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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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이 사장 부인인데 자꾸 시비를 거는 거예요. 그 전에는 이런 트러블이 없었는데 이상했어요. 알고 보니 아들 장례를 치르는 사이에 경찰관이 회사에 다녀갔다고 하더라고요. 경찰이 유가족 동향을 살피려고 왔던 거죠.·······사장이·······얘기를 하더라고요. 실장이 같이 일 못 하겠다 한다고.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알았다고 했죠. 나올 때도 실장하고 대판 싸우고 나왔어요.(296쪽-건우 아빠 김정윤)


검찰국가의 드물지 않은 살풍경 하나가 건우 아빠 김정윤이 사회적으로 살해당하는 이 사건과 겹쳐진다. “기업인 ㄱ은 경쟁 업체가 눈엣가시다. 지인을 통해 검사 ㄴ을 소개 받는다. ㄴ은 그 경쟁사를 내사한다. 거래 업체를 죄다 쑤셔 놓는다. 당연히 그 기업은 망한다. ㄱ이 헐값으로 인수하면서 상당 지분을 ㄴ에게 준다. 경우에 따라서는 ㄴ이 아예 그 기업을 인수한다.”


경찰은 대체 무슨 이유로 416유가족 동향을 살폈을까? 경찰한테 무슨 말을 들었기에 사장은 건우 아빠 김정윤을 쫓아냈을까? 식민지 시절 왜놈 경찰도 아니고 토착왜구 부역자도 아닌데·······아니, 아니다. 겉모습만 다를 뿐 저들은 여전히 왜놈 경찰이고 여전히 토착왜구 부역자다. 아베 총독이 호언한 노예교육 너머 미군정이 온존시킨 식민지 체제의 힘이다. 쫀쫀하다.


식민지체제의 쫀쫀함을 친일 연구의 선구자였던 임종국 선생은 “알게 모르게 일상을 파고들어 우리 주체성을 완전히 마비시켰다”고 지적했다. 지난 9일이 임종국 선생 30주기였는데 우리사회는 아직도 주체성이 마비된 채 매판이 짜 놓은 프레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연일 쏟아내는 공정 또는 평등 담론이 매판에 부역하는 것이란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쫓겨나면서 건우 아빠 김정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내 안타까움과 걱정이 전해지기야 할까만 이렇게 익명성에 저항하며 소리치기라도 해야 알게 모르게 틈을 내지 않겠나. 항일무장투쟁의 혈통으로서는 퍽 부족하지만 결결이 외쳐보는 소이다. 식민지체제의 쫀쫀함을 내 쫀쫀한 방울방울로 뚫어버리는 꿈을 꾸면서 지치지 말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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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전에는 교회가 삶의 중심이었어요. 모든 활동들이 교회가 시작점이었는데 이젠 완전히 단절된 거죠. 애들은 좋은 곳에 갔으니까 이제 마음에 묻어라, 이런 말을 직접 하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비치는 게 있어요. 제가 마음이 상했던 건 교회 안에서 세월호 얘기를 안 한다는 거예요. 가끔 말을 할 때가 있는데, 예를 들어 부흥회를 한다면, “세월호 같은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위해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라고 부흥회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세월호가 언급돼요. 세월호가 주가 되는 게 아니라 하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걸 보니까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생각의 차이가 너무 컸던 거죠. 그들이 세월호를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기들이 의도한 생각 속에 우리를 집어넣으려고 하니까 그게 싫은 거죠.(293~294쪽-시찬 아빠 박요섭)


세월호학살을 보는 종교단체 빅3의 시선은 이렇게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개신교 간판스타인 어느 목사는 하나님이 아이들을 죽였다고 설교했다. 천주교 추기경은 교황이 노랑리본을 달고 다니자 떼어주기를 청했다. 불교조계종총본산은 왕생극락하시라는 커다란 현수막을 내걸었다. 대체 인간에게 종교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회의에 찬 의문에 종교라면 적어도 죽음 아니 죽은 자 문제만이라도 근원과 실재에 가 닿는 답을 제시해야 한다. 빅3 어느 한 곳도 세월호사건 진실에 단도직입의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사회적으로 가장 많이 노출된 종교인 개신교는 일부 극소수를 제외하면 부정 일색의 반응이었다. 비열하게도 자기들만의 하나님 뒤로 숨었고, 희생과 피해를 왜곡·폄훼했으며, 도리어 박근혜를 감쌌다. 이 태도는 지금까지 견지되고 있다. 보수교단 소속이면서도 개신교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온 한 장로는 ‘현재 한국 개신교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타락한 상태’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우리사회 거대한 부패 카르텔에 개신교가 전방위·전천후로 개입되어 있다. 우리 앞에 놓인 개혁 과제 가운데 필경 가장 중대한 것이 종교개혁이리라. 가장 기생적이면서도 가장 끈질긴 실재악의 본진이기 때문이다. 영성 없는 교회와 불성 없는 절을 모조리 때려 부수지 않으면 이 땅은 종당 종교좀비의 생지옥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만방의 신불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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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진이 업고 다닐 때부터 본 언니가 늘 예진 엄마라고 부르더니 참사 나고 얼마 안 돼서 “예진 엄마, 아니 아니” 하면서 둘째 아이 이름으로 부르는 거예요. 아휴, 없는 사람 취급하네. 하기야 저 사람들 입장에서는 없는 사람이지...(293쪽-정예진 엄마 박유신)


