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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4월
평점 :
지구상에 있었던―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드라마틱한 사건 중 많은 수가 곰팡이 활동에서 비롯했다. 식물이 물을 떠나 지상으로 올라온 사건은 겨우 5억 년 전에 일어났다. 그전까지, 그러니까 식물이 스스로 땅속에 뿌리를 내리기 전까지는 곰팡이가 뿌리를 대신해주었다. 오늘날 지구에 존재하는 식물 90% 이상이 균근mycorrhizal 곰팡이에게 생존을 의지한다.......태곳적부터 시작된 이 협동관계에서 모든 생명이 비롯했으며 그 미래도 식물과 곰팡이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24쪽)
고백하자면 낭/풀 공부할 때, 내 동공을 흔든 존재는 균‘근’이었지 ‘균’근이 아니었다. 물론 “식물이 스스로 땅속에 뿌리를 내리기 전까지는 곰팡이가 뿌리를 대신해주었다.”는 사실은 알지도 못했다. 동물, 특히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낭/풀에게로 가는 일에 온통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부지불식간에 “식물중심주의”(271쪽) 영지로 몸이 들어섰던 셈이다. 이는 단순한 치우침이 아니다. 부분 오류에 갇히는 유혹을 흔연히 품고 즐긴 감옥이었다. 이 즐거운 감옥이 지닌 치명적인 독이 바로 경이로움이다. 경이중독은 불가피하다. 진실 전경을 한 찰나에 상기하지 않는 한, ‘경지’로 좌정해 아라한에 빠져 살게 만든다. 한 소식 접한 수많은 준재들이 여기서 멈춰서고 말았으니 실로 지독한 중독이다.
이제와 돌아보니 시생대 낭/풀 경험이 나를 낭/풀 공부로 이끈 긴 인연 한가운데 장 미소생명에 꽂힌 인연이 또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세상에 회자되기 한참 전 나는 이미 장 미생물 상태를 조절해주는 본초 기반으로 한약 처방을 써왔다. 그 감각이 식물중심주의에 빠질 수 있었던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 감각이 인간 생명체human biont ‘내’ 감각만은 아닐 터. 감지 못 한 네트워킹이 작동했으리라. 이 네트워킹 덕분에 지금 정색하고 다시 큰 진실과 마주하고 있다. ‘대박’ 고마우니 ‘완전’ 고마워한다.
차분히 들여다본다. “오늘날 지구에 존재하는 식물 90% 이상이 균근mycorrhizal 곰팡이에게 생존을 의지한다.......태곳적부터 시작된 이 협동관계에서 모든 생명이 비롯했으며 그 미래도 식물과 곰팡이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본원적 중요성을 지닌 이야기다. 식물 없는 생명을 생각할 수 없듯, 곰팡이 없는 식물을 생각할 수 없다. 이쯤에서 누구라도 곰팡이중심주의를 떠올릴 만하다. 그러면 곰팡이와 박테리아는 어떤 관계일까? 이때도 곰팡이중심주의가 유지될까? 박테리아중심주의로 바뀔까? 박테리아중심주의로 바뀐다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어떤 관계일까? 이때도 박테리아중심주의가 유지될까? 바이러스중심주의로 바뀔까? 바이러스중심주의로 바뀌면 마침내 거기서 멈출까?
식물중심주의를 경계하는 이유는 곰팡이중심주의로 넘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특정 중심주의가 야기하는 무지를 타파하기 위해서다. 무지 타파는 서로 자기중심이라는 “거점”을 갈아엎어 타자중심 향해 나아가는 “기점”으로 삼을 때 시작된다. 거점과 기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호혜순환스펙트럼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 어디에 설 지는 각자 인연 문제다. 어린 시절 낙엽동산 해체하는 작은 생명들을 향해 “곤두박질치듯”(375쪽) 달려들었던 인연 지닌 멀린 셸드레이크와 나는 다른 인연을 지녔다. 나는 내 인연을 따라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