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 집회의 수행성 이론을 위한 노트
주디스 버틀러 지음, 김응산 외 옮김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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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내게서, 또는 네게서 나오지 않는다. 자유는 우리 사이 관계로써, 또는 우리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고 또 발생한다. 따라서 중요한 문제는 각 개인 안에 있는 존엄성을 찾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관계적이자 사회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일이다. 자기 행동이 평등에 의존하고, 아울러 평등원칙을 분명히 하는 그런 관계적 존재 말이다.......그 어떤 인간도 홀로 인간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타자와 함께 행동하고 평등 조건에서 행동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인간도 인간일 수 없다.(130)

 

음 하나는 음악이 아니다. 음이 적어도 하나는 더 있어야 음악이다. 그 더해진 음높이와 음색이 본디 음과 같다면 역시 음악이 아니다. 음높이, 음색 중 적어도 하나는 달라야 음악이다. 그 다름이 이를테면 허공이다. 그 허공이 이를테면 사이다. 음악은 한 음에서, 다른 한 음에서 나오지 않는다. 음악은 다른 음 사이 관계로써, 또는”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고 또 발생한다.음악과 자유는 같은 본성을 지닌다. 이 본성 이야기로 한 걸음 더 전진해보자.

 

는 본성상 무엇인가? ‘하나는 인간이 아니다. ‘가 적어도 하나는 더 있어야 인간이다. 그 더해진 의 위상과 특성이 같다면 역시 인간이 아니다. ‘의 위상과 특성 중 적어도 하나는 달라야 인간이다. 그 다름이 이를테면 허공이다. 그 허공이 이를테면 사이다. 인간은 에서, 다른 ’-그러니까 ’-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간은 다른 ’ “사이 관계로써, 또는”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고 또 발생한다.인간과 자유는 같은 본성을 지닌다.

 

인간은 자유다. 자유가 아니면 인간이 아니다. 양상은 다르고 본성이 같은 사이 사건이다. 사이 사건은 온 존재가 지닌 본성이다. 그 본성은 평등 조건의존한다. 평등 조건에 의존한 자유가 인간이다. 인간은 낭·풀에서, ·풀은 돌꽃에서, 돌꽃은 팡이에서, 팡이는 박테리아에서, 박테리아는 바이러스에서, 바이러스는 DNA리플리콘에서, DNA리플리콘은 물리학 너머 생명 창발에서 발원했다. 창발은 동사로 표현한 사이다. 사이가 우주 자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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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1-22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살피재(봉천고개) 마루 겨울은 칼바람으로 스산하다. 버스 정류장 뒤쪽 콘크리트 옹벽 밑 좁은 공간에 가꾼 듯 버려진 회양목이며 개맥문동이 매연과 소음 속에서 더욱 을씨년스러운 겨울을 나고 있다. 한 모퉁이에 온 몸 오그라진 망초 모습은 더없이 가엾다. 그윽이 저들을 바라보는데 문득 이야기 한 토막 떠오른다.

 

30년 가까운 옥살이에서 풀려난 넬슨 만델라에게 누가 물었다. “그 긴 세월을 어찌 견디셨습니까?” 그가 답했다. “견디지 않고 준비했습니다.”

 

엄마가 사실상 거의 전혀 없었던 미성년 시절 나를 키워낸 할머니께서는 공식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셨다. 당신 이름 석 자를 겨우 그리셨다(!). 오로지 생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질박한 이야기를 내게 많이 남기셨다. 그 이야기는 다만 소담한 에피소드거나 새길 만한 금언 정도가 아니었다. 돌아가신 지 40년이 다된 오늘 돌이켜보니 그 이야기는 내 삶을 짜온 얼개 매듭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

 

너무나 가난해 땟거리가 없어도 새벽 같이 일어나 샘으로 간다. 동이 가득 물을 담는다. 몇 번이나 이고와 커다란 가마솥 가득 붓는다.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굴뚝 따라 연기가 피어오른다. 굶어도 부엌을 데워야 부뚜막신이 복을 부르시는 법이다.”

