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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셋째 구비-고통을 정확히 드러내게 하다

 

어두운 감정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억압, 퇴출의 헛된 노력이 습관으로 쌓인 마음병 앓는 사람에게는 드러난 감정과 숨겨진 감정, 그러니까 몸 반응으로서 감정 사이가 어긋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거듭되는 삶의 실패가 내면에 고착시킨 부정적 예기가 밖으로 드러낸 낙관적 소망을 제압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픈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무심코 비관적 소망을 드러내는 방어 전략을 씁니다. 두 가지 이득이 있습니다. 바라는 대로실패하더라도 덜 실망스럽고, ‘요행히성공하면 갑절로 기쁘니 말입니다. 이런 삶이 지속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성취가 안 되거나, 되더라도 미미합니다. 마음병 앓는 이에게 거의 전혀 예외가 없습니다.


이 어긋남을 따뜻하게 받아 안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앞 구비에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해야 할 일은 유심히, 그러니까 대놓고 숨겨진 감정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정면으로 작정하고 어긋나게 하 것이지요. 부정적 평가 때문에 억압되어 있던 감정을 예술적으로 정확히 드러내면 됩니다. 무심코 하는 방어는 병적 증상이지만 유심히 하는 표현은 치료 행동입니다. 이 구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억압되고 비틀린 표현을, 예술적으로 정확히, 연극배우가 연기하듯, 각가지 감정의 결은 물론 몸 증상까지 섬세하게 감지하여 낱낱이 표현함으로써 아픈 사람 스스로 그 억압과 비틀림에서 해방되도록 하는 전복이니 말입니다.

 

감정은 실제 사건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것을 생생하고 자세하게 떠올려야 더 좋은 치료 효과가 나타납니다. 특히 충격적인 외상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가령 성폭행처럼 큰 사건이라면 내부 장기의 느낌과 근육 상태는 물론 신체 발육 상태까지 고려하되 무리해서는 안 됩니다. 고통을 재현시킬 뿐만 아니라 증상을 심화시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떠올리는 것은 안 됩니다. 정확한 자기 언급self reference 없는 떠올림은 치료가 아닙니다. 자기 언급이 해방의 시공간을 창조하고, 그 해방은 감흥을 일으키고, 그 감흥이 자유의 세계로 나아가게 합니다. 반드시, 그렇다고, 그래서 아프다고 예술적으로 정확히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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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구비-두 팔 벌리다

 

진부한 말이지만 진정한 상담이 이루어지려면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물론 열림의 결은 같고도 다릅니다. 의뢰하는 사람은 자신의 곡절을 스스로 평가, 억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의뢰 받 사람은 의뢰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선입견 없이, 자신의 지식을 전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을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의뢰 받 사람은 가르치거나 깨우치려고 덤비지 않고 공감의 말부터 건넬 따뜻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의뢰 사람은 지나치게 기대지도 말고, 어디 무슨 말 하는지 보자, 하지도 말고 맑은 마음으로 들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두 팔을 벌리고 마주섭니다. 신뢰 내음을 맡는 순간 입을 엽니다.

 

둘째 구비-맞장구치다

 

가령, 제가 어떤 사람과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습니다. 그때 마침 친한 친구가 지나가다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다가와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준다면 화가 더 날까요, 덜 날까요? 임상 현장에서 물었더니, 많은 사람들이 더 난다, 고 대답했습니다. 싸움의 기세를 잡은 것과 화가 더 나는 것을 혼동했기 때문입니다. 덜 난다, 가 답입니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와서 이야기할 때, 듣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두운 감정에 휩싸인 채 하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공감하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어떤 토도 달지 않고 정서적 지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맞장구치는 것입니다.

 

맞장구치는 것은 공포·불안, 우울의 어두운 감정을 해석·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끼며 알아차리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로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인 한 피할 수 없는 아픔이 있다는 진실에 저항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불가피하지 않은 경우라도 반드시 그만한 곡절이 있다는 진실에 유념하는 것입니다. 불가피하든, 선택이든 어두운 감정 그 자체로 악은 아닙니다. 허나 우리는 어둠을 악으로 인식합니다. 아픔을 괴로움으로 받아들인 경험이 윤리적 인식으로 둔갑한 탓입니다. 오류지만 현실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둠을 악이라 혐오하는 격정도 분명히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해독解毒이 가능합니다.

