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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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변화에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대개 변두리에 있는 이들이고, ··물과 맺는 관계에서 기술문명 영향을 최소한으로만 받는 이들이다.···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가난하며 정보를 전파하는 네트워크에 접근하지 못한다. 사실 그들은 사회적 스펙트럼에서 세계적 학자나 과학전문가 정 반대편에 놓여 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우리 첫 번째 메시지가 변두리 농부나 먼 길 걸어야 물 길어다 먹을 수 있는 여성이 아니라 과학자에게서 나오는 이유는 그들이 무슨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유일한 존재라서가 아니다. 그보다 그들이 세계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사회 내에서 좀 더 가시적인(visible) 존재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변두리 농부나 먼 길 걸어야 물 길어다 먹을 수 있는 여성은 그들이 사는 사회에서 너무나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는지라 좀처럼 가시적 존재가 되기 어렵다.(210)



2017822<녹색 의학 이야기를 시작하며>에서 이렇게 말한 기억이 있다.

 

“···2016년 여름 더위는 대단했다. 한의원 냉방기기가 맥을 못 추었다. 환우들의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 여름이 다 갈 무렵,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6년째 세 들어 있는 한의원 건물이, 여름에는 창문을 통해 직사광선이 들어오지 않고, 겨울에는 그 반대여서 신의 한 수라 여기며 좋아했다. 작년 여름, 비로소 알아차린 사실인데, 창문으로 직사광선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구 자전축이 변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일상에서 이리도 선명하게 감지될 수 있을까, 의심했으나 그땐 그냥 지나쳤다.

 

사실은 그대로 사실이었다. 북극점이 최근 10여 년 동안 1m가량 동쪽으로 이동했다. 북극점 이동은 북극 얼음이 녹으면서 지구 전체의 무게 배치가 바뀌어 일어났다. 이 사실을 아는 순간, 내게는 어떤 묵시록적 베임의 감각이 일어났다. 날카로운 통증이 하나의 옹골찬 각성을 일으켰다. 물론 이전부터 기후 변화를 포함한 생태학적 문제에 등한하지는 않았지만, 와락! ‘녹색의 화두를 정색하고 들어야겠다는 절박함이 살을 찢고 들이닥쳤다는 말이다.”

 

변두리 사람은 이론이나 사변으로 접근·소통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신체 직관이랄 수 있는 감각이 우선한다. 그리고 그 감각은 구체적·일상적 생활 한가운데서 형성된다. 내가 직사광선에 섬세한 지각력을 지니게 된 까닭은 환자가 느낄 불편함을 먼저 알아차려야 하는 임상의기 때문이다. 특히 가난한 동네 진료소는 의학 외적 요소들이 오히려 더 깨알같이 영향을 미친다.

 

생태·기후 변화 문제라고 다르랴. 과학자가 세운 깃발이 변두리 생활인 깃발과 같을 리 만무다. 정확히 말하면 후자는 가시적인(visible) 존재가 아니므로 아예 깃발 자체가 없다고 해야 맞다. 없는 깃발을 보는 눈이라야 제국 발 마케팅 과학을 찍어내며 볼 수 있다.

 

마케팅 과학은 이익 창출을 위해 진실을 도구화한다. 도구화된 진실은 네트워킹에 참여하지 않으므로 부분에 머무른다. 부분은 오류다. 오류 권력체제가 제국이다. 제국을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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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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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기가 지닌 명확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유럽식 모델을 따르기 위해 가장 집중적으로 테라포밍된 지역에서 비상한 힘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이다.(201~202)

 

이쯤에서 문득 새삼스러운 의문 하나가 떠오른다: 지구 위기라는 표현은 타당한가?

 

제국 인간이 저지른 패악으로 정말 지구가 위기에 처한 상황인지 묻는다. 위기는 제국 인간을 포함한 부역자 인류에게 닥친 일 아닌가 묻는다. 그 인간으로 말미암아서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생태 조건으로 변해 인간이 멸망하고 다른 많은 생명이 억울하게 죽임당한다는 사실로 지구 위기라는 표현을 쓰는 일은 그야말로 주제넘지 않은가 묻는다. 인류를 포함한 여러 생명이 사라진다고 해서 지구 생태계 전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면 어떤 모습으로든 지구 생태계는 태양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속될 텐데 지구 위기라는 표현은 인간 위기를 투사한 말하자면 신이 자기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는 서사와 같은 전도아닌가 묻는다.

 

아미타브 고시가 앞서 점잖게 말한 한 대목을 떠올리면 답이 나온다.

