단 받을 수 있고, 본인 부담률을 낮추는 것이 접근을 쉽게 하려는 대책이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정신장애자를 양산해내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상담료 수가를 올려서 심층치료를 활성화하고 비급여 정신요법, 의약품에 대한 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것도 동일합니다.


그 무엇보다 이 대책의 토건 사업적 성격은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 등 중독에 대한 개념을 의학적으로 정립하고 질병코드 신설을 추진한다는 부분에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그 동안 강박적으로 ‘중독법’ 제정을 추진해온 집권세력이 방향 바꾸어 또 다시 야욕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2014년 이 문제에 관해 제가 쓴 글을 그대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2013년 한 해 동안 우리사회를 달군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중독법안 논쟁이었습니다. 논쟁의 쌍끌이였던 두 법안의 이름은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대표 발의자: 신의진)>(이하 중독법), <인터넷게임중독 치유 지원에 관한 법률안(대표 발의자: 손인춘)>(이하 지원법)입니다.·······


지원법의 핵심은 인터넷게임 관련사업자에게 돈을 걷어 예방·관리 및 치료 경비에 충당하겠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마치 국가에서 치료비용을 부담하는 것처럼 인식시키고 뒤에서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워 인터넷게임 관련사업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려는, 아니 그 돈으로 곳간을 채우려는 모종 이익집단의 수익창출 마케팅과 연결되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이런 프로젝트를 이미 10년 전부터 집요하게 추진해왔습니다. 그들은 인터넷게임 관련사업자의 도덕성을 공격하여 돈을 뜯어내려 합니다. 실제로 중독법 대표발의자인 국회의원이 인터넷게임 관련사업자 대표에게 ‘아이들 중독시켜 번 돈 아니냐.’는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탐욕을 은폐하기 위해 곳간을 채워주기 바라는 상대방을 파렴치한으로 몰아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정신과전문의, 그것도 소아정신과전문의라니....... 그리고 그 배후에 한국중독의학회가 있습니다. 이 법안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집단으로 숙원사업 운운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바로 이런 부류의 의자들이 의학과 의료가 맞닥뜨린 위기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들은 중독과 관련된 각종 기관의 요직과 자금에 욕심을 품고 있습니다. 중독된 아이들 살리려 한다는 명분 뒤에 작동하는 권력과 자본, 그리고 종교 이 법안 통과를 위해 개신교 단체가 적극 가담하고 있습니다. 의 토건적, 경찰적, 수탈적 시스템의 마름 노릇으로 알량한 자리와 돈을 차지하려 드는 치졸한 작태입니다.


더 무서운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중독법 제안 이유서에 보면 현재 치료 대상을 333만 명이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법 제2조는 중독유발 물질에 ‘인터넷게임 등 미디어 콘텐츠’라는 포괄적 규정을 둠으로써 대상을 무한히 확대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SNS, 예컨대 트위터도 언제든 중독유발 물질 규정이 가능합니다. 사실 그들의 주된 의도가 거기를 향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결국 엄청난 숫자의 시민들이 이 법의 관리(!) 대상이 되고 치료를 가장한 일련의 해소 (중독법과 매우 밀접한 관련법인 국가정보화기본법 제30조의 6 제1항에 명시된 용어입니다.)조치 아래 묶여야만 합니다. 가히 빅브라더가 통치하는 세상이라 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실제 치료 문제입니다. 의학치료와 의학외적치료가 총동원될 테지요. 의학외적치료는 필경 상담을 가장한 강제적 ‘정신교육’이 핵심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가령 청소년의 경우, 학교에 전담교사가 배치되는 것입니다(지원법 제22조). 이런 사이비 치료행위보다 더 가공할 치료가 화학약물 투여입니다. 실제 정신과의사들은 시간 대비, 돈 안 되는 상담이나 교육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약물처방을 독점할 것입니다. 실로 막대한 숫자의 환자를 확보한 상태에서 법의 비호까지 받아가며 ‘약장사’를 할 수 있으니 이 어찌 숙원사업이 아니겠습니까.·······(『인문과 한의학, 치료로 만나다』129-134쪽)


끔찍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자살 시도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을 추진하는 등 자살예방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는 대목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자살 시도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로 어떻게 자살을 예방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보다 먼저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의 예민한 반응일까요? 테러방지법을 만들어 국민의 머릿속까지 뒤지겠다는 발상과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정신건강 종합대책이라는 말을 전유함으로써 국민을 대량으로 정신장애자로 만들어 관리·통제하려는 거대한 토건 사업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월호사건에 이은 또 하나의 위장된 제노사이드임에 틀림없습니다. 불의한 정치로 국가적 우울증이라는 토건을 일으키고, 속임수 행정으로 국가적 우울증 예방·치료라는 토건을 다시 일으켜 마무리하는 매판독재분단고착세력의 사업수완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우울증은 잘못된 정치가 만들어낸 정치 병입니다. 정치적 치료가 필수적입니다. 의학은 정치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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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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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증, 인생이 병든 것입니다

  ·······우울증은 한 인간이 외부 환경과 더불어 형성해 온 삶의 과정 자체가 병든 것입니다.·······우울증은 그 어떤 병보다도 실생활의 곡절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차별과 학대, 폭력과 외상trauma, 과도한 부담과 실패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숱한 사건들이 우울증의 뼈와 살입니다.

