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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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terraforming)’···테라포밍만들기또는 형성하기를 합성한 조어다. 따라서 땅 만들기’ ‘땅 형성하기로 해석할 수 있다.···

  ···웰스가 쓴 우주 전쟁은 테라포밍 개념을 전제로 한다. 이 소설은 잘 알려진 식민지 시대 말살 전쟁가운데 하나, 즉 영국이 태즈메이니아섬을 식민지로 만든 뒤 그곳 토착민을 절멸시킨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테라포밍 서사는 제국주의 수사와 이미지에 크게 기댐으로써 우주를 정복하고 식민지화해야 할 미개척 영역으로 삼는다. 이 개념이 정착형 식민주의(국가 주도로 일부 국민이 나라 밖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정착지를 개척하는 식민주의-옮긴이) 경험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는 사실은 왜 그것이 영어권 세계에서 공상과학소설 팬에게뿐 아니라 테크놀로지 억만장자, 기업인, 엔지니어에게도 폭넓은 호소력을 지니는지 설명해준다. 다른 인간은 물론 지구생태계까지 식민화하고 예속시킨 역사적 경험을 재현하려는, 거의 간절하다고 할 만한 욕망을 시사한다.(77~78)

 

우리는 겉만 훑어보면서 다고 생각한다.···섬세함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망원렌즈를 능가할 수 있다.”(23)

 

이끼와 함께에서 로빈 월 키머러가 한 말이다. 이 말을 문득 떠올린 까닭은 제국주의와 부역 문제에 대해 내가 여태껏 겉만 훑어보면서 본다고 생각한 바로 그 착각을 오랫동안 범해왔다는 뼈아픈 각성이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사실 이 땅 지식인 거의 모두가 나와 마찬가지지 싶다. 여기 번역자도 비슷하다.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말은 Science Fiction에서 유래했다. Science가 왜 공상과학이 되었을까? 본디 일본이 1950년대 Fantasy & Science Fiction을 두루뭉술하게 공상과학소설이라고 오역했는데, 한국이 1960년대 사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사어가 됐는데도 한국은 여전히 이 잘못된 번역어를 사전에 등재해 놓고 있다. 사전 만드는 사람이 누구보다 섬세해야 하지 않나. 번역하는 사람도 그에 못지않게 섬세해야 하지 않나.

 

따지고 보면 이 문제는 너나없이 맹렬하게 톺아야 한다. 사소한 듯 보이지만 바로 이런 풍경이 식민지 지식인이 공유하는 조야함을 대표한다. 섬세히 들여다보면 식민지 사회에는 결결이 겹겹이 이런 누더기가 널려 있다. 무자각 특권층 부역자는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각성한 부역자도 광범위하게 깨알처럼 박힌 식민지 파편을 걸러내기란 쉽지 않다. 하다못해 최고 헌법기관인 대통령이란 말도 일본이 번역한 president에서 왔다니 기도 안 찬다. 용어 하나가 이럴진대 과학소설에 얽혀 있는 제국주의 서사는 얼마나 더 큰 우리 무지를 쟁여두고 있겠나.

 

지구 테라포밍이 시스템적으로 완결성을 확보해가는 과정에 충실히 부역했던 문학은 지구 밖으로 제국 시민 눈길을 돌린다. 더는 절멸시킬 땅도 사람도 없으니 상상력으로 미개척 영역을 만들고 과학을 끌어들여 판타지 누명을 벗겨낸다. 이렇게 본성을 교묘하게 감추자 폭넓은 설득력이 보장된다. 영화와도 손잡으면서 대세를 굳힌다.

 

서구 제국이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으면서까지 우주과학, 그 기술, 그 산업을 전진시키는 일은 단순 토건이 아니다. 영원한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그 프로젝트에 걸린 프로모션 서사로 과학소설은 복무하고 있다. 명백한 포르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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