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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 잃어버린 식물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생태적 의미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 지음, 박윤정 옮김 / 양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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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자라는 동안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해 복합적인 화학물질을 만들어낸다. 항생제, 소염제, 진통제, 점액, 고무, 수지, 타닌 같은 것이다. 이 화학물질이 공기와 결합하거나 공기 중에 노출되면 높은 반응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식물 전체에 퍼져 있는 세포 속에 따로 저장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생산을 늘리고, 조직을 통해 신속하게 전달한다.(211쪽)
생후 6개월 만에 걸은 것에서 시작해 나는 생의 중요한 솔루션을 거의 모두 홀로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외과 수술이나 치과 치료를 제외하고 내가 겪은 주요 질병을 홀로 치료했다. 우울증을 삶의 한복판에서 스스로 발견하고 진단하고 치유해냈다. 뒷날 한의사가 되어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우울증의 정의, 진단의 표준, 처방을 독자적으로 만들어냈다. 우울증과 연동된 질병인 혈관운동신경성비염도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
질병 치료뿐 아니라 다른 삶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2곳), 대학원(2곳)을 다니는 동안 부모 포함 타인이 등록금 전액을 대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일부나마 대준 적이 딱 3번 있었다. 가족친지는 이를 당연히 여겼고, 그 밖의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낭·풀의 전방위·전천후 솔루션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만, 나는 내가 낭·풀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판단의 기저에 이런 사실을 포함시킨다.
뿌리 내린 자리에서 옮겨가지 못하는 낭·풀이 전방위·전천후 솔루션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듯, 나는 고비마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 밀려 떨어진 벼랑 아래서 무슨 수를 쓰든지 홀로 기어 올라와야만 했다. 기어 올라올 때 힘든 것도 그렇지만 벼랑 아래서 듣곤 했던 말이 언제나 폐부를 깊숙이 쑤셔댔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인간만이 하는 말이다. 낭·풀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바야흐로 낭·풀이 하는 다른 말을 들을 때다.
낭·풀이 하는 다른 말을 알아들으려면 인간은 “초감각”(우종영의 『바림』 192쪽)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초감각은 뭘까? 참선, 명상, 굿, 심지어 마약을 통해야 가 닿을 수 있을까? 대부분 그렇게 한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신비주의와 과학주의의 경계에서 나 스스로 솔루션을 만들어내려 한다. 아직 찾지 못했지만, 나는 이 역설의 길만이 낭·풀의 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