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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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증, 사회가 병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우울증은 개인, 그리고 개인적 인간관계의 문제가 아닙니다.·······우울증은 사회가 병든 것입니다.

  의학은, 그래서 사회학입니다. 사회가 건강하지 않을 때 어떤 개인이 건강하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함정을 안고 있는 말입니다. 사회적 소외와 생물학적 소외는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저소득층의 우울증 발병률이 현저히 높다는 통계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2008년 초 어느 일간지에 실린 기사입니다.


우울장애를 1년 동안 한 차례라도 경험하는 비율이 5년 새 껑충 뛰었다. 우울장애는 특히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쉽게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나 ‘사회 양극화’에 따른 정신건강 문제가 우려된다.

·······연구팀은 “지난 5년 간 40~50대 중년 남성과 20대 남녀에게서 주요우울장애가 증가했다”며 “무직, 저소득층, 이혼·별거·사별 등을 경험한 이들에게서 위험이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2001년과 비교했을 때는 저소득층과 남성의 유병률 증가가 뚜렷했다. 연구팀은 200만원 미만의 수입을 가진 계층에서 우울증의 위험률이 다른 소득 계층보다 높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 땅에서 건강하다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울증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이 사회적 관점을 확립해야 하는 연유가 있습니다.·······우울증과 그 치료에 대한 올바른 사회윤리를 바탕으로 국민보건의료체계는 처음부터 판을 다시 짜야 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더 치명적으로 노출되는 일을 막아야 함은 물론 가난하기 때문에 치료에서 소외되는 일도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97-99쪽)


이제는 점입가경이란 말도 더는 쓸 수 없는 언어도단 지경에 다다른 지 오래건만 여전히 통치의 정점에서는 매번 자체 기록을 갱신하는 뉴스가 터져 나오고 있어 실로 탄식무인지경의 아사리 판인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최고 헌법기관이 공식 회의석상에서 책상을 여러 번 내려치며 화를 냈다는 보도가 공식적으로 전해지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대체 나라이기는 한 것일까요? 바로 이런 사이비 국가의 정치경제학적 난맥이 사회 전체를 우울로 몰고 갑니다. 아니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전체가 우울증입니다. 그럼에도 우울증에 대한 최초의 국가적 접근은 매우 기만적이고 음모적입니다. 2월 26일 아침 신문 보도를 그대로 인용해보겠습니다.


정부는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을 포함한 ‘정신건강 종합대책’(2016~2020년)을 확정했다.

정부는 우선 1차 의료기관에서 우울증 등에 대한 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기로 했다. 자살자의 28.1%(2015년 심리부검 결과)가 사망 전에 복통이나 수면곤란 등으로 1차 의료기관을 방문했다는 점에 착안했다. 동네 의원에서도 정신질환이 있는지를 검사하고 진단할 수 있도록 선별검사 도구를 개발할 계획이다. 또 내년부터 전국 224곳의 지역별 정신건강증진센터에 ‘마음건강 주치의’(정신과 전문의)를 배치해 정신질환을 조기에 진단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내년부터 정신과 외래진료의 본인부담률도 30~60%에서 20%로 낮아진다. 질환이 나타나는 초기에 집중치료를 받게 하겠다는 취지다. 또 상담료 수가를 올려서 심층치료를 활성화하도록 하고 비급여 정신요법, 의약품에 대한 보험 적용이 확대된다.

정부는 또 올해 안에 ‘정신질환 차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정신과 진료 기록으로 민간보험 가입에 차별을 받는 등 불합리한 문제를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아울러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 등 중독에 대한 개념을 의학적으로 정립하고 질병코드 신설을 추진하는 한편, 자살 시도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을 추진하는 등 자살예방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한겨레신문)


얼핏 보면 정부가 국민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하여 복지 차원까지 고려한 체계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 같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행간에 숨겨진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대책’은 토건적 발상에 근거를 둔 일종의 ‘사업’입니다.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장애를 유발하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요인에 대한 검토와 예방책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결정적 증거입니다.


동네 의원에서 쉽게 진단 받을 수 있고, 본인 부담률을 낮추는 것이 접근을 쉽게 하려는 대책이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정신장애자를 양산해내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상담료 수가를 올려서 심층치료를 활성화하고 비급여 정신요법, 의약품에 대한 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것도 동일합니다.


