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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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 대부분에서 전쟁은 인간이 만든 무기로 인간 적들 사이에 펼쳐졌다. 하지만 테라포밍에는 환경이 개입하고 비인간 존재가 중요한 구실을 하는 다른 전쟁이 필요했다.···

  ···이러한 전쟁은 군인만이 아니라 전체 인민, 종족, 문화, 세계관, 그리고 생태계가 맞붙었다. ‘전면전총동원은 유럽으로 들어오기 훨씬 전에 북·남미에 존재했다.

  ···환경 무기화가 분쟁 주요소인 생물정치적(biopolitical) 전쟁이었다.

  정착형 식민주의적 전쟁과 유럽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벌인 식민지 전쟁 간 근본적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착형 식민주의 전쟁은 완전히 다른 전쟁이었다. 병원균···식물·동물들이 모두 그 전쟁에서 자기 몫을 지닌 주체였다. 토착민은 이 수많은 비인간 존재들이 관여하는 항구적 전쟁 상태로 내몰렸다.(79~83)

 

생물정치적 전쟁이라는 표현이 정확한지 의문이다. 이 말 자체가 지닌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선 문맥에서 찾아보자. 이 말을 정의하는 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구절은 이렇다.

 

인구 전체가 대규모 생물학적 생태 파괴를 포함한 폭력 형태에 시달리는···전쟁”(80)

 

생물(bio)’이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 전체를 의미한다면, 인구 전체가 주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생물정치적 전쟁이 아니더라도 대규모 전쟁이 일어난 장소에서 폭력에 시달리지 않는 인구가 존재할 수는 없다. 전쟁 와중에 인간이 만든 무기가 인간 이외 생물이나 생태를 파괴하지 않을 수도 없다. 이런 일이 광범위하게 일어난다고 해서 생물정치적이라 한다면 테라포밍 전쟁을 다른 전쟁과 구별하는 일은 거의 무의미하다.

 

생물정치적이라 할 때 필수적인 사항은 기존 전쟁 개념을 벗어난 행위 주체와 방법이 직접 전쟁 당사자로 세워진다는 점이다. 기존 전쟁 목표가 절멸이 아니기 때문에 동원하지 않았던 비인간 존재들을 총체적으로 전선에 세웠으므로 전면전이며 총동원이라 했기에 말이다. 정착형 식민주의 정복전이 지닌 전방위·전천후, 그 절대적 잔혹성을 드러내기에 그리 적합해 보이지 않는 생물정치적이라는 말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아미타브 고시가 새로 만든 말이 아니라면, 미셸 푸코에서 조르조 아감벤, 안토니오 네그리, 미카엘 하르트를 거쳐 토마스 렘케까지 이르는 생물(보통은 생명이라 번역함-필자)정치논의를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이 생물정치는 19세기 이후 전개된 서구 통제 정치 국면으로 생명을 생산·보호는 물론 폐기되도록 방치 또는 환경 조건을 개입시키는 데까지 권력이 관리·규율하는 구조다.

 

폐기되도록 방치 또는 환경 조건을 개입시키는 일은 미셸 푸코 표현대로 죽게 내버려 두는일이다. 대상은 체제 외부다. 체제의 외부는 배제된 자, 추방된 자, 열외자, 생명만 유지되는 자, 곧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는 호모사케르’(Homo Sacer). 호모사케르 연장선에 제삼세계 민중, 소수자, 비인간 생명(식물·동물·미생물), 자연(·바다·)이 있다.

 

죽게 내버려 두는 일은 부작위, 그러니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고의로 하지 않음으로써 살해하는 행위다. 예컨대 전염병에 걸려 죽을 수밖에 없도록 영양실조, 열악한 위생, 심리적 불안들을 개선하지 않는 행위다. 적극적 살해행위와 본질에서 전혀 다르지 않다. 왜 이런 전략을 쓰는가? 손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생물·식물·동물··숲이 개입해 일어나는 일은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고, 따라서 거기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생물정치적 전쟁···은 전혀 전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다른 어떤 독립적 자연 질서로 분류된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기계론적 서구 관념은 생물정치적 전쟁이 지닌 진정한 특성을 폭로함과 동시에 은폐하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메아리를 아직도 들을 수 있다. 미국 기후 위기 부인론자들이 기후 변동은 자연 현상이며 따라서 인간 개입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주장할 때 말이다.”(84)

 

아미타브 고시는 어떻게 생물정치 개념으로 정착형 식민주의 말살 전쟁을 해석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이 질문은 잘못됐다. 일은 거꾸로 진행됐다. 이 책이 여러 번 이런 진실을 설파했듯 생물정치 개념도 정착형 식민주의 말살 전쟁 경험에서 나왔다. 미셸 푸코도 조르조 아감벤도 이 진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들 관지가 유럽, 더군다나 거기 인간이라는 사실이 그 증거다. 내가 뜨르르한 제국 천재들을 근원에서 인정하지 않는 이유다.

