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부터 매주 연속 다섯 번 국·중·박으로 향한다. 갈 때마다 마주하는 엄청난 인파에 볼 때마다 놀란다. 제국들에 허다한 민족 유산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더욱 놀랄 일이 일어났을 것이므로 놀랄 때마다 속이 쓰리다. 다섯 번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동선이 정해진다. 후반에는 3층으로 바로 올라가 불상부터 백자까지 반복 탐색한다. 최종으로는 불상에 집중한다. 왠지는 아직 잘 모른다. 곰곰이 되뇐다고 답이 나오지는 않을 터이되 문득 스치는 생각은 모두 다른 그 오묘한 표정들에 이끌리지 않았을까, 다.
정확히 언제 어떤 경로를 따라 새겨진 기억인지 기억나지 않는 이런 기억이 내게 남아 있다: 중국 불상 얼굴은 배부르게 먹고 난 뒤 표정이고, 일본 불상 얼굴은 여러 날 단식한 뒤 표정이고, 한국 불상 얼굴은 먹은 것을 후련히 비우고 난 뒤 표정이다. 장인이 지닌 상상력만으로 만들지 않은 이상, 불상 얼굴은 문명 특성을 반영하기 마련이니 상응하는 차이가 드러남 직도 하다. 이 말을 처음 한 누군가는 세 나라 문명이 지닌 특성을 나름 간파했음에 틀림없다. 실은 나도 공감 또는 수긍했기에 기억났을 테고.
유구한 시간을 지나 오늘까지 전해진 불상들은 조성 과정에서 대개 왕실이나 귀족이 발원하고 비용 댔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들 지배층이 종교를 통해 투사하는 욕망과 그 욕망을 메타 인식하는 관지(觀地)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학문 차원에서 근거를 찾고 그 내용을 구성하는 일은 능력 밖이라 나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쟁여진 관련 지식과 상식을 바탕으로 하고 인류학적 직관에 기대어 내 기억에 공감 또는 수긍한 근거와 그 내용을 구성해 보기로 한다. 하여 국·중·박 중국관과 일본관을 향한다.
중국관 입구에는 중국 문화 자궁을 황하라고 밝힌 안내문이 있다. 하등 이상할 일이 없다. 다만 황하를 중원(中原)이라 부른, 그러니까 자신이 천하 한가운데(中心) 있는 존재라고 착각한 사실에 주의하면 된다. 그 자부심이라면 불상 얼굴에 “배부르게 먹고 난 뒤” 표정이 나타나는 일 또한 자연스럽다. 오늘날도 그들은 “중국몽(中國夢)”이니 “중국굴기(中國崛起)”니 하지 않나. 그들이 미국을 밀어내고 또 다른 일극 제국을 꿈꾼다면 인류에게 마지막 재앙일 테니, 배부르게 먹고 난 뒤 “지족”에 그치길 바란다.

일본관 입구에는 일본 문화 후원자를 무사라고 밝힌 안내문이 있다. 하등 이상할 일이 없다. 그 “사무라이”야말로 일본 정신 또는 근성(こんじょう) 자궁이니까. 다만 그들이 일합(一合) 승부 칼부림과 할복으로 결기를 자랑하는 근거가 극단 자부심, 그러니까 가장 먼저 해(日)가 뜨는 “본(本) 좌”라는 착각에서 왔다는 사실에 주의하면 된다. 그 자부심이라면 불상 얼굴에 “여러 날 단식한 뒤” 표정이 나타나는 일 또한 자연스럽다. 하청(下請) 제국주의, 거간 자본주의로 호가호위하는 날들이 저물고 있어 아쉽다.

김명신 내란 일당 속내가 낱낱이 드러나는 중인 요즘 단연 백미는 저들이 왜국 주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섬기는 사특한 주술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종교 또는 비의(秘儀)는 주술을 바탕으로 존재하므로 주술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왜국 주술이 사익을 위해 원한을 악의로 일으키기까지 한다는 사실이다. 그와 반대로 해원 상생에 뿌리를 내린 주술이 내장된 한국 불상 얼굴에 “먹은 것을 후련히 비우고 난 뒤” 표정이 담기는 일은 자연스럽다. 바야흐로 K-불상 표정이 세계를 해탈시킬 때다.

국·중·박 오고초려(五顧草廬)로 내가 모시고 나온 우리 불상 표정은 오연(傲然)하다. 오만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담담하다는 말이다. 중국 불상은 실제로 오만(傲慢)함을 풍긴다. 일본 불상은 실제로 오기(傲氣)를 뿜어낸다. 나를 국뽕이라 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인데, 요즘 왜·미국 주술 떼거리를 응징하는 자주 민주 시민이 품은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주술을 기꺼이 사랑하고, 그래서 나는 국뽕 주술 “전도사”가 되고 말 테다. 국·중·박 예술 행동을 일차 마무리하면서 다음 행보를 곰곰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