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 잃어버린 식물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생태적 의미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 지음, 박윤정 옮김 / 양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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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숲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한다.......새로운 지역에 정착하기 전에 개척 종 식물을 먼저 보내 준비한다.......이들의 출현은 식물종의 대규모 이동.......생태계의 느린 변화를 예고한다.(243, 249)

 

북미대륙 서남부 소노라 사막에는 천년도 넘는 세월에 걸쳐 싹을 틔우고 자라나면서 식물 군도archipelago, 그 너머 또 하나의 생태계를 일으키는 아이언우드가 있다. 아이언우드가 이끄는 숲의 이동에 관해 이 책은 20쪽에 걸쳐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기 전에 개척 종 식물을 먼저 보내 준비한다.는 문장이 나를 오랫동안 부여잡고 있었다.

 

전쟁 중인 군대에서 척후를 파병하든, 유목민이 새로운 목초지를 찾기 위해 선발대를 파견하든, 이 모두 숲이 개척 종 식물을 먼저 보내 준비하는 이치를 따른 것이다. 오늘의 인간은 숲이 이동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무지는 자기부정이다. 자기부정은 배은망덕이다. 숲의 이동이 인간 진화를 이끌었기 때문에 그 과정 자체가 인류의 역동적 자궁이니 말이다.

 

바로 이 순간에도 천천히 숲은 이동하고 있다. 인간은 배은망덕의 속도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숲의 영으로 복귀해야 한다. 복귀는 진화의 철회가 아니다. 숲의 생명네트워킹 안에서 인간 진화가 무엇인지 깨달아 겸허한 참여를 모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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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 잃어버린 식물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생태적 의미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 지음, 박윤정 옮김 / 양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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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테리아는 복잡한 육상생활 형태를 만들어내면서 그들 자체의 박테리아 군집을 형성한다. 이것이 바로 움직이는 근계, 즉 진짜로 살아 있는 땅을 만든다. 포유류와 초식 곤충, , 벌레, 그 외의 다른 토양생물은 식물을 먹은 다음, 그들 내부에 있는 박테리아 군집을 통해 이를 처리한다. 그리고 똥거름형태로 땅 위나 땅 속으로 옮긴다. 이 움직이는 토양 군집은 식물 군락과 긴밀하게 얽혀 있는 생태계 전역으로 이동하면서, 식물 화학물질의 분해와 분배를 조절한다.(230)

 

살아 있는 개체 현상으로는 불가능하나 사실상으로 낭·풀이 이동하는 방식은 세 가지다. 동물의 몸과 일체를 이루는 것, 숲을 이루는 것, 이 둘은 별도로 이야기할 기회를 기다린다. 토양 군집을 이루는 것이 오늘 이야기다.

 

땅이 움직인다고 말하면 우리는 퇴적, 풍화, 지각변동, 대륙이동과 같은 거대 현상을 떠올린다. 그나마도 교육을 매개로 한 정보 차원에서 안다고 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일어나므로 일상의 감각에서라면 산천은 의구하다.

 

·풀이 박테리아 군집 덕분에 토양 군집으로 변신해 생태계 전역으로 이동하는 일은 장구한 세월이 지나가도 눈에 띄지 않는 소미 현상이므로 산천의구에조차 끼지 못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거대 이동도 이 소미 이동의 영향 아래 있다.

 

토양 군집 이동은 물적·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질적·구성적 이동이다. 이로써 땅의 화학이 이동하고, ·풀이 이동하고, 숲이 이동하고, 바이오매스 균형추가 이동하고, 조수 흐름이 이동하고, 지축이 이동하고, 마침내 지구 생태계 전체가 이동한다.

 

바이러스가 인간 전체 풍속도를 단박에 통째로 바꾼 오늘의 사태는 인간이 스스로를 전복하지 않아서 일어난 실패다. 가이아의 감정과 표정을 천변만화 역동 풍경으로 이끌고 가는 낭·풀의 소미한 몸에 인간은 한시바삐 스스로 가 닿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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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 잃어버린 식물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생태적 의미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 지음, 박윤정 옮김 / 양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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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동물이 자신을 너무 많이 먹지 못하도록 수백 가지 화학물질을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식물은 이 보호용 화학물질을 높은 수치로 분비하기 전까지 초식행위의 18%(식물에 따라 10~25%까지)정도를 견디거나 심지어 즐기기까지 한다.

