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 잃어버린 식물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생태적 의미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 지음, 박윤정 옮김 / 양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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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동물이 자신을 너무 많이 먹지 못하도록 수백 가지 화학물질을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식물은 이 보호용 화학물질을 높은 수치로 분비하기 전까지 초식행위의 18%(식물에 따라 10~25%까지)정도를 견디거나 심지어 즐기기까지 한다.

  식물과 동물은 오랫동안 더불어 진화해왔다. 이들의 관계 속에는 수많은 세월에 걸친 상호의존성이 반영되어 있다.......식물 중에는 처음부터 동물에게 먹힐 것을 염두에 두고 잎을 키우다가 동물의 초식행위가 끝나면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하는 것도 있다. 식물의 물질대사와 호흡, 대사물질의 이동을 자극하는 것은 대부분 동물의 초식행위다. 때문에 식물은 이들의 초식행위가 일정 수준을 넘을 경우에만 많은 양의 방어용 화학물질을 분비한다.(215)

 

동물의 초식행위는 생명 이치에 따른 것이다. 독립영양생물이 아니므로 낭·풀을 먹음으로써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생각을 반영하는 윤리적 용어로 그 행위를 묘사, 심지어 규정하는 것은 본질의 호도다. 설혹 그 행위에 어떤 교묘한 전략이 개입하거나 폭력적인 면모가 포함된다 하더라도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 이치상 그보다 먼저 낭·풀의 방어나 수분을 위한 여러 가지 작용에 대해서 인간중심주의를 원리적으로 포기해야 한다. 인간의 용어를 쓰려면 동식물에게 인간과 적어도 같은 존재 대우부터 해야 함에도, 이를 누락한 채 그들의 생태에 선악의 관점을 드러내는 표현을 하는 짓은 참람한 왜곡이다. 이 문제의식은 지구 생태계 전체의 생명네트워킹에서 일어나는 상호의존운동을 이야기할 때, 모든 장면마다 유지되어야 한다.

 

향모를 땋으며에서 로빈 월 키머러는 고유명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는 인간 관례가 낭·풀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판한다. 북미대륙 원주민 부족인 그에게 이 문제는 극히 중요하다. 그에게 낭·풀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전통은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도 공유하고 있다. “견디거나 심지어 즐기기까지 한다.는 표현은 적절하다. 행동과 분리되지 않는 낭·풀의 고유정서를 모르니까 없다 하고 기계적 상호작용으로 몰면 낭패다. 상상컨대 낭·풀은 인간과는 비교조차 못할 섬세하며 예민한 초감각을 구가하고 있으리라. 그 초감각에 실려서 낭·풀은 동물과 "더불어 서로" 생을 충만하게 빚어간다. 홀로 스스로 빚는 고유한 독립생명과 더불어 서로 빚는 연대생명의 네트워킹에서 역설의 창발이 일어난다. 창발은 낭·풀의 면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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