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전, 백악산으로 향한다. 뜻밖의 여정이다. 능선 따라 백악마루로 가지 않고 남쪽 사면으로 접어든다. 임기 말 문재인 전대통령 내외가 자상하게 챙겨 개방한 길이라 한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안전과 편의에 신경쓴 흔적이 역력하다. 틈틈이 버섯에 예를 표하며, 주위 숲과 내려다보이는 도시 풍경을 번갈아 본다. 얼마쯤 가다가는 아예 우산을 접어 넣고 가랑비와 뒷비를 맞으며 간다.
청와대 전망대에 이르러 심호흡하고 고요히 선다. 청와대, 경복궁, 광화문 광장, 세종대로, 목멱, 저 멀리 비구름에 가려진 관악까지 이슥히 들여다본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오른다. 생애 마지막 공부라 여기며 공들인 식물 공부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 부역 생태 서사 공부로 흘러가면서 숲에 드나드는 목적이 달라진 탓이다.
백악 풍경에 대한 감사함과 부역 정권을 내려다보는 참담함이 뒤엉켜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는다. 그냥 내려올 수는 없다. 곡진히 사납게 빌어마지 않는다. 특권층 부역 집단이 잡은 권력을 향해 검정부적 두 장 날린다. 한결 홀가분해져 숲을 나온다.
하늘은 식민지 회색으로 여전하지만 비가 멈춘다. 청와대 둘레길 끄트머리에 이를 즈음 신라말을 구사하는 패거리를 만난다. 그 고주파 폭력을 막아내지 못하고 서둘러 청운동으로 내려온다.
허름한 식당에 들어 매운 국물 시켜 막걸리 잔을 든다. 이름 모를 막걸리 맛이 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