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리는 왜 우울할 수밖에 없나요?
(1) 보편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질문]
제가 중2때부터 시작된 거 같은데 학교에서 우울증이나 심리상태 검사를 하면 항상
다른 애들보다 높게 나왔어요. 근데 엄마는 그냥 사춘기라서 그런 거라고 다 크면 나아질 거라고만 하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하는데 저 정말 힘들어서 중3때부터 자해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거 보고 아빠는 차라리 죽으라고 혼내기만 하고 엄마는 하지 말라고만 하네요. 아빠는 제가 정말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이걸로 엄마아빠 협박하려고 그런다고 생각합니다.
아빠는 자꾸 공부만 하라고 하면서 제가 스튜어디스한다고 일본어 배운다고 하면 그걸 네가 어떻게 하냐면서 학교공부나 좀 열심히 하라고 하고 제가 피아노를 치는데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정말 잘 친다고 칭찬 듣는데 부모님한테는 한 번도 칭찬을 들은 적이 없어요. 그래서 유일하게 잘하는 것도 요즘에는 계속 안치고 있고 너무 짜증도 심해진 거 같고 성적도 자꾸만 떨어지고 너무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정말 어떻게 고치고 싶은데 자꾸 심해지는 것 같아요. 자해하는 건 엄마아빠가 알고 못하게 하는데도 자꾸 슬퍼지면 생각이 자꾸 나고....... 너무 힘드네요. 이러면 불효라는 거 아는데도 자꾸 죽을 생각만 하고 있어요. 저 진짜 어떡하죠? 정말 집에서 인정받고 살아가고 싶은데 집에만 가면 동생이랑 비교하면서 항상 무시당하고
고등학교 졸업하면 집에서 살림이나 하라고 해요. 저 그때마다 정말 차라리 이렇게 살 거면 죽는 게 나을 거 같다고 생각 들어요. 정말 힘들어요.
[답변]
허, 이것 참.......
요즘 들어 청소년들의 절규가 부쩍 크고 가깝게 들리는데
정작 실제로 치료 받으러 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렇게 온라인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것에서 한 발짝도 더는 못나가니
그저 안타깝고 민망할 따름입니다.
청소년들이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고통을 호소할 때
부모가 보이는 정형적인 반응을 여기서 다시 마주치게 됩니다.
사춘기라 그래 시간 지나면 절로 괜찮아진다.......
그러니 공부나 열심히 해라.......
네 동생을 봐라.......
설혹 사춘기 현상이라 하더라도
일상이 무너지면 상담을 포함해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감기 걸렸다고 하면 감기약은 사다주면서
왜 우울증에 걸렸다고 하면 버텨라, 공부나 해라 하는지, 통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우울증 여부를 떠나서 사춘기 현상도 일종의 질병입니다.
마치 갱년기증후군과 같이 말입니다.
어른의 경우는 병이라 하고 청소년의 경우는 아니라 하는 것은
성인중심의 그릇된 사고의 소산입니다.
진실은 이러하지만 현실은 이와 달리 흘러가지요.
진지하게 대화하고 어필해도 부모가 요지동인 한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길은 없는 겁니다.
혹시 학교 선생님과 상담하여 부모님의 도움을 이끌어낼 수 없는지
알아보면 어떨까요?
너무 순진한(!) 생각인가요.......
일단 급한 대로
혼자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을 말씀드립니다.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스런 마음 상태를
있는 그대로 자신에게 소리 내어 자꾸 말하세요.
그리고 그것을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려 보세요.
표현한 고통과 표현하지 못한 고통은 하늘과 땅만큼 다릅니다.
표현하면 그 고통은 곧 바로 치유의 길로 들어섭니다.
진지하게 들어주고 보아줄 사람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형편이 그렇지 못하니 스스로 그리 하시는 겁니다.
잘 안 되더라도 거듭해서 시도하세요.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독서도 큰 도움이 돼요.
