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나는 스스로 사람을 사랑해 사람이 된 나무라고 생각하며 산다. 내가 구성해온 본성 서사다. 그러나 엄연히 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으로서 사람 질병을 치료하는 의자다. 의자로 살면서 의자로서 제국주의에 기생한 무지렁이 부역자다. 그 참회와 속죄부터 해야 순서가 맞다. 순서를 삼가 따른다.
1. 한의학은 식물, 그러니까 녹색 생명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의학이다. 엄밀히 따지면 서구의학을 포함한 모든 의학이 그렇지만, 특히 한의학은 약물 처방을 대부분 식물 자체로 구성하므로 이렇게 말한다. 한의사는 약으로 어떻게 무슨 식물을 쓸지 고민하는 일로 평생을 보낸다. 식물을 훤히 꿰뚫고 있을 듯 보이는 바로 그 점이 함정이다. 필요한 사항만 알기에 식물 서사 전체는 잘, 아니 전혀 모른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으면서 아닌 듯 오랜 세월 살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내가 나무 사람 아니, 사람 나무라고 한평생 굳게 믿으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내 믿음은 마냥 허구가 아니었으나 바로 그 점이 또 더 깊은 함정이었다. 전제하면 의심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알 수 없는, 그러니까 비 인과적 경로를 통해 식물이, 식물 본성 자체로 내게 들이닥쳤다. 그 순간부터 주업과 부업이 뒤바뀌었다. 광화문 교보 식물 코너에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을 때까지 나는 식물 공부에 심취했다. 공부 중 아픈 사람이 치료받으러 찾아오면 맹랑한 부아가 치밀어오를 정도였다. 공부는 식물에서 멈추어지지 않았다. 지의류, 균류, 박테리아, 마침내 바이러스까지 나아갔다. 세계의식이 확장일로를 걷는 동안 인간중심주의는 남김없이 무너졌다. 자연스럽게 지구 생태계, 기후 재앙, 지구 위기 문제가 더한층 날카로운 화두로 자리 잡았다. 아, 이제는 구체적, 실용적 차원에 뿌리를 내려야겠구나, 하는 순간, 홀연히 내 눈을 사로잡은 책이 앞에서 본 『육두구의 저주』(아미타브 고시)였다.
『육두구의 저주』는 항일무장투쟁 선봉에 서셨던 증조부 덕분에 생긴 제국주의에 대한 정서 중심 시각을 단칼에 베고, 제국주의 속살을 결결이 들여다보는 이성적 시각을 구축해주었다. 더군다나 현실 문제를 자본주의라는 납작한 범주로만 해석하던 피상성마저 날려버렸다. 지구 위기 문제가 어떻게 제국주의에서 발원했는지 알고 나서 나는 <녹색의학 이야기>를 새로이 쓸 수밖에 없다는 자각 먼저 했다. 그 자각을 2023년 5월 22일부터 7월 17일까지 브런치스토리에 고쳐 쓴 글을 올림으로써 실행으로 옮겼다. 이제 다시 좀 더 핍진한 반제국주의 의학 서사가 되도록 또 한 번 고쳐 쓴다. 그 시작을 2023년 8월 18일에 한다.
3. 나는 한의학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의자다. 중첩 식민지 무지렁이 부역 의자로서 내가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일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작업을 하려 한다. 내 눈에 나를 둘러싼 풍경은 그대로 질병 포르노다. 병 걸리도록 중독적으로 유혹하는 의료독재 살풍경 말이다. 의료독재가 제국주의를 부추겨 극한 파국으로 밀어 가고 있다. 아니다. 거꾸로다. 어제 제국주의가 의료독재를 구성했으므로 오늘은 그 모진 업보다.
여기서 의학이란 무엇인가. 이치에 따라 말한다면 의학은 제국주의에 맞서 혁명하는 논리와 실천이어야 맞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의학, 특히 주류 서구의학은 도리어 제국이 부리는 마름으로서 수탈체제 거대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나는 이를 백색의학이라고 이름한다.
백색의학에서 백색이라는 말은 크게 세 가지 함의를 지닌다. 하나, 제국 권력 집단이 혁명 운동에 가하는 탄압으로서 백색공포라는 백색이다. 둘, 제국 자본주의라는 백색이다. 셋, 화학합성약물이라는 백색이다.
백색의학에 맞서 질병 포르노 제국을 혁명할 논리와 실천을 창조하는 실재로서 나는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을 제시한다. 그동안 온갖 잡다한 마케팅에서 이 말을 써왔음이 사실이다. 익히 알기에 나는 이 말을 재정의해 혁명 언어로 거듭나도록 한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에서 녹색은 크게 세 가지 함의를 지닌다. 하나, 제국 권력 집단이 혁명 운동에 가하는 탄압인 백색공포에 항거하는 자유로서 녹색이다. 둘, 제국 자본주의에 항거하는 평등·평화 팡이실이(networking)로서 녹색이다. 셋, 치료를 가장한 제국 제약회사 화학합성물질 공격에 항거하는 진정한 치유와 박애로서 녹색이다.
대략 이런 방향과 내용을 담고, 흐르는 대로 생각을 펼쳐보려 한다. 때에 따라서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digression)’도 없지 않다. 그동안 이런저런 지면, 하다못해 술자리에서 했던 말들도 나와 돌아다닌다. 그때 했던 말과 어긋나는 말도 한다. 함께 어우러져 이 묵시적 상황에서 내가 흔쾌히 결곡히 쉴 숨 길, 할 말 길, 갈 짓 길을 열었으면 좋겠다. 질병 포르노 식민지에 반제국주의 녹색의학 이야기가 팡이실이 길잡이로 읽힐 수 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