 

미셸 푸코, 조르조 아감벤이 모르는 진실을 아미타브 고시가 안다면 아미타브 고시가 모르는 진실을 나는 알아야 한다. 나는 앵글로아메리카 제국 짝퉁이자 사실상 그 식민지인 일본 제국 후기 식민지에서 태어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문부성 국비 장학생 1호 아들이 대통령 놀이하면서 공식적으로 부역하는 풍경 한가운데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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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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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terraforming)’···테라포밍만들기또는 형성하기를 합성한 조어다. 따라서 땅 만들기’ ‘땅 형성하기로 해석할 수 있다.···

  ···웰스가 쓴 우주 전쟁은 테라포밍 개념을 전제로 한다. 이 소설은 잘 알려진 식민지 시대 말살 전쟁가운데 하나, 즉 영국이 태즈메이니아섬을 식민지로 만든 뒤 그곳 토착민을 절멸시킨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테라포밍 서사는 제국주의 수사와 이미지에 크게 기댐으로써 우주를 정복하고 식민지화해야 할 미개척 영역으로 삼는다. 이 개념이 정착형 식민주의(국가 주도로 일부 국민이 나라 밖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정착지를 개척하는 식민주의-옮긴이) 경험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는 사실은 왜 그것이 영어권 세계에서 공상과학소설 팬에게뿐 아니라 테크놀로지 억만장자, 기업인, 엔지니어에게도 폭넓은 호소력을 지니는지 설명해준다. 다른 인간은 물론 지구생태계까지 식민화하고 예속시킨 역사적 경험을 재현하려는, 거의 간절하다고 할 만한 욕망을 시사한다.(77~78)

 

우리는 겉만 훑어보면서 다고 생각한다.···섬세함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망원렌즈를 능가할 수 있다.”(23)

 

이끼와 함께에서 로빈 월 키머러가 한 말이다. 이 말을 문득 떠올린 까닭은 제국주의와 부역 문제에 대해 내가 여태껏 겉만 훑어보면서 본다고 생각한 바로 그 착각을 오랫동안 범해왔다는 뼈아픈 각성이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사실 이 땅 지식인 거의 모두가 나와 마찬가지지 싶다. 여기 번역자도 비슷하다.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말은 Science Fiction에서 유래했다. Science가 왜 공상과학이 되었을까? 본디 일본이 1950년대 Fantasy & Science Fiction을 두루뭉술하게 공상과학소설이라고 오역했는데, 한국이 1960년대 사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사어가 됐는데도 한국은 여전히 이 잘못된 번역어를 사전에 등재해 놓고 있다. 사전 만드는 사람이 누구보다 섬세해야 하지 않나. 번역하는 사람도 그에 못지않게 섬세해야 하지 않나.

 

따지고 보면 이 문제는 너나없이 맹렬하게 톺아야 한다. 사소한 듯 보이지만 바로 이런 풍경이 식민지 지식인이 공유하는 조야함을 대표한다. 섬세히 들여다보면 식민지 사회에는 결결이 겹겹이 이런 누더기가 널려 있다. 무자각 특권층 부역자는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각성한 부역자도 광범위하게 깨알처럼 박힌 식민지 파편을 걸러내기란 쉽지 않다. 하다못해 최고 헌법기관인 대통령이란 말도 일본이 번역한 president에서 왔다니 기도 안 찬다. 용어 하나가 이럴진대 과학소설에 얽혀 있는 제국주의 서사는 얼마나 더 큰 우리 무지를 쟁여두고 있겠나.

 

지구 테라포밍이 시스템적으로 완결성을 확보해가는 과정에 충실히 부역했던 문학은 지구 밖으로 제국 시민 눈길을 돌린다. 더는 절멸시킬 땅도 사람도 없으니 상상력으로 미개척 영역을 만들고 과학을 끌어들여 판타지 누명을 벗겨낸다. 이렇게 본성을 교묘하게 감추자 폭넓은 설득력이 보장된다. 영화와도 손잡으면서 대세를 굳힌다.

 

서구 제국이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으면서까지 우주과학, 그 기술, 그 산업을 전진시키는 일은 단순 토건이 아니다. 영원한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그 프로젝트에 걸린 프로모션 서사로 과학소설은 복무하고 있다. 명백한 포르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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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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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가 1세기 반 동안 냉각을 겪어왔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익히 알려져 있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중반까지 절정을 이룬 이 시기는 흔히 작은 빙하기라고 불린다. 그 시기에 대기 중 탄소 농도가 급격히 하락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이상 현상은 일반적으로 태양 활동이나 지진 활동 변화 같은 자연적요인 탓으로 돌려졌다. 그 이상 현상은 유럽이 북·남미에 대한 통제 고삐를 단단히 죄고 있을 때 일어났는데, 이 사실은 오랫동안 우연한 결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또 다른 가능성을 시사한다. , 유럽이 살육을 자행함으로 시작된 재앙에 가까운 북·남미 인구 감소가 작은 빙하기 전 지구적 평균 기온하락에 어느 정도 작용했을 가능성 말이다. 16세기와 17세기에 너무나 많은 아메리카 인디언이 살해돼서 한때 식량 재배 용도로 쓰이던 방대한 경작지가 숲으로 되돌아갔다. ·남미 대륙에서 갑작스럽게 푸른 나무가 늘어나자 이산화탄소가 엄청나게 격리되고, 그에 따라 전 지구적 기온하락을 결과한 역 온실가스 효과가 일어났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은 물론 입증된 적이 없다. 하지만 만약 작은 빙하기가 부분적으로나마 실제 인간 활동으로 말미암았다면, 이는 인류가 기후변화를 유발한 우리 시대와 17세기를 연관 짓는 또 다른 근거일 수도 있다.(76~77)