성장소설 몇 권을 추천합니다.
김형경의 <꽃피는 고래>, 김려령의 <완득이>, 팀 보울러의 <리버보이>,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2010년 여름 중3 여학생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 상담은 부모의 이런 태도가 잘못된 것임을 전제하고 풀어나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해서 시간에 맡겨두면 자연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의 발생 자체가 어떤 보편성을 띠고 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치우치지 않는 관점을 지녀야 하니까요.
[질문]
특별히 우울증에 걸릴만한 엄청난 상처를 받거나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너무너무 우울하고 괴롭거든요.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고 상처받고 힘들고, 예를 들어서 친구랑 싸우게 되면 그게 너무 두려워서 가슴이 답답하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까지 되요.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이 조금만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면, '역시난 이거밖에 안 돼. 이 사람은 날 좋아할 리가 없어' 하면서 계속 자기비하를 하게 되고....... 친구가 적은 편은 아닌데, 자꾸 혼자라고 생각하면서 답답해하고 울고
정말 너무 힘들어요. 조그만 문제라도생기면 아무 일도 못할 정도로 힘들어져버리니까, 그걸 잊기 위해서 컴퓨터를 계속하고, 그러다보니깐 중독증상까지 생겼어요.
가족들에게 계속 짜증을 내고 소리도 자주 질러요. 또 한 번은 ‘과호흡증후군’ 때문에 학교에서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어요. 근데 그게 정신적으로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기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자기진단을 해봤는데 심각한 우울증이라고 나오고.
그런데 제가 직접 병원 가서 상담받기가 너무 두려운 게, 보통 우울증은 막 큰 상처가 있거나 아픈 기억이 있거나, 근데 전 그게 아니거든요? 정말 상처받는 일들도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사소하고 정말 별 거 아닌데도 전 아무 일도 못할 만큼 우울해지고 괴로워져버려요. 또 보통은 우울증이면 잠도 잘 못자고 식욕부진도 온다던데 전 그렇지도 않아요.
제발 도와주세요.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정말 너무 힘들어요. 괴로워요.
[답변]
1. 마음의 고통은 객관적 표준에 따라 그렇다, 아니다, 정할 수 없습니다. 본인이 느끼는 것과 타인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게 마련이지요. 마음이란 본디 사건 자체가 아니고 '관점'이기 때문에 남들과 비교해서 어떻다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플 만해서 아픈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일이 무엇보다 먼저 필요해요.
큰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잠 못 자는 것도 아니고, 밥 못 먹는 것도 아니라는 평가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자신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군요.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인도 그렇고요. 또한 원인이 굉장한 사건이면 우울증이 더 깊고 별 것 아닌 원인이면 우울증도 가볍고, 그런 게 아닙니다.
청소년우울증일 경우 성인과는 달리 분노조절 장애, 폭력성 또는 공격성 등의 증상이 주로 나타나지요. 물론 핵심적인 증상인 자기모멸, 즉 자긍심의 결핍은 공통된 증상으로 본인 스스로 이미 인지하고 계신 부분입니다.
2. 청소년기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경계/혼란의 시간입니다.
생애 최초로 존재하지 않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관념적 허무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사유의 폭과 양이 커질 뿐만 아니라 몸도 걷잡을 수 없이 변하고 자라는데 막상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모순 속에서 무력감, 절망감이 밀려듭니다. 이래서 작은 일에도 깊이 상처 받고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난 직후 급격하게 죄책감에 빠져들고 그것은 자기모멸감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포함한 주위 어른들은 대개 '어린 것이 무슨.......?'이라고 반응합니다. 결국 '아, 이렇게 살아 뭐하나?' 하는 생각으로까지 치달아 가고 마는 것이지요.
3. 아주 이상한 일 아님을 아시겠지요? 누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넉넉하게 하시고 지금의 자신을 따스하게 받아주세요. 그 다음 차분히 치료 받으시면 됩니다.
