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 우울증, 개인 탓이 아닙니다

  우울증 상담치료를 하다·······맞닥뜨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사람 우울증 고쳐 놓으면 뭐 하나, 가족도·······친구도·······직장 사람들도 그대로인데… 하는 답답함입니다.·······우울증은 대부분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에서 비롯한 것인데, 달랑 그 사람의 삶의 지향성만 어루만져 보았자 관계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현실에서의 삶의 변화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우울증을 개인 문제로 한정하고, 더군다나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하고 있습니다.·······우울증도 역동적인 생명 현상입니다. 인간 생명이 홀로 존재하는 실체일 수 없는 이치는 우울증에도, 그 치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우울증은 한 개인이 소유한 물건 같은 게 아닙니다. 개인을 비난하는 것으로써 치료에 갈음해서는 안 됩니다.(92쪽)


“모든 규제를 물에 빠뜨린 뒤 살릴 규제만 살려야 한다.”라는 ‘정부 수장’의 발언을 듣고 김진숙은 이렇게 썼습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선원들만 구조되던 장면을 떠올린 게 나뿐이었을까. 소름끼친다. 저 사람은 다 잊었나보다. 아니 애초에 심중에 없었나보다. 마음 한구석 한 떨기라도 남아있다면 결코 뱉을 수 없는 말이다.”


‘정부 수장’의 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만 사실 세월호를 고의로 물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늦어도 한참 늦게 자백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원을 제외한 304명의 시민을 수장하려고 세월호를 고의 침몰시킨 것입니다. 평상시 ‘정부 수장’의 어법을 고려하면 이런 식으로 범주를 건너뛰는 의미심장한 발언은 기이한 진실을 머금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정부 수장’의 발언은 두 가지 속임수로 진실을 은폐하고 그 은폐 때문에 도리어 진실을 드러내는 함정에 빠집니다. 첫째, 얼핏 들으면 살릴 것은 살린다는 의지를 담은 것 같지만 실은 모두를 물에 빠뜨려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의지임을 가리고 있는 어법입니다. 세월호사건에서 보았듯 선원을 살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304명, 특히 250명의 아이들을 죽이는 것이 목표였으니 말입니다. 둘째, 살리지 않는 것은 살리지 않을 만하기 때문이니 책임은 그 살리지 않을 만한 것들에 있다는 적반하장의 논리입니다. 세월호사건에서 죽은 사람들, 특히 아이들은 죽을 만해서 죽었다, 그러니까 죽음의 책임은 아이들 자신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청문회에 나온 해경 관계자는 아이들이 철이 없어서 못나오고 죽었다고 발언했습니다. 이렇게 말장난을 할수록 제 무덤을 판다는 사실을 당사자는 모르나 봅니다.


우울증에 대한 일반적 인식도 이런 사회정치적 맥락 안에 있습니다. 사회가 개인을 우울증으로 몰아넣고도 그것은 개인적 원인에 따라 일어나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는 개인적 질병이니 질병에 걸린 개인이 책임지고 치료해야 한다고 왜곡합니다. 어느 신문사의 조사에 따르면 세월호사건이 청장년 남성들에게 주요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표현이 스트레스일 뿐이지 사회적우울증후군이 분명합니다. 국가가 범죄적 수준의 잘못을 저질러 사회 전반에 우울의 그림자를 깔아놓고도 끊임없이 피해 시민을 각자도생의 논리 속으로 몰아갑니다. 각자도생의 강요는 범죄의 범죄입니다. 한시바삐 이 진실에 열리지 않으면 우리사회는 영영 가망이 없습니다.


우울과 불안, 그리고 강박이 난마처럼 엉킨 청년이 있었습니다. 상담으로 어렵사리 한 고비 넘고 집에 가면 홀랑 뒤집어져 되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를 그렇게 만든 가족이 전혀 변함없는 자세로 그를 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족에게 당부를 거듭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미상불 그 가족에게는 희생제물을 필요로 하는 지성소가 있었을 것입니다. 지성소가 흠숭되는 한 치료는 지난한 문제입니다. 혹시 우리 모두가 가족의 이름으로 이런 종교 하나씩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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