  이런 경험을 수용하고 해석하는 과정 전반에서 자기 모독과 무의미성에 사로잡힐 때 이를 일러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에서 떼어내 뇌가 어쩌고, 신경이 어쩌고 하는 말은 가소로운 환원주의일 뿐입니다. 설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는 기술자로 고착되고 맙니다. 의사는 환자의 인생 전체의 디자인에 동참하는 존재이지 기계적으로 가위질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시대 의사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95-96쪽)


기조 우울증이라는 말은 공인된 의학용어가 아닙니다. 제가 임상 경험과 통찰에 터하여 세운 개념으로서, 삶의 기조로 자리 잡은 우울증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삶 자체가 우울증 상태인 채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병리가 거의 인격화된 상태라 본인도 주위 사람들도 병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는 더 심각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사는 것이 맞는 줄 알고 있기 때문에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착하다·얌전하다·과묵하다·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따위의 수사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심지어 미덕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기조 우울증에서 삶과 병을 분리해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이 곧 인생을 바꾸는 일입니다.


실제 임상에서 기조 우울증 치료는 전방위·전천후 숙론熟論이 필수불가결합니다. 자기부정의 증후가 도처에 흩뿌려져 있고 일거수일투족이 상실·차별·폭력·실패의 상처로 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게는 처음 본 사람과 인사 나누기부터 크게는 공적 어젠다에 참여하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생사를 함께 깊이 논의해야 합니다. 병을 삶과 분리할 수 없듯, 치유 또한 삶과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울증 치료를 시작한 본인보다 주위 사람, 그러니까 백발백중 원인을 제공했을 가족, 특히 부모가 훨씬 더 많이 다그치듯 묻는 것은 ‘언제 완치되느냐?’입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짓이겨 병을 키워놓고는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왜 이렇게 치료가 되지 않느냐?’고 윽박지릅니다. 이치상 무엇이든 망가뜨리기는 쉬워도 고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그럼에도 돈을 입에 올리며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자기의 탐욕 때문에 자녀를 병들게 한 부모가 치료에조차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현장을 목격할 때마다 인간이 과연 무엇인가를 묻게 됩니다.


제법 오래 전 부모의 폭력으로 삶의 고갱이가 으깨져 기조 우울증 앓는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치료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치료비 문제로 압박을 가하던 부모는 급기야 어느 날 치료비 지원(!)을 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돈을 벌어 치료비를 부담해야 했습니다. 일상생활이 잘 안 되는 사회불안도 겹쳐 있었기에 그의 고충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끝내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런 부모의 지원(?)을 받는 것보다 허덕지덕 벌어서 치료 받으러 오는 그의 모습이 훨씬 더 제 마음을 맑게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때부터 저는 그에게 거의 매번 밥을 샀습니다. 그 식사 자리가 더 깊은 숙론의 자리가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이런 숙론의 자리를 가진 뒤 밤 이슥히 홀로 돌아갈 때 생각하곤 했습니다.


“아픈 사람과 인생을 함께 말하지 않고도 돈을 많이 가져가는 잘나가는 의사醫師이기보다 내 돈을 들여서라도 아픈 사람과 인생을 함께 말하는 가난한 의자醫者로 살아가는 것이 내 천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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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 인간이 병든 것입니다

  우울증은 기분장애가 아닙니다. 우울증은 감정, 지성, 의지 모두가 흔들리는 병입니다. 우울증은 뇌질환이 아닙니다. 우울증은 인간의 심신 전체가 병든 것입니다. 정신-신경-면역-내분비계를 가로지르는 생명 현상 모두가 병든 것입니다.

