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역 이야기를 닫으며

 

<우리 부역 이야기를 닫으며> 제목 걸어놓고 이 글을 쓰려면 꼭 도봉산 회룡 계곡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겨울에 눈 덮인 회룡 계곡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결국은 되돌아 나오면서 見人忘吾를 거쳐 나 자신이 부역자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달았으니 이번에는 결코 되돌아 나오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깨달음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그래야만 했다.

 

망월사역에서 내려 도봉산 3대 계곡 중 하나인 원도봉 계곡으로 향했다. 장마 끝이라 계곡은 아직도 습한 기운에 젖어 있었다. 곳곳에 물놀이하는 피서객 웃음소리가 낭자했다. 나는 나무와 풀과 버섯과 물, 그리고 바위에 도취해 그 소리들을 바람처럼 날려 보냈다. 망월사를 지나 능선에 도달한 뒤 카카오 지도에 점선으로 처리된 회룡 계곡 길 가까이 접근했다.

 

지도에서 확인한 회룡 계곡 길 진입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결국 이번에도 길 없는 길로 다시 들어서기로 했다. 경사가 급했지만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난겨울에는 올라가는 경로, 게다가 눈이 덮여서 실패했지, 이번에는 내려가는 경로라 일단 물길이 시작되는 곳만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순진한 생각임이 즉시 드러났다.


회룡천이 발원한 곳

 

물길 주변은 바위투성이면서 높고 낮은 폭포 지형이 형성돼 있어서 위험천만이었다. 돌아갈 수 없는 곳은 위험을 무릅쓰고 직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수직 바위벽에서 세 번이나 미끄러져 굴러떨어졌다. 찰나적으로 사람이 산에서 이러다가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무겁지 않은 외상을 몇 군데 입었을 뿐, 안경마저 멀쩡해 너무나 신기했다.

 

임계점에 도달했다. 도저히 직진할 수 없는 낭떠러지 폭포 바위 위에 섰다. 경사 40도가량 넓적한 바위를 옆으로 기어올라 능선 쪽 우회 경로를 찾아야 했다. 올라가다가 구르면 그대로 끝인 상황이었다. 공포와 용기는 반대말일 수 없다는 진실이 찰나적으로 들이닥쳤다. 생각 멈추고 즉시 바위를 타기 시작했다. 안전한 곳에 이르자 갑자기 몸이 소리 하나를 토해냈다.

 

68년 만에 처음 알았다, 몸에서 토해져 나오는 울음이 꺽 하는 소리를 낸다는 사실. 마음으로 제어되지 않았다. 한참 그러고 울다가 깨달았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진실. 인적 없는 깊은 숲에서 수염 허연 늙은이가 꺽꺽 우는 광경은 누가 봐도 기이하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내 운명을 느꼈다, 숲 주체성을 인정하는 삶은 낭만이 아니라 목숨을 나누는 일이라는 진실.

 

물소리와 밀고 당기며 끊길 듯 이어진 소로를 따라가다가 지난겨울 내가 왔던 길을 거꾸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내 알아차렸다. 방향이 같지만, 지난겨울에는 회룡 계곡을 끝내 걷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길이었고 이번은 회룡 계곡을 마침내 걸어 마무리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두 발길이 서로 같지 않은 요체가 성패 자체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즉시 알아차렸다.


지난겨울에는 내 생각을 잃고 타인을 따라갔다. 이번에는 내 생각을 붙들고 숲을 따라갔다. 타인은 느닷없이 대화를 끊어버렸다. 숲은 끝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식민지 인간 부역 이야기를 하는 중에 부단히 숲에 든 까닭은 인간 아닌 숲을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에서 궁극적 동지로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실패와 성취 동시 지점에 이르러 나는 이 진실을 확인했다.



달리 말하면 나는 숲을 보고, 그러니까 숲을 따라서 내게 되돌아왔다(見林回吾)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내가 사람이 된 나무라는 서사를 소환한다. 이 부름에 응해 나는 의자로 살아온 내 후반 삶을 걸고 사람 나무 생각으로 의학 이야기부터 고쳐 쓴다. 그 너머 이야기를 어찌할지는 아직 모른다. 나중에 알게 되면 이 부분을 고친 다음 그 이야기를 쓰기로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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