 

인기 높은 자기계발서나 마음 수련 단체들은 대개 부정 감정을 내다 버려라, 부정 감정을 기억하고 일으키는 대신 긍정 감정으로 채우라고 가르칩니다. 저 유명한 긍정주의입니다. 이 긍정주의는 세계의 진실을 반 토막 이하로 만드는 위험한 사기술입니다. 정녕 부정 감정에 휘감기고 싶지 않다면 그 답을 긍정주의에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긍정주의 또한 긍정 감정에 휘감기는 격정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이 격정에서 놓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독입니다. 해독하려면 오히려 이 격정을 정서적으로 지지하고 맞장구쳐야 합니다. 맞장구치면 공포·불안, 우울의 격정을 덜 수 있습니다. 그 오솔길에서 치료의 큰길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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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린 상담-식물은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물질들을 일부러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물질들이 어떤 원리로 인간의 병을 치료할까요? 인간에게 치료 효과를 내는 거의 대부분의 물질은 식물이 자신을 직접 공격하는 초식동물의 유충 따위를 살상하거나 번식을 가로막기 위해 만들어낸 독성 물질입니다. 작은 벌레들에게는 치명적인 독이지만 커다란 인간에게는 독이 아닙니다. 극소량의 독은 입자(에너지) 아닌 파동(정보)으로 작용해 병의 성격(진동수)을 바꿉니다. 병을 잘라낼 무엇에서 삶의 일부로 전화해냅니다. 이것이 바로 동종치료입니다. 동종치료는 그린세러피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동종치료는 식물 생명 원리에 터합니다. 식물은 주어진 조건을 회피(이동/분리)할 수 없습니다. 직시하고 인정함으로써 전방위·전천후로 솔루션을 혁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한 번 뿌리내리면 그 땅을 떠날 수 없는 것이 식물 생명의 근본 조건이듯 인간의 삶에도 불가항력적 조건 때문에 병드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이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동종정신치료를 열어가는 수승한 방법이 바로 그린 상담입니다. 그린세러피에서 그린 상담은 코로나블루 치료의 필수 과정입니다. 그린 상담은 그린 약물이 할 수 없는 작용을 통해 아픈 사람과 더불어 그린세러피의 진경으로 나아갑니다.

 

그린 상담은 발화의 주도권이 환자에게 주어지며, 그가 억압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자신의 고통을 말할 때 상기로 말미암아 고통이 작게 더해지는 일이 먼저 일어납니다. 그래서 동종이라 하는 것입니다. 바로 다음 순간, 그 고통이 크게 덜어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자기언급의 치료 효과입니다. 이 치료 효과는 자신이 자신의 고통을 인지하고 이른바 관찰자 시지position of view에 섬으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에너지나 물질 아닌 정보나 각성에도 분명한 치료 능력이 있다는 진실을 그 동안 백색의학은 플라세보라고 왜곡해왔습니다. 동종치료는 필히 의학 중심에 자리매김 되어야만 합니다.


동종치료는 치료자의 도움으로 더 앞으로 나아갑니다. 환자의 말을 해석·평가 없이 경청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신뢰rapport를 얻은 치료자는 환자를 삶의 더 큰 진실로 안내합니다. 부분에 치우침으로써 격화되고, 격화됨으로써 더 치우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 병을 축출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 승화시키는 것이 더 생명적이라는 진실에 도달하게 합니다. 두 팔 벌리고, 맞장구치고, 고통을 정확히 드러내게 하고, 맞은편 진실을 보이고, 비대칭적 대칭구조를 품게 하고, 스스로 대칭을 깨뜨리게 하고, 비결정의 세계에 맡기고, 마침내 절벽 끝에서 밀어버려 날아오르도록 하는 여덟 구비 내내 치료자는 환자 뒤를 발맘발맘 따라갑니다.


* 이하 그린 상담 여덟 구비와 비망록의 내용은 제 책 인문과 한의학, 치료로 만나다의 상담 부분을 그린세러피의 문맥에 맞게 손 보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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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린 약물-프로작이 제약회사 지상낙원 건설의 총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감언이설로 의료대중을 속인 결과입니다. 의료대중을 속인 밑바탕에는 우울증이 뇌질환이며, 뇌에 프로작만 공급하면 잘 낫는다는 백색의학의 개소리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우울증을 뇌질환이라 하는 오류는 마음을 뇌라고 보는 백색과학에 젖줄을 대고 있습니다. 마음은 뇌가 아닙니다. 뇌는 마음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뇌도 마음입니다. 그렇게 피부도 소화기관도 심지어 세포도 놀랍게 분자도 마음입니다. 아니 특히 장 점막 바깥에 살고 있는 미생물도 마음입니다. 그린 약물은 바로 이 진실에 터합니다.

 

그린 약물은 뇌만을 표적 삼아 약을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먼저 그런 효과를 내는 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프로작은 뇌로만 가지 않아서 2개월가량 복용하면 소화기관을 망가뜨립니다. 프로작의 폭력성과 전혀 달리, 그린 약물은 무엇보다 장 점막 바깥에 살고 있는 미생물을 보호합니다. 그 미생물이 세로토닌의 95% 이상 생산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린 약물은 장 신경을 안정시킵니다. 장 신경에서 대뇌중추로 향하는 정보 회로가 대뇌중추에서 장 신경으로 향하는 정보 회로보다 9배 많기 때문입니다. 그린 약물은 인간의 몸이 식물과 같지는 않지만 네트워크 구조·운동성을 지닌다는 진실에 부응합니다.