  ·······우울증은 기분이 ‘꿀꿀한’ 정도가 깊어진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우울증의 핵심은 존재 자체의 심연에 닿아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무無로 여기는 자기 모독이 밑바탕에 깔린 병이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을·······몸과는 무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소화불량, 대소변 이상, 수면장애, 냉증, 두통, 월경부조, 어지럼증, 구토, 전신근육통, 피로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몸 증상이 동반됩니다. 이는 특정 장기의 기질 병변보다 몸 전체를 조절하는 신경-면역-내분비계의 흐름에 문제가 생긴 탓입니다.·······

  마음이란 우리 몸 전체가 삶의 외부 조건과 일으키는 상호작용이므로 마음 따로 몸 따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울증은 생명 현상 전체로서 인간이 병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단도, 치료도 전체적 관점을 흩트리면 안 됩니다. 오직 우울증이 가지는 차별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94-95쪽)


‘우울증’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기분이 언짢아 명랑하지 아니한 심리 상태. 흔히 고민, 무능, 비관, 염세, 허무 관념 따위에 사로잡힌다.’(국립국어원) 또는 ‘마음이 편하지 않고 기(氣)가 몰려 있는 병증. 공연히 불안해하고 슬퍼하거나 고민에 빠지며, 모든 일에 의욕을 잃게 된다.’(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정도입니다. 둘 다 의학적 자문을 거친 것은 아닌 듯합니다. 물론 의학적 자문을 거쳤다 하더라도 별 차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정도의 국어사전적 피상성이 사회의식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기분으로 표면에 드러나는 마음의 여러 증상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 하나를 이름으로 환유 또는 제유하는 인습적 사고에 의학의 권위가 부여되어 사회의식 전반이 비틀린 전형에 해당합니다. 이런 현상은 인간의 언어 자체가 지니는 한계에서 비롯하기도 합니다. 핍진한 표현을 찾으려면 ‘우울증’으로 알려진 질병의 전체상을 펼쳐보아야 합니다.


‘우울증’은 쉽게 기분장애로 포착되지만 마음의 전경을 가로지르는 본령을 지닙니다. 마음은 몸의 마음이니 마음의 전경을 가로지르는 병이면 당연히 몸의 근간도 뒤흔들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병들어 몸에까지 번져서 정신-신경-면역-내분비계 전체가 교란된 자기부정증후군이 아마도 ‘우울증’의 핍진한 이름일 것입니다. 프로작 따위의 프로크루스테스 식 처방으로 자기부정증후군을 치료하지 못할 것임은 췌언의 여지가 없습니다.


자기부정증후군. 이 말 듣는 것만으로 대성통곡한 젊은 여자 사람을 치료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기부정증후군 치료에서 통곡은 landmark가 됩니다. 통곡은 마음과 몸 전체의 난마를 풀어내는 언어 아닌 언어이며 행동 아닌 행동입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벽을 부수는 소통 아닌 소통이며 묘약 아닌 묘약입니다. 여기서 전방위로 번져가는 치유력은 상담, 한약, 침, 수기手技 치료의 시너지를 일구어냅니다. 통짜 병이므로 통짜로 치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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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증, 윤리적 문제가 아닙니다

  ·······우울증은 명백한 질환입니다. 윤리적으로 훈계하여 그 잘못을 교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저와 상담한 모든 우울증 환우에게 이렇게 말해 왔습니다.

  “저와 나눈 이야기를 모두 잊으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한 마디는 반드시 가슴에 품으셔야 합니다. 윤리는 내려놓고 생명을 들어라!”

  ·······우리 사회는 오래토록 가부장적 유교문명을 유지하는 동안 윤리강박증에 빠져버렸습니다. 모든 문제를 윤리적으로 환원하여 생각하는 인습에 젖어버렸습니다.·······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우울증은 윤리적으로 다그칠 일이 결코 아닙니다.(92-93쪽)


저 옛날 사대부들이 앞으로는 강상綱常의 도를 설하고 뒤로는 축첩과 기생놀음에 빠져 지냈던 것처럼 오늘의 권력도 온갖 음란과 협잡을 밀실에 숨긴 채 입만 열면 단호한 윤리를 전유합니다. 윤리를 강조할수록 패륜이 무성한 공공연한 스캔들을 오늘의 권력은 더 이상 거추장스럽게 여기지 않는 듯합니다. 자신만만한 것인지 윤리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놓고 방자한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권력의 정상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대로 저변을 물들입니다. 물든 남성의 손길을 따라 가정으로도 파고듭니다. 성 접대 받고 이권에 개입하는 공무원 아버지가 그 딸의 우울증을 윤리적 훈계로 억압하려 듭니다. 윤리적 잣대를 거꾸로 들이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그가 알 리 없습니다. 그가 대한민국 아버지의 전형임을 누가 부인할 것입니까. 지금 이 시각에도 그런 아버지의 딸들이 우울증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윤리를 붙잡는 것은 종적 우월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음성 되먹임 구조가 작동하지 못하는 진화적 과잉, 이를테면 그 실패를 보전補塡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뿐입니다. 윤리가 지극히 겸허한 당위이며 간절한 요청이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마저도 낡아빠진 유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윤리는 더 이상 탐욕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도리어 탐욕의 앞잡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울증을 윤리로 억압하면 대체 무슨 이득을 취할 수 있을까요? 상식적으로 보면 의학적 치료를 저지함으로써 개인적·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울증을 윤리적 문제로 치부하면 인간 자체를 통제·착취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자 있는 인간으로 낙인찍어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처럼 쉬운 통치술은 다시없습니다. 노예화, 바로 그것입니다.