그 무엇보다 이 대책의 토건 사업적 성격은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 등 중독에 대한 개념을 의학적으로 정립하고 질병코드 신설을 추진한다는 부분에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그 동안 강박적으로 ‘중독법’ 제정을 추진해온 집권세력이 방향 바꾸어 또 다시 야욕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2014년 이 문제에 관해 제가 쓴 글을 그대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2013년 한 해 동안 우리사회를 달군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중독법안 논쟁이었습니다. 논쟁의 쌍끌이였던 두 법안의 이름은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대표 발의자: 신의진)>(이하 중독법), <인터넷게임중독 치유 지원에 관한 법률안(대표 발의자: 손인춘)>(이하 지원법)입니다.·······


지원법의 핵심은 인터넷게임 관련사업자에게 돈을 걷어 예방·관리 및 치료 경비에 충당하겠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마치 국가에서 치료비용을 부담하는 것처럼 인식시키고 뒤에서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워 인터넷게임 관련사업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려는, 아니 그 돈으로 곳간을 채우려는 모종 이익집단의 수익창출 마케팅과 연결되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이런 프로젝트를 이미 10년 전부터 집요하게 추진해왔습니다. 그들은 인터넷게임 관련사업자의 도덕성을 공격하여 돈을 뜯어내려 합니다. 실제로 중독법 대표발의자인 국회의원이 인터넷게임 관련사업자 대표에게 ‘아이들 중독시켜 번 돈 아니냐.’는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탐욕을 은폐하기 위해 곳간을 채워주기 바라는 상대방을 파렴치한으로 몰아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정신과전문의, 그것도 소아정신과전문의라니....... 그리고 그 배후에 한국중독의학회가 있습니다. 이 법안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집단으로 숙원사업 운운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바로 이런 부류의 의자들이 의학과 의료가 맞닥뜨린 위기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들은 중독과 관련된 각종 기관의 요직과 자금에 욕심을 품고 있습니다. 중독된 아이들 살리려 한다는 명분 뒤에 작동하는 권력과 자본, 그리고 종교 이 법안 통과를 위해 개신교 단체가 적극 가담하고 있습니다. 의 토건적, 경찰적, 수탈적 시스템의 마름 노릇으로 알량한 자리와 돈을 차지하려 드는 치졸한 작태입니다.


더 무서운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중독법 제안 이유서에 보면 현재 치료 대상을 333만 명이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법 제2조는 중독유발 물질에 ‘인터넷게임 등 미디어 콘텐츠’라는 포괄적 규정을 둠으로써 대상을 무한히 확대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SNS, 예컨대 트위터도 언제든 중독유발 물질 규정이 가능합니다. 사실 그들의 주된 의도가 거기를 향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결국 엄청난 숫자의 시민들이 이 법의 관리(!) 대상이 되고 치료를 가장한 일련의 해소 (중독법과 매우 밀접한 관련법인 국가정보화기본법 제30조의 6 제1항에 명시된 용어입니다.)조치 아래 묶여야만 합니다. 가히 빅브라더가 통치하는 세상이라 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실제 치료 문제입니다. 의학치료와 의학외적치료가 총동원될 테지요. 의학외적치료는 필경 상담을 가장한 강제적 ‘정신교육’이 핵심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가령 청소년의 경우, 학교에 전담교사가 배치되는 것입니다(지원법 제22조). 이런 사이비 치료행위보다 더 가공할 치료가 화학약물 투여입니다. 실제 정신과의사들은 시간 대비, 돈 안 되는 상담이나 교육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약물처방을 독점할 것입니다. 실로 막대한 숫자의 환자를 확보한 상태에서 법의 비호까지 받아가며 ‘약장사’를 할 수 있으니 이 어찌 숙원사업이 아니겠습니까.·······(『인문과 한의학, 치료로 만나다』129-134쪽)


끔찍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자살 시도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을 추진하는 등 자살예방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는 대목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자살 시도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로 어떻게 자살을 예방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보다 먼저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의 예민한 반응일까요? 테러방지법을 만들어 국민의 머릿속까지 뒤지겠다는 발상과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정신건강 종합대책이라는 말을 전유함으로써 국민을 대량으로 정신장애자로 만들어 관리·통제하려는 거대한 토건 사업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월호사건에 이은 또 하나의 위장된 제노사이드임에 틀림없습니다. 불의한 정치로 국가적 우울증이라는 토건을 일으키고, 속임수 행정으로 국가적 우울증 예방·치료라는 토건을 다시 일으켜 마무리하는 매판독재분단고착세력의 사업수완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우울증은 잘못된 정치가 만들어낸 정치 병입니다. 정치적 치료가 필수적입니다. 의학은 정치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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