 

우리 시대 기후변화는 다름 아니라 400년에 걸친 테라포밍···이라는 도전에 지구가 응전하는 행동이다.(120)

 

··로 번역하면, “지금 우리가 지구 위기라고 명명한 문제는 지구가 위기에 처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구가 인간을 응징하는 문제, 그러니까 인간이 저지른 악행에 지구가 벌을 주는 문제다.” 인간이 자복하고 그나마 선처를 빌 수 있는 길은 유럽식 모델을 따르기 위해 가장 집중적으로 테라포밍된 지역을 자연에 깃들어사는 수준으로 디-테라포밍하는 일뿐이다. 6천 년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님을 모른다면 발끈할 주제조차 되지 못한다.

 

서울 와 첫 10년을 살았던 산동네에서 내려다본 도심 빌딩 은 어린 내게 가히 그랑 로망이었다. 60년 가까이 지난 그 서울은 그때와 비교할 수조차 없는 skyscraper ‘이지만 늙은 내게 더 이상 로망이 아니다. 내가 노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정신으로 내려다본 서울은 그대로 저주다. 기후 재앙을 빨아들이는 악마 목구멍이다. 어제보다 대기 상태가 좋다는데 스마트폰에 뜬 그림이 고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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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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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안보 기관이 기후변화에 대해 내놓은 보고서에 나타나는 일관된 한 가지 공통점은 서구세계가 지구 위기로 말미암은 비극적 영향에서 보호받는다고 가정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가정은 얼핏 보면 그럴듯하고 심지어 설득력마저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이와 같은 서사가 완전히 거꾸로임을 보여주는 사례는 수없이 많았다. 그 가운데 가장 최근 예가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다.···

  ···그 팬데믹이 거쳐온 경로는 지구 위기 역시 직관에 반하는 놀라운 방식으로 펼쳐지리라는 암시를 던져준다. 예컨대 베트남 1인당 소득은 유럽 여러 나라 소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하지만 중국과 국경을 길게 접하고 있음에도 코로나19 발생률이 현저하게 낮았다.···

  반면 고전한 나라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그리고 물론 영국과 미국 같은 부국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런 결과가 드러내는 불행한 측면 가운데 하나는 서구 엘리트가 소중히 여기는 신념, 곧 그들 국가가 지닌 부, 인프라, 그리고 줄곧 칭찬받아온 의료체계가 코로나19 팬데믹이 몰고 올 비극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리라는 신념 탓이었다는 사실이다. 근본적 우월성에 대한 맹신과 강대국 허세가 맞물리면서 서구는 일부 동아시아 국가들이 취한 방법을 선뜻 채택하지 못하고 최악에 이르렀다.(187~188)


 

인간이 타락의 임계점을 넘어섰음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특정 공간이 몇 있다. 대표적인 예가 대형교회 건물이다. 그중에서도 과연 저게 예배당인가를 의심케 하는 강남의 모 교회 건물은 참으로 화려해서 참으로 기괴한 느낌을 준다. 이 화려해서 기괴한 교회 안에서 배양되는 신앙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나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 교회 신도 한 사람과의 인상적인 조우를 기억한다.

 

부티와 교양미를 풍기는 노인이 들어섰다. 나는 정중한 인사로 맞았다. 그가 지적하는 단 하나의 증상은 불면이었다. 여러 방식으로 진단해보니 원인 질환이 따로 존재했다. 다름 아닌 우울장애였다. 내가 설명을 시작하자 다 듣지도 않고 그는 말을 끊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우울장애에 걸리지 않아요.”

 

이게 무슨 말인가. 내 귀에는 예수 잘 믿는 사람은 가난하지 않아요.’와 똑같은 말로 들렸다. 기복으로 굳어진 한국 개신교가 그려준 부적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의 우울장애를 치료해왔다고 했더니 그는 대뜸 그들의 신앙은 잘못된 것이라 했다. 나도 더는 예의를 지킬 마음이 없었다.

 

제 진단은 어르신 신앙으로 부정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인정하고 우울장애 치료부터 받으시지 않으면 저는 불면증 치료할 수 없습니다.”

 

그는 크게 화를 내며 일어섰다. 나도 큰 소리로 외쳤다.

 

간호사님, 환자분 나가십니다!”

 


내가 쓴 숙의 의학 소설 나니까 망정이다에 나오는 이야기 <부적>이다. 서구세계에서는 , 인프라, 그리고 줄곧 칭찬받아온 의료체계가 부적이었던 셈이다. 무릇 부적은 부도수표 같은 물건이다. 속으면서도 부적 마니아는 부적 신앙을 버리지 못한다. 물론 그래서 부적이 부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비극 한가운데 있을 무렵, 프랑스 외교 정책 전문가 한 사람이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자기 나라를 한국과 비교하는 일은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지금도 그 사람은 그 감정을 견지하고 있으리라. 물론 부적 부작용이다. 진정 과학·의학도 그 앞에서는 쪽을 못 쓴다.