WHO는 2020년 선진국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질병 제1위, 개도국 이하의 경우 제2위로 우울증을 꼽았습니다. 지금 의료상황이 계속되는 한, 우울증 앓는 사람들은 화학합성약물의 노예 아니면 윤리적 정죄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을 이런 노예로 놓아둔 채 인류가 존속한다면 존속 그 자체가 범죄일 것입니다. 우울증 인식의 일대전환이 화급한 시점입니다. 윤리는 내려놓고 생명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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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증, 개인 탓이 아닙니다

  우울증 상담치료를 하다·······맞닥뜨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사람 우울증 고쳐 놓으면 뭐 하나, 가족도·······친구도·······직장 사람들도 그대로인데… 하는 답답함입니다.·······우울증은 대부분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에서 비롯한 것인데, 달랑 그 사람의 삶의 지향성만 어루만져 보았자 관계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현실에서의 삶의 변화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우울증을 개인 문제로 한정하고, 더군다나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하고 있습니다.·······우울증도 역동적인 생명 현상입니다. 인간 생명이 홀로 존재하는 실체일 수 없는 이치는 우울증에도, 그 치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우울증은 한 개인이 소유한 물건 같은 게 아닙니다. 개인을 비난하는 것으로써 치료에 갈음해서는 안 됩니다.(92쪽)


“모든 규제를 물에 빠뜨린 뒤 살릴 규제만 살려야 한다.”라는 ‘정부 수장’의 발언을 듣고 김진숙은 이렇게 썼습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선원들만 구조되던 장면을 떠올린 게 나뿐이었을까. 소름끼친다. 저 사람은 다 잊었나보다. 아니 애초에 심중에 없었나보다. 마음 한구석 한 떨기라도 남아있다면 결코 뱉을 수 없는 말이다.”


‘정부 수장’의 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만 사실 세월호를 고의로 물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늦어도 한참 늦게 자백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원을 제외한 304명의 시민을 수장하려고 세월호를 고의 침몰시킨 것입니다. 평상시 ‘정부 수장’의 어법을 고려하면 이런 식으로 범주를 건너뛰는 의미심장한 발언은 기이한 진실을 머금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정부 수장’의 발언은 두 가지 속임수로 진실을 은폐하고 그 은폐 때문에 도리어 진실을 드러내는 함정에 빠집니다. 첫째, 얼핏 들으면 살릴 것은 살린다는 의지를 담은 것 같지만 실은 모두를 물에 빠뜨려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의지임을 가리고 있는 어법입니다. 세월호사건에서 보았듯 선원을 살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304명, 특히 250명의 아이들을 죽이는 것이 목표였으니 말입니다. 둘째, 살리지 않는 것은 살리지 않을 만하기 때문이니 책임은 그 살리지 않을 만한 것들에 있다는 적반하장의 논리입니다. 세월호사건에서 죽은 사람들, 특히 아이들은 죽을 만해서 죽었다, 그러니까 죽음의 책임은 아이들 자신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청문회에 나온 해경 관계자는 아이들이 철이 없어서 못나오고 죽었다고 발언했습니다. 이렇게 말장난을 할수록 제 무덤을 판다는 사실을 당사자는 모르나 봅니다.


우울증에 대한 일반적 인식도 이런 사회정치적 맥락 안에 있습니다. 사회가 개인을 우울증으로 몰아넣고도 그것은 개인적 원인에 따라 일어나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는 개인적 질병이니 질병에 걸린 개인이 책임지고 치료해야 한다고 왜곡합니다. 어느 신문사의 조사에 따르면 세월호사건이 청장년 남성들에게 주요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표현이 스트레스일 뿐이지 사회적우울증후군이 분명합니다. 국가가 범죄적 수준의 잘못을 저질러 사회 전반에 우울의 그림자를 깔아놓고도 끊임없이 피해 시민을 각자도생의 논리 속으로 몰아갑니다. 각자도생의 강요는 범죄의 범죄입니다. 한시바삐 이 진실에 열리지 않으면 우리사회는 영영 가망이 없습니다.


우울과 불안, 그리고 강박이 난마처럼 엉킨 청년이 있었습니다. 상담으로 어렵사리 한 고비 넘고 집에 가면 홀랑 뒤집어져 되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를 그렇게 만든 가족이 전혀 변함없는 자세로 그를 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족에게 당부를 거듭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미상불 그 가족에게는 희생제물을 필요로 하는 지성소가 있었을 것입니다. 지성소가 흠숭되는 한 치료는 지난한 문제입니다. 혹시 우리 모두가 가족의 이름으로 이런 종교 하나씩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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