  식물과 동물은 오랫동안 더불어 진화해왔다. 이들의 관계 속에는 수많은 세월에 걸친 상호의존성이 반영되어 있다.......식물 중에는 처음부터 동물에게 먹힐 것을 염두에 두고 잎을 키우다가 동물의 초식행위가 끝나면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하는 것도 있다. 식물의 물질대사와 호흡, 대사물질의 이동을 자극하는 것은 대부분 동물의 초식행위다. 때문에 식물은 이들의 초식행위가 일정 수준을 넘을 경우에만 많은 양의 방어용 화학물질을 분비한다.(215)

 

동물의 초식행위는 생명 이치에 따른 것이다. 독립영양생물이 아니므로 낭·풀을 먹음으로써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생각을 반영하는 윤리적 용어로 그 행위를 묘사, 심지어 규정하는 것은 본질의 호도다. 설혹 그 행위에 어떤 교묘한 전략이 개입하거나 폭력적인 면모가 포함된다 하더라도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 이치상 그보다 먼저 낭·풀의 방어나 수분을 위한 여러 가지 작용에 대해서 인간중심주의를 원리적으로 포기해야 한다. 인간의 용어를 쓰려면 동식물에게 인간과 적어도 같은 존재 대우부터 해야 함에도, 이를 누락한 채 그들의 생태에 선악의 관점을 드러내는 표현을 하는 짓은 참람한 왜곡이다. 이 문제의식은 지구 생태계 전체의 생명네트워킹에서 일어나는 상호의존운동을 이야기할 때, 모든 장면마다 유지되어야 한다.

 

향모를 땋으며에서 로빈 월 키머러는 고유명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는 인간 관례가 낭·풀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판한다. 북미대륙 원주민 부족인 그에게 이 문제는 극히 중요하다. 그에게 낭·풀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전통은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도 공유하고 있다. “견디거나 심지어 즐기기까지 한다.는 표현은 적절하다. 행동과 분리되지 않는 낭·풀의 고유정서를 모르니까 없다 하고 기계적 상호작용으로 몰면 낭패다. 상상컨대 낭·풀은 인간과는 비교조차 못할 섬세하며 예민한 초감각을 구가하고 있으리라. 그 초감각에 실려서 낭·풀은 동물과 "더불어 서로" 생을 충만하게 빚어간다. 홀로 스스로 빚는 고유한 독립생명과 더불어 서로 빚는 연대생명의 네트워킹에서 역설의 창발이 일어난다. 창발은 낭·풀의 면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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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화문 옆에는 500세 가량의 은행나무 한 분이 살고 계시다.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창덕궁을 드나들었지만, 그 동안 한 번도 주의를 기울인 적이 없었다. 정색하고 살펴보니, 그 품에 작은 나무들을 키우고 계셨다. 소나무와 측백나무로 보인다. 두 나무가 기생식물이 아님은 물론이다. 나무에 빙의되어 사는 요즘, 내 눈에 이 광경은 의미심장무인지경이다. 오늘은 경의를 표하며 돌아가지만, 오늘 이후 죽는 날까지 마음은 여기 머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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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4-16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정말 소나무가 보니에요. 측백나무는 못찾았지만

경이롭습니다

bari_che 2021-04-19 11:18   좋아요 1 | URL
소나무 오른쪽 비스듬히 선 하얀 줄기가 측백으로 보입니다. 잎 모슾이 그렇습니다.
 
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 잃어버린 식물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생태적 의미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 지음, 박윤정 옮김 / 양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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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자라는 동안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해 복합적인 화학물질을 만들어낸다. 항생제, 소염제, 진통제, 점액, 고무, 수지, 타닌 같은 것이다. 이 화학물질이 공기와 결합하거나 공기 중에 노출되면 높은 반응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식물 전체에 퍼져 있는 세포 속에 따로 저장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생산을 늘리고, 조직을 통해 신속하게 전달한다.(211)

 

생후 6개월 만에 걸은 것에서 시작해 나는 생의 중요한 솔루션을 거의 모두 홀로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외과 수술이나 치과 치료를 제외하고 내가 겪은 주요 질병을 홀로 치료했다. 우울증을 삶의 한복판에서 스스로 발견하고 진단하고 치유해냈다. 뒷날 한의사가 되어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우울증의 정의, 진단의 표준, 처방을 독자적으로 만들어냈다. 우울증과 연동된 질병인 혈관운동신경성비염도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

 

질병 치료뿐 아니라 다른 삶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2), 대학원(2)을 다니는 동안 부모 포함 타인이 등록금 전액을 대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일부나마 대준 적이 딱 3번 있었다. 가족친지는 이를 당연히 여겼고, 그 밖의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낭·풀의 전방위·전천후 솔루션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만, 나는 내가 낭·풀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판단의 기저에 이런 사실을 포함시킨다.

 

뿌리 내린 자리에서 옮겨가지 못하는 낭·풀이 전방위·전천후 솔루션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듯, 나는 고비마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 밀려 떨어진 벼랑 아래서 무슨 수를 쓰든지 홀로 기어 올라와야만 했다. 기어 올라올 때 힘든 것도 그렇지만 벼랑 아래서 듣곤 했던 말이 언제나 폐부를 깊숙이 쑤셔댔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인간만이 하는 말이다. ·풀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바야흐로 낭·풀이 하는 다른 말을 들을 때다.

 

·풀이 하는 다른 말을 알아들으려면 인간은 초감각”(우종영의 바림192)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초감각은 뭘까? 참선, 명상, 굿, 심지어 마약을 통해야 가 닿을 수 있을까? 대부분 그렇게 한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신비주의와 과학주의의 경계에서 나 스스로 솔루션을 만들어내려 한다. 아직 찾지 못했지만, 나는 이 역설의 길만이 낭·풀의 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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