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제국주의를 공부한 지난 3년 동안 시종일관 느꼈던 자괴와 절망은 내가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 대부분이 제국주의자, 그리고 그 부역자가 철저하고도 처절하게 은폐·조작·왜곡한 결과였음을 깨달은 데서 흘러나왔다. 어떻게 여태껏 모르고 살아왔을까? 이렇게까지 전방위·전천후로 망가뜨렸는데 과연 전복은 가능할까? 이 통절함은 무디어지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어 심란하기 그지없다.

 

매번 그 심란함을 안고 광장으로 간다. 광장에 서면 공부할 때 느낀 자괴와 절망이 생생한 현실 앞에서 육체성을 드러내며 폭발하곤 했던 기억으로 찰나마다 다시 부서진다. 그 찰나마다 나는 폭발로 찢겨나간 내 영혼을 수습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다만 점 하나 되어 적요에 묻힌다. 구호를 따라 외치지도 못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지도 못한다. 검푸른 왜소 의식으로 빨려 들어가 숨이 멎는다. 광장은 나를 살그머니 떠민다.

 

오늘따라 이 증후군을 일찍 감지한다. 발언자 가운데 누군가가 우리 세대에서는 세상 바뀌지 않는다. 아이들을 위해 광장을 채우고 또 채워야 한다.’라고 해서인지도 모른다. 내 표정을 눈치챘는지 아니면 추위를 탄다고 생각했는지 중년 여자 사람 하나가 핫팩을 건넨다. 다정함에 이끌려 한참이나 더 대열 속에 머문다. 쌓이는 시간 무게에 눌려 고개가 깊이 떨어지자 나는 이기지 못하고 거리로 나선다. 유령처럼 떠서 흐른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웃음소리 같은 무엇이 일렁거린다. 내란 재판을 희화해서 말아먹으려는 법비(法匪) 해득거림인 듯도 하고, 내 알량함을 비웃는 토왜(土倭) 키들거림인 듯도 하다. 유령으로 듣자 하니 주술이로구나. 나는 화들짝 깨어나 정면으로 응시한다. 저들을 녹여 없애는 앙글거림으로 환생한다. 자괴와 절망 속에서 다시 태어나 아기 영혼으로 발맘발맘 걸어간다. 자괴와 절망이 끝내 걸터먹지 못하는 생명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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