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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 우울증, 인생이 병든 것입니다
·······우울증은 한 인간이 외부 환경과 더불어 형성해 온 삶의 과정 자체가 병든 것입니다.·······우울증은 그 어떤 병보다도 실생활의 곡절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차별과 학대, 폭력과 외상trauma, 과도한 부담과 실패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숱한 사건들이 우울증의 뼈와 살입니다.
이런 경험을 수용하고 해석하는 과정 전반에서 자기 모독과 무의미성에 사로잡힐 때 이를 일러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에서 떼어내 뇌가 어쩌고, 신경이 어쩌고 하는 말은 가소로운 환원주의일 뿐입니다. 설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는 기술자로 고착되고 맙니다. 의사는 환자의 인생 전체의 디자인에 동참하는 존재이지 기계적으로 가위질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시대 의사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95-96쪽)
기조 우울증이라는 말은 공인된 의학용어가 아닙니다. 제가 임상 경험과 통찰에 터하여 세운 개념으로서, 삶의 기조로 자리 잡은 우울증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삶 자체가 우울증 상태인 채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병리가 거의 인격화된 상태라 본인도 주위 사람들도 병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는 더 심각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사는 것이 맞는 줄 알고 있기 때문에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착하다·얌전하다·과묵하다·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따위의 수사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심지어 미덕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기조 우울증에서 삶과 병을 분리해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이 곧 인생을 바꾸는 일입니다.
실제 임상에서 기조 우울증 치료는 전방위·전천후 숙론熟論이 필수불가결합니다. 자기부정의 증후가 도처에 흩뿌려져 있고 일거수일투족이 상실·차별·폭력·실패의 상처로 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게는 처음 본 사람과 인사 나누기부터 크게는 공적 어젠다에 참여하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생사를 함께 깊이 논의해야 합니다. 병을 삶과 분리할 수 없듯, 치유 또한 삶과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울증 치료를 시작한 본인보다 주위 사람, 그러니까 백발백중 원인을 제공했을 가족, 특히 부모가 훨씬 더 많이 다그치듯 묻는 것은 ‘언제 완치되느냐?’입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짓이겨 병을 키워놓고는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왜 이렇게 치료가 되지 않느냐?’고 윽박지릅니다. 이치상 무엇이든 망가뜨리기는 쉬워도 고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그럼에도 돈을 입에 올리며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자기의 탐욕 때문에 자녀를 병들게 한 부모가 치료에조차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현장을 목격할 때마다 인간이 과연 무엇인가를 묻게 됩니다.
제법 오래 전 부모의 폭력으로 삶의 고갱이가 으깨져 기조 우울증 앓는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치료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치료비 문제로 압박을 가하던 부모는 급기야 어느 날 치료비 지원(!)을 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돈을 벌어 치료비를 부담해야 했습니다. 일상생활이 잘 안 되는 사회불안도 겹쳐 있었기에 그의 고충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끝내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런 부모의 지원(?)을 받는 것보다 허덕지덕 벌어서 치료 받으러 오는 그의 모습이 훨씬 더 제 마음을 맑게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때부터 저는 그에게 거의 매번 밥을 샀습니다. 그 식사 자리가 더 깊은 숙론의 자리가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이런 숙론의 자리를 가진 뒤 밤 이슥히 홀로 돌아갈 때 생각하곤 했습니다.
“아픈 사람과 인생을 함께 말하지 않고도 돈을 많이 가져가는 잘나가는 의사醫師이기보다 내 돈을 들여서라도 아픈 사람과 인생을 함께 말하는 가난한 의자醫者로 살아가는 것이 내 천명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