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국주의 정신의학, 제국주의 제약회사들의 지상낙원(2)
“미국정신의학협회의 『정신장애 진단과 통계 지침DSM』은 악명을 떨치게 됐다. 어느 정도냐 하면,·······제4판 개정판 DSM-Ⅳ-TR(정신장애 374가지가 나열되어 있음. 제3판은 297가지였음.) 편집위원회를 이끌었던 앨런 프랜시스가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이런 식으로 정신장애를 규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이었다. 그는 제5판이 나오면 가짜 유행병이 여러 가지 만들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랜시스에 따르면, 새로운 진단명은 신약만큼이나 위험하다.·······
·······『정신장애 진단과 통계 지침DSM』은 합의 문서에 해당하며, 과학적이라고 볼 수 없다.·······
『정신장애 진단과 통계 지침DSM』를 개발하는 사람들은 커다란 이익 상충이 있고, 많은 진단명을 만들어내는 것은 온갖 종류로 큰 돈벌이가 되며, 최고 전문가들은 명성과 권력을 거머쥔다. 그런데 이런 진단을 내리는 게 정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여성들에게 ‘월경 전 불쾌장애’라는 진단을 내리면, 일자리 얻는 게 힘들 수도 있고, 이혼할 때 자녀 양육권을 확보하는 데 불리할 수도 있다.·······그렇지만 누가 신경이나 쓴단 말인가?·······미국 정신과 전문의들은 뻔뻔스럽게도 이를 우울증이라 명명했다!”(330-333쪽)
실제로 DSM-5에는 월경 전 불쾌장애가 우울장애 제3하위유형으로 공식 등재되어 있다. USA 제국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제국주의 제약회사와 결탁하여 더 많은 진단명을 개발할 테고, 더 많은 화학합성물질을 처방하여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리라. 치밀한 과학적 연구 끝에 신중하게 질환 독립 범주와 거점을 확보하는 일에서 저들의 작업이 시작되지 않기 때문에 저들이 만든 문서 DSM은 “합의 문서”에 지나지 않는다. 나눠 먹기 야합이다. 저들이 DSM-5에서 20개의 범주를 두고 수많은 하위유형을 만들어 세분화한 작업은 파이를 무제한으로 키우기 위해 잡아 놓은 주름들로 보인다.
범주가 20개나 된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우스꽝스럽다. 20개를 범주라고 할 수 있다니 참으로 그 부박함이 부럽다. 300개가 훨씬 넘는 진단명은 더욱 가소롭다. 이치나 원리가 달라서가 아니라 증상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갈래지었으므로 약 가지 수를 늘리기 위한 전략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판단된다. 여기에 매우 간단명료한 내 범주를 제시한다. (『인문과 한의학, 치료로 만나다』에 수록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한다.)
정신질환은 크게 두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아픔인 공포·불안이 들이닥칠 때, 즉자적으로 일으키는 병적 반응인 일련의 공포·불안장애가 가장 기본적인 병이다. 그다음에는 공포와 불안 문제에 대한 대자적 반응 과정에서 생기는 병이다. 여기에는 다시 두 유형이 있다.
하나는 공시적(synchronic) 관점에서 자기 단일(單一)성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 하는 문제다. 여기서 분열형, 우울형 질병이 비대칭 대칭으로 나타난다. 이 상반되는 두 질병을 함께 묶어 경계선장애라고 한다(서구정신의학에 이미 이런 병명이 있으나 그와는 다른 의미임). 내 남 경계선을 어떻게 조절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어느 한쪽 극단으로 치우친 병이라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통시적(diachronic) 관점에서 자기 동일(同一)성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 하는 문제다. 여기서 강박형, 전환형 질병이 비대칭 대칭으로 나타난다. 이 상반되는 두 질병을 함께 묶어 변곡점장애라고 한다. 기존 질서를 지키느냐, 바꾸느냐, 하는 문제에서 어느 한쪽 극단으로 치우친 병이라는 말이다.
나는 모든 정신질환을 발달장애, 특히 불균형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는 인간 정신 생명력이 비대칭 대칭구조를 지니는 꼭 그만큼 그 생명력 왜곡도 비대칭 대칭구조로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체 진실에 후각이 가 닿으면 더 이상 범주 명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번다한 이름은 수탈 기호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