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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4월
평점 :
곰팡이는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는 그 존재를 알아보지 못한다. 곰팡이는 우리 안에도 있고 우리 주위에도 있다. 곰팡이는 우리와 우리 생존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유지해준다. 이미 수십 억 년 전부터 그래왔듯,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곰팡이는 생명이 생기는 과정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그러나 곰팡이 대부분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며, 곰팡이 종種 90% 이상은 아직 기록으로 정리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곰팡이는 알면 알수록 이해하기 힘든 생명체다.(23쪽)
스티브 테일러 『자아폭발』 주해리뷰1<한국어판 서문-거대한 것은 거짓된 것이다>(2019. 1. 9.)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의문이 든다.
“거대/위대한 무언가가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까?”
각기 다른 영혼 사이의 네트워킹 사건으로서 나를 메신저 삼는 그 “무언가”는 소소하고 미미하다. 소미하기에 빚어내는 무한한 결과 겹으로 말미암아 천지간 가득해서 크게 여겨진다. 크게 여겨지나 실체로 포착되지 않는다. 실체로 포착되지 않는 상호작용이어서 메시지를 지닌다. 그 메시지를 감지하고 전달하는 메신저를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군자라 한다. 『중용』은 말한다. 군자지도비이은君子之道費而隱. 대우 명제로 바꾸면 명료해진다. 소소하고 미미해서 포착되지 않는 상호작용인 메시지가 아니면 군자가 전할 수 있는 말道이 아니다. 아니, “거대한 무언가”는, 그것이 질량이든 에너지든 도무지 메시지를 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거대한 무언가의 메신저”를 자처하는 자가 나타났다면 그 메신저도 가짜고 그를 보낸 “거대한 무언가”도 가짜다.
진실에서도 진리에서도 거대한 실체는 없다. 소미한 실체들의 동시적 군무가 그려내는 찰나적 덩어리 실재로 떴다 사라질 뿐이다. 이 진실, 이 진리를 아는 것이 참 앎이다. 거짓 앎은 거대를 휘감은 질병이며 악이다.
물론, 이때 내 사유는 일차적으로 휴먼스케일에, 그 다음엔 직접 경험이 가능한 동물에까지만 미치는 자장磁場 안에 머물렀다. 실로 근 3년 만에 낭/풀과 박테리아, 그리고 바이러스를 돌아 여기, 곰팡이에까지 이르렀다. 이 과정은 원리적 차서를 따랐다기보다 내 공부 인연을 따라 진행되었다. 그 우연이면서도 필연인 출발점을 낭/풀이 놓아주어 놀랍고 고맙다.
군자지도비이은君子之道費而隱에서 주어를 곰팡이로 바꾸어 번역하면 그대로 “곰팡이는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는 그 존재를 알아보지 못한다.”가 된다. 알아보지도 못하는 그 곰팡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며,” “우리와 우리 생존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유지해준다.” 뿐만 아니라, “생명이 생기는 과정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다시 주어를 되돌리면, 군자의 도가 우리와 우리 생존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유지해주고 생명이 생기는 과정에 변화를 일으킨다. 군자의 도와 곰팡이 생명 본성은 불가피하게 일치한다.
군자지도비이은君子之道費而隱을 담은 『중용』 제12장은 “군자의 도는 그 실마리가 부부 사이에서 만들어진다.”는 내용을 당연히 담고 있다. 필부필부匹夫匹婦가 부부 맺어 성性을 핵심으로 하는 사랑 행위로써 생명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일에서 군자의 도가 비롯한다는 말이다. 곰팡이 실들이 ENTANGLE하여 생명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일에서 우주가 비롯한다는 진리를 휴먼스케일로 축소한 말이다.
오늘을 살면서 고전 읽기가 필요한 까닭은 딱 하나다. 선현이 자기 맥락에서 통찰한 맥락 너머 보편진실을 오늘 내 맥락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내, 다르고 또 같은 진리가 결결이 펼쳐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고전을 고전으로 만든 우파 에피고넨이 역사의 주류가 되면서 고전古典은 고전固典으로 영락했다. 그 固典이 이른바 경전이다.
경전에 고전이 갇히게 된 근본 원인은 우파주류 인간이 인간 자신을 경전으로 받들었기 때문이다. 경전 인간이 이른바 신이다. 이른바 신은 여러 거대 양상―영성, 화폐, 예술, 과학, 사상, 문화로 가현한다. 거대가현에 심취해 우주 지름까지 계산해내는 동안 “곰팡이 종種 90% 이상은 아직 기록으로 정리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결국 같은 지점에서 만날 지식이라며 원론적 여유를 부리기에는 그 쏠림이 치명적이다. 우주 지름에 대한 지식이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기 전에 곰팡이에 대한 무지가 인류 공멸을 초래할 날이 박두하고 있다.
곰팡이가 “알면 알수록 이해하기 힘든 생명체”임이 분명한 이상으로 곰팡이를 알면 알수록 인류 공멸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사실은 더 분명하다. 이해할 수 없는 조그만 생명에게 구원받는 일이 자존심 상한다면 뭐 계속해서 우주가 몇 개인지 세고 있어도 좋다. 나라면 그러지 않겠다. 가늘고 짧은 쇠꼬챙이로 피부 몇 군데를 찌르는데 어떻게 안면마비가 치료되는지 이해하지 못해 툴툴대면서도 한사코 찾아오는 중년 남자사람에게 그 쇠꼬챙이 찔러 완치 팔부능선 넘어선 사실을 확인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