 

스티브 테일러는 자아 폭발-타락-에서 이런 사실을 전해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유럽인 아메리카 원주민 정복을 나치 유대인 학살과 비교하지만, 여러모로 그보다 훨씬 심각했다. 1492년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남북 아메리카 인구가 얼마였는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2천만 명에서 1억 명까지 각기 다르게 추정하는데, 실제는 그 중간 정도로 봐야 한다. 유럽인이 들어온 이후 놀라울 정도로 줄었다. 1860년경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단 34만 명에 불과했다.”(138)

 

중간이면 6천 만이다. 사실상 이들을 모두 죽였다. 아니다. 그동안 새로 태어난 사람까지 헤아린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말살했다. 사람만이 아니라 기대어 살던 동물, 깃들어 살던 풍경, 더불어 살던 생태 조건 전체를 도륙했다. 오늘날 우리가 차마 예측할 수 없는 전방위·전천후 변고를 유발했음이 분명하다. 작은 빙하기가 어떻게 자연적 현상일 수만 있는가. 입증돼야만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인간에게 진실이란 얼마나 알량한가.

 

신라 <헌강왕(49/875~886) 본기>에 왕이 시중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대목이 있다.

 

지금 민간에서는 짚 아닌 기와로 지붕을 덮고, 나무 아닌 숯으로 밥을 짓는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의견이 분분하다. 그 가운데 이런 주장이 있다: 숯을 만들기 위해 과도하게 벌목함으로써 숲은 물론 생태계 균형 전반이 무너져 신라가 멸망하는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현재 이 문제에 관해 전문가들이 어떤 의견 일치를 보았는지 나는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10만 명 살았던 경주에서 일어난 이 일이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면, 사람 6천만 명과 그들이 살아가는 주위 공간을 말살한 일이 작은 빙하기를 몰고 온 한 원인일 수 있다는 가설은 다만 가설일 수 없다.

 

우리가 그동안 교육받은 세계사는 인도유럽어족, 더 좁혀 앵글로아메리칸 제국이 저지른 해악을 은폐 넘어 왜곡 미화로 각색한 흑역사다. 고등학생 시절 세계사 공부할 때 늘 품었던 불만 가운데 하나가 세계 역사라면서 시대와 단원 구분이 왜 유럽 중심으로 돼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때는 모든 교과서 원본을 미군정이 만들었고, 특권층 부역자들이 덧칠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특권층 부역자들은 바로 이 시각에도 제국주의 관지를 알아서 기며 수용하고 있다. 제국 두뇌와 식민지 특권층 부역자 두뇌가 이렇게 공조하는 한 세계사는 끝날까지 픽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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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전, 백악산으로 향한다. 뜻밖의 여정이다. 능선 따라 백악마루로 가지 않고 남쪽 사면으로 접어든다. 임기 말 문재인 전대통령 내외가 자상하게 챙겨 개방한 길이라 한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안전과 편의에 신경쓴 흔적이 역력하다. 틈틈이 버섯에 예를 표하며, 주위 숲과 내려다보이는 도시 풍경을 번갈아 본다. 얼마쯤 가다가는 아예 우산을 접어 넣고 가랑비와 뒷비를 맞으며 간다.

청와대 전망대에 이르러 심호흡하고 고요히 선다. 청와대, 경복궁, 광화문 광장, 세종대로, 목멱, 저 멀리 비구름에 가려진 관악까지 이슥히 들여다본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오른다. 생애 마지막 공부라 여기며 공들인 식물 공부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 부역 생태 서사 공부로 흘러가면서 숲에 드나드는 목적이 달라진 탓이다.

백악 풍경에 대한 감사함과 부역 정권을 내려다보는 참담함이 뒤엉켜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는다. 그냥 내려올 수는 없다. 곡진히 사납게 빌어마지 않는다. 특권층 부역 집단이 잡은 권력을 향해 검정부적 두 장 날린다. 한결 홀가분해져 숲을 나온다.

하늘은 식민지 회색으로 여전하지만 비가 멈춘다. 청와대 둘레길 끄트머리에 이를 즈음 신라말을 구사하는 패거리를 만난다. 그 고주파 폭력을 막아내지 못하고 서둘러 청운동으로 내려온다.

허름한 식당에 들어 매운 국물 시켜 막걸리 잔을 든다. 이름 모를 막걸리 맛이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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