자, 심호흡 한 번 하세요. 그리고 벌떡 일어나 거울 앞으로 가세요.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보시고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세요.
"그래! 그래! 그래!"
2008년 여름, 이 또한 중3 여학생과 나눈 대화입니다. 보통 사춘기라고 말하는 이 시기는 아이와 어른 사이에 낀 시간입니다. 그 때 일어나는 보편적인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한 것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생애 최초로 존재하지 않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관념적 허무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사유의 폭과 양이 커질 뿐만 아니라 몸도 걷잡을 수 없이 변하고 자라는데 막상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모순 속에서 무력감, 절망감이 밀려듭니다. 이래서 작은 일에도 깊이 상처 받고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힘과 생물학적 몸은 빠른 속도로 어른이 되어 가는데 막상 사회적인 처지를 보면 여전히 “미성년자”의 틀에 묶인 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전혀 없습니다. 엄청난 모순이지요. 이것은 모든 청소년에게 주어진 보편적 숙명입니다.
그래서 보통 부모는 “남들도 다 그러고 사는데 왜 너만 징징대느냐?”는 식으로 반응합니다. 하지만 사춘기에는 누구나 그런다, 그러니 견뎌라, 하는 이 말은 매우 당연한 말처럼 보이지만 다음 경우를 예로 들면 그 말이 얼마나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퍼하는 친구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 법 아닌가. 너무 상심하지 말고 견디게나.” 그야말로, 헐~!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보편적 현상에 대한 바른 이해란, 청소년기는 기본적으로 우울증이라는 조건을 깔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해주는 간단한 통계가 있습니다. 미국 것입니다만, 최근 45년 동안 우울증은 10배가량 증가했습니다. 그 가운데 최초 발병의 90% 이상이 청소년기라고 합니다.
따라서 앞의 상담 사례에서 제가 말씀드렸듯, 엄밀하게 따지면 우울증 여부를 떠나서 사춘기 현상도 일종의 질병입니다. 마치 갱년기증후군과 같이 말입니다. 어른의 경우는 병이라 하고 청소년의 경우는 아니라 하는 것은 성인중심의 그릇된 사고의 소산입니다. 이를테면 사춘기증후군이라는 표현과 그에 부합하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뇌 과학의 진실을 알고 나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즉 청소년기에 뇌는 전체적으로 재조정됩니다. 왜냐하면 성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모델을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작업은 여성의 경우 25세 전후, 남성의 경우는 물경 30세가 되어야 끝난다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아이들의 뇌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입니다. 아이들이 무조건 반항하고, 폭력적이 되고, 우울증에 빠지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게다가 이 시기에 감정을 조절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세로토닌 분비기 어른에 비해 40% 가량 줄어든다고 하니 더 이상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어른들은 이 문제를 아이들의 성격이나 윤리 문제로 처리합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무지입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일깨움이 시급히 요청된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보편적 접근에서 보이는 성인들의 반응이 고통을 겪는 청소년 스스로 하면 약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고통의 한가운데 빠져 있을 땐, 나 혼자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짐을 지고 있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공감 백만 제곱이지요. 하지만 심호흡 한 번 하고 주위를 가만히 돌아보면 나만 그러고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어? 전혀 안 그럴 거 같은 쟤도? 바로 이 지점에서 고통의 보편성을 알아차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자기 고통을 상대화할 수 있는 여백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새로운 생명 감각을 얻는 것입니다. 아, 내 고통은 세상 고통의 일부로구나! 그렇습니다. 고통을 공유하고 있다는 깨달음이야말로 참 어른으로 가는 기품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이거, 어른이 훈계할 문제 아닙니다. 훈계는 아이들의 염장을 지를 뿐입니다. 깨달음을 가로막을 따름입니다. 아이들의 심리적 현실을 따스하게 안아주고 인정해줄 때 아이들은 스스로, 그리고 흔쾌히 깨닫는다는 사실을 명심,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