 

근본적 우월성에 대한 맹신과 강대국 허세, 그 본질은 무엇일까? 맹신과 허세는 그들 국가가 지닌 부, 인프라, 그리고 줄곧 칭찬받아온 의료체계에 근거했을 텐데 어찌 이며 일 수 있을까? 근거 자체가 그렇다기보다, 최고·유일·전부로 인식한 행태가 이며 . 실로 맹허다~

 

서구가 빠져 허우적거리는 늪은 단순하다: 동어반복인 진리 체계 안에서 배 두드리기. 자기 바깥 드넓은 진리 세계를 정복과 절멸 대상으로 삼았으므로 스스로 목을 죄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시간이 없다. 한 찰나 바삐 자기 자신을 인류학대상으로 삼아야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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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이 경제성장과 화석연료 간 직접적 추이 관계를 확립했다는 사실은 대체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같은 방정식이 전쟁 수행과 화석연료 간 관계에도 딱 들어맞는다는 사실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한 나라가 군사력을 발휘하는 능력은 그 나라 탄소발자국 규모와 직접적 상관성을 띤다는 사실인데, 19세기 이후 줄곧 그랬다.···

  오늘날 미 국방성은 단일 기관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곳이다.···예를 들면 이라크 전쟁 기간에 미군은 중동 군사 작전 하나를 위해서만 연간 13억 갤런가량 석유를 소비했다. 이는 인구 18천만 명 방글라데시가 연간 소비하는 양을 능가하는 수치다. 이런 활동은 다른 생태 비용을 낳기도 한다. 군사 장비를 가동하기 위해 희석제, 용제, 살충제 같은 다양한 유독성 화학물질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 국방성은 국내 상위 5대 화학회사를 다 합친 양보다 더 많은 독성 화학물질(연간 50만 톤)을 쏟아내고 있다.···

  군사화가 단일 요소로 생태계를 가장 크게 파괴하는 인간 활동이라 지목되어 왔음에도 이에 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분야 선도적인 학자 3인이 군국주의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사회과학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정도다.(173~176)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 어느 정도가 군사적 에너지 사용에서 비롯할까? 모른다. 기후변화를 다룬 문헌 수가 기묘할 정도로 적은, 아마도 유일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국제 기후 협약에서도 군사 활동 관련 배출량을 다룬 적이 전혀 없다. 미국이 1997년 교토의정서 협상에서 배제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205)

 

60년 전으로 돌아가 아득한 기억 하나를 떠올린다. 베트남 파병 내막이 뭔지 1도 알 길 없는 초등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서 <백마부대> 노래를 배운다. “달려간다, 백마는, 월남 땅으로! 이기고 돌아오라, 대한의 용사들!” 박정희 쿠데타와 더불어 유년기를 살아낸 세대는 이렇게 군대에 대해 초월적 권위를 부여하도록 세뇌당했다. 물론 그 앞 세대는 참혹한 내전 속에서, 또 일제 군국주의 통치 아래 중첩적으로 이런 강제를 겪었다: 군대는 진리다. 질문하지 마라.

 

고등학교·대학교에는 교련이 교과목으로 들어 있었다. 예비역·현역 장교들이 교사 또는 교관으로 근무했다. 대학 때 학도호국단을 부활시키면서 학교 분위기는 더욱 군사화되었다. 교관이 출석 확인 시 장발 단속해서 이발하고 오지 않으면 결석으로 처리할 정도였다. 마침내 입대하면 온몸으로 느낀다: 군대는 진리다. 질문하지 마라. 민간인으로 돌아와도 예비군 훈련, 민방위 훈련···병영 체제에서 겨우 놓여나 본들, 때는 이미 늦었다. 군대 마귀가 착 똬리 틀었다.

 

하물며 지구 전체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미군임에랴. 차마 누가 진실을 들먹이며 감히 누가 질문하겠는가. 그 문이 그렇게 닫혀 있다면, 지금 우리가 떠드는 기후 문제며 지구 위기 이야기는 핵심을 젖혀놓고 변죽만 울리는 꽹과리다. 실제 상황은 훨씬 더 엄중하다. 게다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히 갈리는 진실을 묻어버린 채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미군이 끝내 오리발 내밀어 대파국 오면 저들은 들림받고 우리는 버림받은 별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

 

군대, 특히 미국 군대는 이미 군대가 아니다. 권력과 금력, 그 접점을 장악한 초월적 존재다. 전지전능이란 말을 미군에게 쓰지 않는다면 지구상에 그 누구에게도 쓸 수 없다. 정말 대파국이 온다면야 가이아야말로 전지전능한 존재일 터이다. 가이아가 전지전능을 펼치게 될 때 인간은 사라질 확률이 높다. 그런 상황을 충분히 예기하면서도 알량한 초월성을 즐길 수밖에 없는 이성이 제국 군대가 지닌 한계일 경우에라도 우리는 진리 앞이라며 묵묵히 순복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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