 

다만 견디지 않고 준비하며 가난을 통과하신 지혜다. 나 또한 가난하게 살면서 할머니 영을 따랐다. 곧 있으면 일흔 줄에 드는데 다섯 시 경 일어나, 여섯 시 경 집을 나서, 일곱 시 반 경 한의원 문을 연다. 불을 밝히고 온열찜통을 데우고 전자진료부를 열어 환자 맞을 준비를 한다. 코로나가 이 겨울 나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지만 나는 다만 견디지 않는다. 봄을 준비한다, 저 살피재 마루 푸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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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22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할머님의 말씀이 마음에 팍 와닿습니다. bari_che님의 지금 모습이 할머님의 준비였다는 생각도 드네요. 지금 bari_che님이 모습은 또 누군가에게 삶이 준비로 감동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 그러고보니 이 글을 읽은 저도 그렇네요.

bari_che 2022-01-24 13:02   좋아요 0 | URL
준비 연쇄반응인가요?^^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선물이면 좋겠습니다.
 






_@keke20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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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 집회의 수행성 이론을 위한 노트
주디스 버틀러 지음, 김응산 외 옮김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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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거리에서 노숙하는 일은 공적인 것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일만은 아니다. 분명 이는 위태로움에 놓인 신체를 그 강력한 주장, 견결함, 그리고 불안정성에 위치시켜, 혁명 시간과 관련해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 구분을 극복하려 한 방법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른바 사적 영역에 머물러야 하는 필요들이 밤이고 낮이고 광장으로 표출되어,.......거기와 여기 모두에 존재한다. 신체들은 잠자는 순간에도 결코 발언을 멈추지 않으며, 그리하여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격리되거나, 혹은 부정당할 수 없다. 때로 혁명은, 모든 이가 도로와 광장이라는, 자신들이 한데 모인 임시적 공거 현장에 끈질기게 머문 채 귀가를 거부하는 까닭에 일어나기도 한다.(143)

 

그나마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대선, 코로나, 설 연휴에 관심 두고 있는 와중 한 매체가 어느 노숙인이 쓴 추도사를 표제로 올린 기사를 내보냈다. 옆에서 죽어간 다른 노숙인을 위해 그 노숙인이 쓴 추도사를 읽으면서 나는 깊은 상념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이 광장에 텐트 치고 사는 자체가 그 어떤 집회 시위보다 더 효과적인 무언의 시위라고 한 부분과 맞닥뜨리는 순간 생살을 잘라내는 듯 맹렬한 통각이 달려들었다. 그 동안 수도 없이 그 텐트 앞을 지나다녔지만 단 한 번도 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디 나뿐이겠나. 노숙인은 노숙인대로 비노숙인은 비노숙인대로 대부분 사적 영역에서 생각을 가두었음에 틀림없다. 그 가둠에는 당연히 전망 가둠도 포함된다. , 이런!

 


무능하고 게으른 개인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동정, 동정 피로, 낙인, 죄악 과정을 거쳐 관심 바깥으로 타자 노숙인, 심지어 노숙인인 자신까지 추방해버린다. 이들의 잘못된 윤리는 자신도 그런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다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형성된다. 정직하게 열심히 살면 그럴 일 없다는 생각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사회일수록 개인에게 깊게 심어놓는 사이비 믿음이다. 실제로 우리사회에서 이전에 부랑인으로 불리던 사람들이 노숙인으로 불리며 대거 등장한 계기는 1997년 이른바 IMF사태다. 대한민국 노숙인은 기본적으로 사회구조적 개념이다. 25년이 흐른 오늘, 한 노숙인이 다른 한 노숙인을 위해 쓴 추도사가 새삼스럽게 통념을 부수며 들이닥친다.

 

주디스 버틀러는 거꾸로 접근한다. 공적으로 광장에 모인 신체들이 끈질기게 머문 채 귀가를 거부하는노숙은 사적 영역에 머물러야 하는 필요들을 밤이고 낮이고 광장으로 표출시킴으로써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 구분을 극복하려 한 방법이라 한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괴리된 혁명은 혁명일 수 없다는 통찰이 전제되어 있다. 옳다. “국가 정당성을 논하는 거대담론이 잠자는 순간에까지 삼투되지 못한다면 혁명은 그 성공이 곧 실패다. 같은 이치로 나태하고 게을러노숙인 되지 않았다는 깨달음이 요원의 불길로 번지지 못한다면 개인 각성은 그 밝음이 곧 어둠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추도사는 노숙인, 나아가 노숙인과 다름없는 민중을 깨우는 격문이어야만 한다.

 


사진: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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