어디선가 듣고서 어디론가 옮겨 적었지 싶은데 기억이 분명치 않은 얘기 한 토막을 문득 떠올린다. 생후 1년이 채 안된 아기를 잃고 깊은 우울증에 빠진 엄마가 치료 받으러 여러 의사를 전전하고 다녔다. 별다른 효과가 없는 상태로 긴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 날 그다지 기대도 하지 않고 습관처럼 들른 어느 허름한 진료소에서 의사가 말했다. “아기 이름이 무엇입니까?”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엄마는 온 영혼으로 온 육신으로 통곡했다. 우울증은 그날 이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한 사람을 잊는 것은 그 이름을 잊는 것이다.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 이름을 지우는 것이다. 걸핏하면 딸을 “얘!”라 부르는 어머니, 툭하면 아들을 “야!”라 부르는 아버지는 그 한마디로 생때같은 제 새끼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매판 지배층이 416아이들 250명을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 소시민인 나는 2033번째 그 이름을 부름으로써 416아이들 250명을 오늘 여기 살려낸다.


고해인 김민지 김민희 김수경 김수진 김영경 김예은 김주아 김현정 문지성 박성빈 우소영 유미지 이수연 이연화 정가현 조은화 한고운 강수정 강우영 길채원 김민지 김소정 김수정 김주희 김지윤 남수빈 남지현 박정은 박주희 박혜선 송지나 양온유 오유정 윤민지 윤솔 이혜경 전하영 정지아 조서우 한세영 허다윤 허유림 김담비 김도언 김빛나라 김소연 김수경 김시연 김영은 김주은 김지인 박영란 박예슬 박지우 박지윤 박채연 백지숙 신승희 유예은 유혜원 이지민 장주이 전영수 정예진 최수희 최윤민 한은지 황지현 강승묵 강신욱 강혁 권오천 김건우 김대희 김동혁 김범수 김용진 김웅기 김윤수 김정현 김호연 박수현 박정훈 빈하용 슬라바 안준혁 안형준 임경빈 임요한 장진용 정차웅 정휘범 진우혁 최성호 한정우 홍순영 김건우 김건우 김도현 김민석 김민성 김성현 김완준 김인호 김진광 김한별 문중식 박성호 박준민 박진리 박홍래 서동진 오준영 이석준 이진환 이창현 이홍승 인태범 정이삭 조성원 천인호 최남혁 최민석 구태민 권순범 김동영 김동협 김민규 김승태 김승혁 김승환 남현철 박새도 박영인 서재능 선우진 신호성 이건계 이다운 이세현 이영만 이장환 이태민 전현탁 정원석 최덕하 홍종용 황민우 곽수인 국승현 김건호 김기수 김민수 김상호 김성빈 김수빈 김정민 나강민 박성복 박인배 박현섭 서현섭 성민재 손찬우 송강현 심장영 안중근 양철민 오영석 이강명 이근형 이민우 이수빈 이정인 이준우 이진형 전찬호 정동수 최현주 허재강 고우재 김대현 김동현 김선우 김영창 김재영 김제훈 김창헌 박선균 박수찬 박시찬 백승현 안주현 이승민 이승현 이재욱 이호진 임건우 임현진 장준형 전현우 제세호 조봉석 조찬민 지상준 최수빈 최정수 최진혁 홍승준 고하영 권민경 김민정 김아라 김초예 김해화 김혜선 박예지 배향매 오경미 이보미 이수진 이한솔 임세희 정다빈 정다혜 조은정 진윤희 최진아 편다인 강한솔 구보현 권지혜 김다영 김민정 김송희 김슬기 김유민 김주희 박정슬 이가영 이경민 이경주 이다혜 이단비 이소진 이은별 이해주 장수정 장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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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년 동안은 집에 있으면 나가고 싶고 나가면 또 불안하고 그런 게 반복이었어요. 마음이 계속 불안해. 이 불안감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288쪽-남지현 엄마 전옥)


엄마가 아버지한테 매 맞는 것을 보면서 딸은 엄마와 똑같은 통증과 공포에 얼어붙는다. 엄마가 그런 삶을 왜 이어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절망과 불안에 사로잡힌다. 이것은 내재화된다. 결국 그 딸도 어머니와 같은 삶의 경사를 따라 미끄러진다.


남지현을 잃어버린 전옥의 저 불안도 본질상 이와 다르지 않다.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시시각각 죽어가는 딸의 모습을 지켜본 엄마는 언제 어디서나 그 차디찬 바닷물과 마주친다. 공포가 범람해 불안이 된다. 불안의 시간은 어제도 오늘이고 내일도 오늘이다. 불안의 공간은 집안도 바다고 집 밖도 바다다. 도망갈 짬도 없고 숨을 틈도 없다.


경험 이전의 존재론적 차원에서 보면 엄마와 딸은 연속성이 강한 생명 네트워크다. 급격한 분리는 겉잡을 수없는 불안을 몰고 온다. 딸과 분리되었을 때 느끼는 엄마의 불안은 딸 이외의 어떤 사람도 감지하지 못한다. 그 딸이 없다. 불안은 고립된다.


남지현 엄마 전옥은 고립에서 벗어났을까. 지금쯤이면 이미 불안의 검고 푸른 눈동자를 웅숭깊게 들여다보는 법을 넉넉히 터득했으리라. 저 416영성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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