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코는 모든 감각의 어머니다.


코는 냄새를 맡는 기관이다. 후각은 인간이 최초로 가지는 감각이다. 정자精子는 후각 수용체를 지니고 있다. 이 주화성에 힘입어 난자 쪽으로 이동해간다. 수정을 거쳐 태아가 되면 그 때부터는 직접적인 후각 기능을 가진다. 적어도 인간 생명의 감각에 관한 한 “태초에 후각이 있었다.”가 진리다. 이 감각의 연대기는 신생아 때 수면 습관과 심리적 안정에서 시작하여 생의 마지막 회한까지 비가역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이 코의 통시적 유일성diachronic uniqueness이다.


③ 코는 모든 감각· 지각의 중심이다.


코는 얼굴의 중심이다. 눈, 귀, 입으로 둘러싸인 모든 감각운동의 허브다.


생명의 생존 조건 중에 먹는 것, 그러니까 맛의 문제만큼 전全방위에 걸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먹는 것을 통해 생명운동에 필요한 영양 물질과 에너지가 대부분 공급되기 때문이다. 이 맛의 80-85%가 바로 후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코가 냄새 맡기로써 면역적합성을 판별해낸다는 사실이다. 특히 여성은 순식간에 200여 가지의 남성 체취를 판독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성의 코가 인류의 길을 결정한다. 코가 후각을 통해 형성하는 미시micro의식 또는 무의식에 비한다면 다른 감각을 통해 형성되는 대뇌전두엽의 거시macro의식은 빙산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코의 공시적 유일성synchronic uniquenes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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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코의 지정학


  (1) 코는 코만의 코다


코는 특별하다. 사람이 앞을 향해 우뚝 섰을 때, 코는 맨 앞에 있다. 코는 향도嚮導며 그 용기다.


사람이 누웠을 때, 코는 맨 위에 있다. 코는 스스로를 느끼고(공감) 알아차리고(인정) 받아들이는(신뢰) 지고至高의 자리다.


코는 사람 얼굴의 한가운데 있다. 코는 그 대칭성을 가르는 황금선이다. 코는 생명과 자아의 출발점이자 기준이다.


코의 특별함이, 그래서, 역사의 긴 시간 동안 시샘을 받는 까닭으로 작용하였다. 이제 그 은폐된 이야기를 돋을새김으로 드러내야 할 때가 왔다.


① 코는 생명의 드날목(나들목은 잘못 만들어진 말이기에 바로잡음)이다.


생명의 시작과 끝은 호흡이다. 이 호흡의 절대 관문이 바로 코다. 코는 찰나마다 이어지는 생명 사건의 특이점이다. 코를 통해 독립 생명체의 폐호흡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 숨결이 마지막으로 떠나는 순간까지 호흡은 생명의 가장 관건적 요소로 작용한다.


코의 호흡 작동 방식은 매우 특이하다. 코의 구멍은 두 개다. 그러나 두 개가 한꺼번에 호흡에 참여하지 않는다. 1-5시간(사람마다 다름) 간격을 주기로 교대하여 호흡을 진행한다. 아직까지 그 연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결과적으로 보면, 오른쪽 콧구멍으로 호흡할 때 능동적이고 외향적인 면이 두드러지며, 왼쪽 콧구멍으로 호흡할 때 수동적이고 내향적인 성향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 결과를 의도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생명의 진화 방향을 추정해볼 수 있다.


이른바 교호호흡이라는 것이 있다. 먼저 오른쪽 엄지손가락으로 오른쪽 콧구멍을 막고 왼쪽 콧구멍을 열어 숨을 내쉰다. 이어서 왼쪽 콧구멍으로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고는 숨을 잠시 참는다. 다음에는 반대로 왼쪽 콧구멍을 막고 오른쪽 콧구멍을 열어서 숨을 내쉰다. 그 상태에서 다시 오른쪽 콧구멍으로 숨을 들이마신다. 역시 숨을 잠시 참는다. 이 과정들을 되풀이하는 호흡법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 교호호흡은 좌우 뇌와 자율신경을 균형 있게 조절함으로써 생명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단순한 교호호흡만으로 큰 깨달음에 이른 사람도 있다고 한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항상성은 드나듦의 조화이기 때문이다. 드나듦의 조화가 바로 생명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그 생명의 요체가 바로 코에 깃들어 있다. 교대로 구멍을 하나씩 열어 호흡을 빚는 코의 대칭성 지혜가 생명의 비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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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맘(아래아로 쓴 맘)은 코다


몸은 몸이고 마음은 마음이다. 몸은 몸만의 몸이 아니다. 마음은 마음만의 마음이 아니다. 몸은 마음의 몸이다. 마음은 몸의 마음이다. 어느 찰나 몸은 마음이다. 어느 찰나 마음은 몸이다. 몸과 마음은 온전히 포개지지 않는다. 몸과 마음은 온전히 쪼개지지 않는다. 몸과 마음은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니다. 몸과 마음은 서로를 걸림 없이 넘나든다. 이 마주가장자리에 바로 코가 있다. 맘(아래아로 쓴 맘)은 코다. 인간은 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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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맘은 코다


인간의 맘은 어디, 그러니까 몸의 어느 부분에 깃들어 있을까? 서구의학은 당연히 뇌에 있다고 한다. 물론 아니다. 한의학은 심장에 있다, 즉 심주신명心主神明이라 한다. 물론 아니다. 맘은 몸의 뇌· 심장을 포함한 모든 장기와 조직, 심지어 세포 하나하나가 서로 마주하는 가장자리(경계)에 있다. 좀 더 정확히는 이 어름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 즉 사건으로 존재한다.