 

의 경계를 두고 갈라지지만 식물과 동물 간 생명 구조·운동성에는 연속성이 있기 마련입니다. 양자물리학 어법으로 말하면 모든 구분은 본질적이라기보다 상태함수 차이니까 동식물의 구분도 정도 차이입니다. 그 동물성 정도의 극단에 인간이 있습니다. 그 극단의 극단이 바로 질병입니다. 치료는 이 동물성의 극단의 극단을 적절한 식물성, 그러니까 분산 네트워크로 되돌려놓는 것입니다. 그린 약물만이 이 일을 온전히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린 약물은 또 하나의 극단인 백색 화학합성물이 아니라 분산 네트워크인 식물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 둘 이상 식물이 어울려 네트워킹이 증폭되므로 금상첨화입니다.

 

기왕 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 얘기가 나왔으니 프로작을 거절하고 복용할 만한 그린 약물 하나를 대표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세로토닌이나 그 전구물질인 트립토판의 함량을 조절해 난치성 우울증을 치료하는 식물로 묏미나리가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의학 약명은 시호柴胡로서 그 뿌리를 약으로 씁니다. 물론 시호 하나만 쓰는 처방은 전혀 없습니다. 시호를 주된 약재로 해서 적게는 네 가지, 많게는 열한 가지 약재를 함께 달이거나 가루로 만들어 복용하는 저명한 처방이 열 개에 달합니다. 그 중 함박꽃나무 뿌리(작약), 탱자나무 미숙과(지실), 잘 아시는 감초를 더해 만든 사역산四逆散이라는 처방은 이른바 반응성우울증을 아주 잘 치료합니다.

 

사역산은 물론 우울증만 치료하지 않습니다. 우울증은 대부분 다양한 통증을 동반합니다. (우울증을 염증으로 이해하는 최신 경해에 따른다면 아주 당연한 현상입니다.) 이 통증에 대처하는 데 시호 관련 처방 중 가장 탁월합니다. 이런 관점을 종합하면 사역산은 각종 심신상관질환에 광범위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여성의 갱년기증후군이 나타내는 다양한 심신장애를 치료하는 데 매우 중요한 약물입니다. 우울, 불안, 불면이 뒤엉켜 있고 자신의 심장에 문제가 있다고 반복적으로 생각하는 갱년기 여성에게는 거의 성방聖方에 가깝습니다. 이 정도면 프로작을 딱 잘라 거절할 만한 근거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린세러피는 백색의학처럼 세로토닌이나 노르아드레날린을 우울증의 단일 원인으로 지목하고 그 단일 물질을 합성해 쓰지 않습니다. 예컨대 도파민, 아세틸콜린, 감마아미노부티르산 같은 물질과도 관련시키며 비선형적·복합적 메커니즘을 염두에 둡니다. 의당 진단도, 그린약물 처방도 그런 이치를 따릅니다. 백색의학처럼 사람이 달라도 같은 화학합성물을, 그나마도 아니면 말고 식으로 던지지 않습니다. 우울증이라는 병명보다 그 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저마다 다른 상태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 주의해서 세밀하게 약물을 조절하고 구성합니다. 그린약물 입장에서 보면 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는 약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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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색 처방의 거절-정색하고 먼저 말씀드립니다. 그린세러피의 처방보다 어떤 의미에서 더 중요한 것은 백색 처방을 거절하는 용기입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죽은 뒤까지 우리는 포르노적으로 의료화한 사회의 주류 패러다임인 백색의학에 지배당합니다. 한 개인이 이를 거절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회적 분위기를 넘어 견고한 제도며 압도적 문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반생명적 백색의학을 거절해야만 인간 생명의 마지막 존엄성이나마 지킬 수 있습니다. 특히 백색 정신의학은 모든 백색의학 가운데 가장 우스워서 무서운 협잡입니다. 코로나블루는 어쩌면 이 협잡을 간파하고 응징하라는 경보를 인류에게 발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백색 정신의학이 왜 협잡일까요? 폴 몰로니가 쓴 가짜 힐링에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정신의학은 그 근간에서 과학적으로 (어쩌면 윤리적으로도) 이미 파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모습의 정신의학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사회적 권력의 끄나풀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거대한 음모의 산물이다.”(90-91) 피터 괴체가 쓴 위험한 제약회사에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정신의학은 제약회사들의 지상낙원이다. 정신장애의 정의가 모호하고 조작하기 쉽기 때문이다.·······정신과 전문의는 다른 전공에 비해 제약회사들이 제공하는 교육에도 더 많이 참여한다.”(330)

 

폴 몰로니의 지적에 피터 괴체는 정확한 근거를 제공해줍니다. 거대한 음모의 주체를 까밝혀줍니다. 파산의 실체를 드러내줍니다. 제약회사는 정신병을 발명하고 폐기하는 실질적 권한을 돈으로 샀습니다. 돈 되는 병을 만들고 그 병에 걸린 환자를 만든 다음 그 환자들에게 먹일 약만 만들면 백색정신과의사들이 알아서 팔아줍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른 기회로 돌리고 딱 하나만 말씀드립니다. 초국적 제약회사 체제가 만들어낸 우울증상 완화 화학합성물 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 예컨대 프로작은 유사 암페타민 효과가 있습니다. 더 무서운 양극성장애의 유발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것을 약이라 부르고 복용해야 할까요? 딱 잘라 거절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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