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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4월
평점 :
곰팡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식물과 한 덩어리를 이루며 존재했지만, 사실은 동물과 더 가깝다. 곰팡이를 식물에 더 가까이 놓는 일은 곰팡이 한 살이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학자들이 자주 저지르는 분류상 실수다. 분자 수준에서 보면 곰팡이와 인간은 여러 생화학적 혁명을 똑같이 겪었을 정도로 유사하다.(32쪽)
분류 습성은 차지고 질기다. 식물 아니면 동물이라는 전제를 곰팡이 ‘우선순위’ 주장하는 이 책 저자조차 불식하지 못하니 말이다. “식물에 더 가까이 놓는 일”이 “분류상 실수”라면 꼭 “동물과 더 가깝다.”고 해야 할까? 식물 아니면 그만이듯 동물 아니어도 그만 아닐까? 저자는 다른 곳에서 이리 말했다. “버섯은 열매다.”(106쪽)
동물에 가깝다면서? 문맥에 따라서 다르게 표현하는 일이 이치에 더 부합할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식물이냐 동물이냐’는 스펙트럼 문제며 상태방정식 문제다. 앞 이야기 식으로 말하면 물체 아닌 과정이다. 실생활에서 버섯 모습 보고 동물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지만, 맛을 보고 ‘고기보다 더 쫄깃하다’고 말하는 경우는 많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둘 다든 둘 다 아니든 문제 삼는 인간 문제일 뿐 곰팡이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도 아니다. 분류에 편의를 제공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진실을 호도하는 역기능보다 크지 않아서 문제다. 분류와 정체성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 관지를 버려야 있는 그대로 생명에 통짜로 다가갈 길이 열린다.
환자한테서 받는 질문 가운데 흔하기로 치면 “선생님, 제 체질이 뭔가요?”가 세 손가락 안에 들지 싶다. 4상 얘기다. (이른바 8체질 신봉자는 아예 질문도 없이 자기 체질을 내게 통고한다.) 내 대답은 한결같다. “전형적인 체질은 예외 현상입니다. 모든 사람은 각각 다른 어중이떠중이 잡종체질을 지닙니다.”
잡종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4상 경우 특정 체질로 명명된 이외 나머지 특성들도 모든 인간에게 필수적인 생명요소기 때문이다. 필요량과 구성에서 다른 스펙트럼일 뿐이다. 항생제 몇 알에 장 미소생명이 초토화되는 마당에 무슨 불변 체질이 있겠는가. 저자 아버지 당부를 되새긴다. 진실을 향해 “곤두박질치듯” 달려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