맘이라는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뇌와 심장이라는 사실은 상식이다. 그 동안 서구의학은 심장을 등한히 했다. 한의학은 뇌를 등한히 했다. 요즘은 심장-대뇌계라는 말로써 이 두 기관의 융합을 나타낸다. 이 심장-대뇌계 만큼이나 중요한 맘의 장場이 둘 더 있다. 피부· 소화기관[장腸]이다. 그리고 간·심·비·폐·신의 5장臟 역시 맘 사건의 중요한 계기다.


<6. 백색의학은 본말 전도다>에서 이미 태초의 생명이 피부에서 시작하여 소화기관-5장-뇌로 진화해 오는 과정을 밝혔다. 맘은 피부 생명의 단계적 진화과정이 빚어낸 정보·지식·사유·영성의 중층 시스템이다. 맘은 특정 장소에서 일방적으로 생성되고, 저장되는 무엇being이 아니다. 생명의 총체적 상호 운동doing 그 자체다. 맘이 비대칭적 대칭성을 본령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비대칭적 대칭의 자리, 그러니까 피부·소화기관·5장·뇌가 상호 운동하기 위해 마주한 가장자리들이 겹친 시공에 코가 있다. 코는 피부 맘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다. 그렇다. 맘은 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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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도 애착을 끊은 표정은 저렇구나, 싶은 작고 깡마른 얼굴의 청년이 들어섰습니다. 그의 걸음걸이는 어쩐지 그 자체로 변명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공황장애 병력이 있고 우울증도 심했습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불면증이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난 몇 년 동안 2-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 말했습니다.


“비염 치료를 받은 뒤부터 불면증이 더 심해졌습니다.”


아뿔싸! 이것은 일종의 의료사고입니다. 제가 진단한바, 그가 앓는 비염은 전형적인 알레르기비염이 아니었습니다.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이라는 긴 이름의 특별한 비염이었습니다. 서구의학 임상에서 이 둘을 실제로 구분하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대부분 알레르기비염으로 진단하고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할 것입니다. 이 방법이 증상을 억제할 수는 있겠지만, 제대로 된 치료는 아닙니다. 이 방법을 쓰면 나타나는 부작용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불면증입니다. 면역학의 이치상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서구 임상의들은 알지 못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그에게 상세히 해주었습니다. 제대로 된 지식 전달 자체가 치유의 한 축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항히스타민제의 원리와 다른 한약을 지어주었습니다.


제가 지어 보낸 한약의 치료원리는 우울장애 치료와 같은 기반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무얼 의미할까요? 혈관운동신경성비염과 우울증이 본질상 서로 맞닿아 있는 병이란 얘기 아닐까요? 이 통찰은 저 자신의 병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우울증 때문에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을 앓은 경험이 있습니다. 15년 이상 치료가 안 되어 고생하다가 40대 후반, 어떤 양방병리학 책에 첨부된 소논문을 읽다가 벼락같은 한 문장을 만났습니다.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은 대개 슬픔· 원망 등의 감정 요인이 작동하므로, 심리치료 말고는 현재 의학의 수준에서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그제야 저는 여태까지 했던 노력이 왜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즉시 저는 실천에 옮겼습니다. 애써 다른 전문가를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심리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칠흑 같은 밤의 어두움 속에서 침묵과 절규를 가로지르며 극진히 자기 대화 나누기를 서너 시간, 이윽고 희붐하게 동이 터오고 있었습니다. 어느 한 순간 문득, 연거푸 나오는 재채기·엄청난 양의 맑은 콧물·코 막힘·가려움·미열·두통 등의 증상들이 아침 해 뜨면 물안개 사라지듯 없어지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이내 소름 돋는 느낌이 와락 달려들었습니다. ‘아, 병은 이제 없구나!’ 그렇습니다. 그것으로 제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의 긴 역사는 막을 내렸습니다.


임상 현실에서 혈관운동신경성비염에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의료인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제 경험을 토대로, 진단 과정에서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인가, 아닌가를 면밀하게 살핍니다.


거꾸로 접근하는 진료도 필요합니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진단할 때 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특히 우울장애일 경우는 이 진단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문진과 경추압진頸椎壓診-목뼈를 손가락 끝으로 누르는 진단 방식-을 하면 거의 완벽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울장애와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은 ‘혈통’이 같은 병입니다. 기억 속에 저장된 아픈 감정을 되살려내어 마음의 장애를 유발·지속·증폭시키는 것이 후각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오랫동안 우울장애와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을 따로 생각하면서 시달려 온 전형적인 예가 바로 제 자신입니다. 제가 자기 상담으로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을 치료한 것은 결국 우울장애의 치료를 겸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이치를 저는 그에게 그대로 적용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어머니가 주입한 근거 없는 기준으로 말미암아 어린 시절부터 자기혐오를 격렬히 겪었습니다. 외모·학교·전공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반복해서 일어났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속 깊이 나누며, 그는 점차 불면과 비염과 우울의 동굴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나와서 돌아보니 하나의 동굴이었다는 진실을 간직한다면, 언제 어느 때 또 그런 동굴을 만나도 그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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